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죽고 뇌만 살아있다면… 온전한 인간으로 봐야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서 열린 ‘국제신경윤리회의’ 세계 뇌 과학 석학들 대거 참가
두뇌연구 윤리기준 마련 논의… “개인 존엄성-자율성 보호가 핵심”

뇌신경윤리 분야 석학인 캐런 로멀페인저 미국 에머리대 교수(국제신경윤리회의 공동의장)는 “점점 발전해 가는 뇌 신경과학 분야에는 그에 걸맞은 윤리가 필요하다”며 “개인의 존엄성,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게 첫 번째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뇌신경윤리 분야 석학인 캐런 로멀페인저 미국 에머리대 교수(국제신경윤리회의 공동의장)는 “점점 발전해 가는 뇌 신경과학 분야에는 그에 걸맞은 윤리가 필요하다”며 “개인의 존엄성,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게 첫 번째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4월 돼지의 뇌를 떼어내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얼핏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싶겠지만 관건은 그 다음부터다. 연구진은 이렇게 떼어낸 뇌를 ‘브레인 엑스’라고 이름 붙인 장치에 넣고 계속해서 혈액을 공급했다. 피를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은 돼지의 뇌는 약 하루 반(36시간) 동안 그 기능을 유지했다. 돼지의 몸은 죽었지만 뇌는 실험장치 속에 살려 놓은 것이다. 이 연구결과를 보고 각계에선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만일 이 기술이 더 발전해 인간에게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몸은 죽고 뇌만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뇌를 온전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할까.

뇌과학 연구가 발전하면서 ‘뇌신경 윤리’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뇌과학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인간의 지적 능력과 개개인의 성격을 결정하는 핵심 장기다. 마땅히 엄격한 윤리적 제재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이 문화와 사회,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세계적으로 통용될, 보편타당한 윤리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뇌과학계의 새로운 숙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기준을 명백하게 세우는 데는 우선적으로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동시에 인문학, 법학, 신학 등 인간의 정신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분야의 학문까지 두루 검토할 필요가 있어 절대 쉽지 않은 과정이다.

12일 오전 서울에서 열린 국제신경윤리회의에서 발표 중인 월터 코로시츠
미국국립신경질환뇌졸중연구소(NINDS) 소장. 한국뇌연구원 제공
12일 오전 서울에서 열린 국제신경윤리회의에서 발표 중인 월터 코로시츠 미국국립신경질환뇌졸중연구소(NINDS) 소장. 한국뇌연구원 제공
한국뇌연구원(뇌연구원)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신경윤리회의(GNS)’도 이런 국제적 노력의 일환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신생 학술회의지만 뇌과학 분야 석학들이 앞다퉈 참가하고 있어 이미 국제적 행사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부터 이틀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미국의 대표적 뇌연구 프로젝트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는 캐럴라인 먼토조, 미국 국립과학재단 생물인프라 기반분과 최고 책임자인 제임스 데실러, 신경과학분야 국제학술지 뉴런 편집장인 마리엘라 절린저 등 세계 뇌과학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

이들이 한국을 찾아와 머리를 맞댄 첫 번째 이유가 ‘뇌과학 연구의 윤리적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였다. 이번 학회의 공동 의장을 맡은 캐런 로멀페인저 미국 에머리대 교수 역시 뇌신경윤리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에머리대 신경윤리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다.

13일 학회 현장에서 만난 로멀페인저 교수는 “뇌신경 윤리를 마련하는 데 있어 첫 번째 기준은 무엇보다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신 연구발표를 보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금 전 어떤 영상을 봤는지, 또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조차 뇌신호를 분석해 알아내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며 “적절한 뇌신경 윤리 기준이 없다면 개인의 사생활은 물론 선택권마저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로멀페인저 교수는 이어 “한국 연구진이 (뇌신경윤리 기준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세계 뇌과학 커뮤니티 형성에 큰 역할을 해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과학자들의 이런 노력이 학계의 새로운 연구 가이드를 만드는 데 실제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GNS 공동 의장을 맡은 정성진 한국뇌연구원 뇌연구정책센터장은 “대표적인 예로 인간의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할 때 14일이 경과하면 실험에 쓰지 못하도록 하는 건 그때부터 뇌신경 분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라며 “과학적인 연구결과가 많아질수록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타당한 윤리기준을 만들기도 쉬워진다”고 말했다.

최근 두뇌에 전기 자극을 줄 경우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이나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새로운 윤리 문제를 제기했다. 정 센터장은 “두뇌 전기 자극의 효과가 알려지자 일부 학부모층에서 ‘우리 아이가 공부를 좀 더 잘하게 될까’라며 연구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문제로 뇌신경 윤리를 마련할 때는 먼저 ‘정상인의 범주’를 명확히 해야만 그 기준을 벗어나는 상황에 대해서도 정의할 수 있다”면서 “이런 학계의 노력은 인공지능의 윤리적 운영법 등을 개발할 때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pm
#한국뇌연구원#뇌신경 윤리#인공지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