71년만에 누명 벗었지만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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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2월 11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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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수형인 현창용 옹 ‘무죄’ 판결 21일만에 별세
불법군사재판 무효 위한 ‘4·3특별법 개정’ 서둘러야

10일 제주S-중앙병원에 마련된 고(故) 현창용 할아버지의 빈소. 2019.02.11/뉴스1 © 뉴스1
10일 제주S-중앙병원에 마련된 고(故) 현창용 할아버지의 빈소. 2019.02.11/뉴스1 © 뉴스1
제주 4·3 생존 수형인들이 1월17일 제주시 이도2동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내란실행·국방경비법 위반 등에 대한 재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17/뉴스1 © News1
제주 4·3 생존 수형인들이 1월17일 제주시 이도2동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내란실행·국방경비법 위반 등에 대한 재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17/뉴스1 © News1
제주4·3 당시 불법군사재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한 생존수형인 현창용 할아버지(87)가 운명을 달리하면서 ‘제주4·3특별법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사법부가 71년 만에 4·3 군사재판의 불법성을 인정한 만큼, 입법부인 국회가 ‘불법군사재판 원천 무효화’로 고령의 생존수형인들에 대한 명예회복을 하루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 억울한 옥살이 누명 벗은 지 21일만에 별세

지난 7일 지병으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한 현창용 할아버지의 발인이 11일 제주S-중앙병원에서 엄수됐다.

현 할아버지는 16세이던 1948년 9월26일 새벽 제주시 노형동 집에서 잠을 자다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끌려갔다.

월랑부락 토벌대 사무실에서 물고문에 전기고문까지 당한 그는 임의로 작성된 조서에 지장을 찍었고 그 이후 폭도로 낙인 찍혔다.

같은 해 12월 그는 징역 5년을 선고 받아 인천형무소로 옮겨졌고, 1년7개월 가량 복역하던 중 한국전쟁이 나면서 가까스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제주로 내려오던 중 인민군에게 잡혀간 그는 간첩 혐의에 연루돼 징역 20년을 복역한 뒤에야 다시 제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는 정부부처 합격 통보를 받은 딸이 신분조회 과정에서 ‘연좌제’에 걸려 공직에 오르지 못하자 재심 청구를 결심했다.

그를 비롯한 4·3 생존수형인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가까스로 2018년 10월 재심이 이뤄지게 됐다.

하지만 70년 만에 처음으로 법정에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현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건강 악화로 인해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지난달 17일 법원이 공소 자체가 무효라며 사실상 무죄를 의미하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지만, 거동조차 힘들어진 그는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하지 못했다.

‘사실상 무죄’라는 사법부의 판단을 전해들은 지 21일 만인 7일 그는 향년 8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함께 재심청구에 나섰던 수형생존인들의 나이는 많게는 99세이며 적게는 85세다. 이 중 정기성 할아버지(97)는 치매를 앓고 있으며, 박순석 할머니(91)와 김경인 할머니(88)는 병환으로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불법군사재판 원천 무효 위한 ‘4·3특별법 개정’ 하세월


사법부가 처음으로 군법재판의 불법성을 인정했지만, 원천적으로 무효화시키고 피해에 대한 배·보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속한 ‘4·3특별법 개정’이 과제로 남아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2017년 12월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을)이 대표로 발의한 법안을 비롯해 강창일(더불어민주당·제주시갑)·권은희 의원(바른미래당·광주 광산구을)이 각각 발의한 법안 등 모두 3건이다.

오영훈 의원 발의 개정안은 Δ공권력에 의한 억울한 희생에 대한 배상과 보상 Δ불법적 군사재판의 판결 무효화 Δ4·3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강창일 의원 발의안은 4·3사건 수형자에 대한 명예 회복 조치 및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의 의료 지원 확대, 권은희 의원 발의안은 제주4·3 개별사건 조사방식의 진상조사가 핵심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해 9월 법안 3건을 병합 심사했지만 막대한 소요 예산을 이유로 계속 심사키로 한 뒤 수개월째 중단된 상황이다.

여야의 극한 대치로 개점휴업한 1월 임시국회에 이어 2월 임시국회 개의도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4·3특별법 개정안 통과는 속도를 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국회는 입법기관임에도 하는 일이 없다”며 “100살을 눈앞에 둔 4·3생존수형인들이 힘겹게 공소기각 판결을 받아냈는데도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논의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한심한 노릇”이라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정의 실현을 위해 특별법을 개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오영훈 의원은 “발의안 내용 중 불법군사재판 관련 조항은 이번 판결 이전에 작성된 내용이므로 법제처에 판결문을 보내 검토해달라 요청했다”며 “정부도 배보상에 대한 불가피성을 인정한데다 사법부도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만큼 해결할 수 있는 명분이 강해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행안부에서 예산 추계와 어떤 방식으로 지급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정 간의 협의를 거치기 위해 2월 말이라도 빨리 임시국회가 열렸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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