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 번째 평양 회담, 北 ‘깜짝 의전’에 끌려 다녀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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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은 어제 평양 정상회담(18∼20일)의 구체적인 일정과 의전, 경호, 보도 문제를 논의하는 실무회담을 열었다. 방북 경로는 서해 직항로 항공편으로 결정됐고, 선발대는 16일 가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이다. 북측은 어제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 현장에 와서야 북측 소장에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임명한 사실을 통보했다. 북측 일정에 따라 남북 협의나 행사가 진행되고 중요 사안을 당일에나 통보받는 남북 관계의 비대칭적 행태는 이제 관행화돼버린 양상이다.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벌써 세 번째지만 이처럼 벼락치기 실무 협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경호팀을 비롯한 선발대가 이미 평양에 가서 실무 준비를 마쳤어야 하는 시점인데, 이제야 협의를 시작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때도 3주 전부터 분야별로 총 5차례에 걸쳐 실무 협의를 했다. 북측은 정권 수립 기념일(9·9절) 행사를 치르느라 여력이 없어서라고 한다지만 이처럼 방북이 임박해 번갯불에 콩 볶듯 준비하는 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이뤄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두 차례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우리 대통령은 북측의 일방적인 ‘깜짝 의전’에 마냥 끌려 다녀야만 했다. 북측은 대략의 일정 외엔 김정일이 언제 어디서 우리 대통령을 영접할지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2000년 북측은 준비 부족을 이유로 평양 방문을 하루 연기해 달라고 했고, 2007년엔 “하루 더 묵고 가는 게 어떠냐”는 즉석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사전 협의된 일정마저 번번이 변경하기 일쑤였다.

그런 과거의 관행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북측도 이미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적 의전관례를 익힌 만큼 과거처럼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선 곤란하다. 국가 최고지도자 간 정상회담은 사전에 세밀한 일정과 동선, 의제가 합의된 상황에서 이뤄져야 한다. 대외적 깜짝쇼로 보이는 이벤트도 사전에 합의된 것이어야지, 상대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정상회담은 그 형식이 내용까지 결정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북한의 일방통행식 태도를 용인하다 보니 핵심 의제마저 맞춰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장과 미사일시험장 폐쇄를 두고 “미래 핵을 포기하는 조치를 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북한에 비핵화 실행을 촉구하기보다 북한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으로 김정은의 오만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평양 정상회담#남북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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