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더 따뜻한 보건의료계 되려면… 의료정책, 환자중심 접근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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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사·기자의 따뜻한 약·의료기기 이야기

소아당뇨 환자가 한 달 동안 맞아야 하는 인슐린 주사량을 표현한 포스터. 이 외에도 수시로 혈당을 체크하기 위해 바늘을 하루 최대 20번 찔러야 한다. 대니재단 제공
소아당뇨 환자가 한 달 동안 맞아야 하는 인슐린 주사량을 표현한 포스터. 이 외에도 수시로 혈당을 체크하기 위해 바늘을 하루 최대 20번 찔러야 한다. 대니재단 제공
헬스동아에 따뜻한 의료기기 이야기, 따뜻한 약 이야기, 따뜻한 의료정책 이야기 등의 칼럼을 게재한 지 4년이 넘었습니다. 언뜻 차갑기만 한 의료기기나 딱딱한 의료정책, 약 등에서 ‘따뜻함’을 읽어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노력은 관련 제품과 기술, 정책이 의료현장에서 적절하게 전달된다면 환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편견도 풀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지난 1년간 따뜻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따뜻한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봤습니다.

현 정부의 보장성 강화와 의료비 절감 등 정책을 펴 나가는 과정에서 보건정책의 가장 큰 방점은 사회적 약자, 특히 아동과 노년층, 빈곤층을 위한 의료 접근성 강화에 있었습니다. 본보의 따뜻한 이야기 역시 이를 촉진하는 여러 사례들을 소개하거나 직접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표적 예는 흔히 소아당뇨병으로 불리는 제1형 당뇨병 환자를 위한 연속혈당측정기 소모품(전극)의 건강보험 적용입니다. 연속혈당측정기 전극은 내년부터 월 4개 사용 기준으로 본인부담률 30%에 쓸 수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소개된 지 10년도 넘은 기술의 혜택을 우리나라 아이들은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은 마지막까지 순탄치 않았습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11월 ‘어린이집, 각급학교 소아당뇨 어린이 보호대책’을 통해 올 상반기까지 소모품 급여를 시행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연속혈당측정기 전극 등을 보험 대상에는 포함하지만 금액 지원은 추후에 검토하기로 하면서 환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다행히 환자단체, 환자가족 측이 여러 경로를 통해 연속혈당측정기 보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본보도 보험급여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수차례 보도(본보 4월 19일자 C2면, 5월 9일자 A29면 참조)해 지원의 필요성을 알렸습니다.

속사정이야 어찌됐든 보건의료는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부와 의료인, 업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보건의료 이해관계자들이 좀 더 환자 중심의 사고로 접근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노년의 눈을 위협하는 황반변성 치료제에 대한 보험급여 인정 기준 확대도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습성 황반변성의 경우 환자 한 명당 양쪽 눈을 합해 총 14회까지만 보험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투여횟수의 제한이 사라졌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어르신 건강에 있어 정부의 가장 큰 역점 사업 중 하나인 국가 차원의 치매 관리도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10년간 1조 원을 투입해 검사 및 진료비 감소가 이어지고 있으며 신약 개발을 비롯한 비용 최적화를 위한 중장기 사업도 추진 중입니다.

물론 모든 이야기들이 따뜻한 결말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9월 심뇌혈관질환 관리 종합계획을 내놓으면서 정작 중요한 원인질환 중 하나인 이상지질혈증 대책은 빼놓았습니다. 여전히 이 질환의 관리가 정부 정책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할지 불투명합니다. 정책 입안과 개발 과정에서 보다 세심한 접근이 요구되는 사안이라 하겠습니다.

노년층의 건강을 위협하는 각종 질환을 예방하는데 요긴한 방법들도 정책적 지원의 궤도에 들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년층은 영유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가예방접종사업 혜택을 덜 받는 가운데 대상포진 같은 질환은 백신이 있음에도 접종 대상자들은 아직 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도 그 심각성에 비해 기본적인 진단 방법인 폐기능 검사의 시행이 활발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매칭펀드 개념을 도입해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지자체 절반, 정부 절반 부담으로 진행하면 보다 많은 지역 주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암 환자들의 희망으로 기대를 모으는 면역항암제의 경우 아직 일부만이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약제들과 그 약이 필요한 환자들은 정부의 검토와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뇌염 예방에 있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생백신, 특히 세포배양 생백신의 경우 다른 백신과 동시접종 시 안전 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가예방접종사업의 문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보건의료정책은 환자의 건강은 물론이고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 국가 재정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항상 결정과 시행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보건의료와 관련한 모든 결정과 수행이 환자의 건강과 안전, 행복으로 귀결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대명제만큼은 논의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보건의료계가 보다 따뜻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지길 기대해 봅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헬스동아#건강#의료#이진한 의사·기자의 따뜻한 약·의료기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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