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정도언의 마음의 지도]마음속 심연 ‘잠수함’처럼 들여다보기
더보기

[정도언의 마음의 지도]마음속 심연 ‘잠수함’처럼 들여다보기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입력 2018-12-07 03:00수정 2018-12-07 03:0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누구나 귀가 있습니다. 귀가 있으니 듣습니다. 들은 것은 뇌가 최종 처리해서 반응과 대화가 이어집니다. 주로 말이지만 눈빛, 행동처럼 비언어적으로도 표현됩니다. 듣고 말하기는 정신분석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문명사회의 기반이 듣고 말하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특히 듣고 말하기의 시작인 듣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일상적인 듣기와 분석적 듣기는 어떻게 다를까요. 일상적 관계에서의 듣기는 바다 위의 배와 같이 해수면 위를 항해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소통합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바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석적 듣기는 잠수함과 같습니다. 수면 밑에 무엇이 있고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살핍니다. 물론 물밑에만 계속 있지 않고 의식의 세계인 해수면과 무의식의 세계인 깊은 물 사이를 왕래합니다. 분석의 과정은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피분석자)이 힘을 합쳐 읽어내는 겁니다. 분석의 목적은 적응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겁니다. 그러한 과정이 약, 수술 칼, 방사선도 아닌 누구나 쓰는 말을 이용한 대화로 이루어지는 점이 놀랄 만합니다.

분석시간에 피분석자의 의무는 ‘자유연상’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노력합니다. 자유연상이란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거르지 말고 모두 다 분석가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분석가의 의무는 분석적 듣기로 시작됩니다. 역시 쉽지 않습니다. 말하고 듣기는 두 사람 사이 대화의 기본입니다. 물론 분석가는 듣기로 끝내지 않고 의미를 이해하고 이해한 바를 해석을 통해 돌려주려 합니다.

‘분석적 듣기’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삐딱하게 듣는 겁니다. 피분석자의 자유연상을 그대로 듣기보다는 양말의 속을 뒤집어 보듯이 말 속에 숨어있는 동기, 감정, 의미를 알려고 합니다. 분석가의 능력은 말에 내재된 방어, 저항을 일단 해결하고 전이를 활용해 갈등의 뿌리를 찾아내는 예민성과 이를 대화를 통해 해석으로 전달하는 역량입니다. 분석가의 대화는 분석가와 피분석자 사이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늘 자신과도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 시점에 피분석자가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석은 결국 어떻게 듣고,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석하는지의 문제입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분석의 근간이 자유연상이어서 앞뒤 관계와 논리를 찾기 어려운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 분석가 자신이 혼돈 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때 분석가 자신의 무의식이 표현하는 감정이 해결책이 됩니다. 활발하게 시간 내내 이야기를 하는 피분석자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할 이야기를 숨기고 필요 없는 이야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찾아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충분한 수련, 경험, 계속되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영국 분석가 윌프레드 비온은 분석 시간에 들어가면 “기억과 소망을 다 잊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타당한 말입니다. 분석가의 마음이 무심하게 비어 있어야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말로 이루어지는 진단과 치료입니다. 하지만 말의 내용에만 집중하면 중요한 정보를 놓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과정도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흥미로운 꿈 이야기를 불쑥 꺼냈을까?” 꿈을 보고해야 한다는 책임은 벗어나고 숨기고 싶은 내용은 드러내지 않으려는, 두 가지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겠지요. 분석가는 이를 저항과 방어로 읽어내고 필요하면 피분석자에게 해석해 줍니다.

프로이트는 ‘분석적 듣기’를 다양한 상징을 써서 표현한 바 있습니다. 외과 의사처럼, 거울처럼, 전화기처럼…. 수술 성공을 위해 냉철함이 필요한 외과 의사처럼 분석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상처나 출혈에도 분석가가 공감하지 않으면 피분석자는 상처를 더 받습니다. 상처를 급하게 봉합하려 하면 저항과 방어를 보일 겁니다. 분석가는 조심스럽고 꾸준한 편이 좋습니다. 거울처럼? 가능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닦아도 완벽한 거울은 없으니 분석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오히려 활용하자는 겁니다. 전화기 상징은? 피분석자와 분석가의 무의식끼리 주파수를 맞추어 송신과 수신을 한다는 주장은 구체적으로 실천하기에 너무 추상적입니다.

분석의 요체는 피분석자의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발목 잡고 있는지를 알도록 해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살도록 돕는 겁니다. 방법은 피분석자의 고유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특정 이론에 기대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듣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석적 듣기’와 ‘일상적 듣기’가 다르기는 하나 ‘분석가인 척’을 하면 꼭 다루어야 할 주제를 놓친다는 것이 경험 많은 분석가들의 조언입니다. 피분석자가 침묵하면 너무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래 방치하면 상식에도, 분석적 듣기에도 어긋납니다. 정신분석은 매우 전문적인 치료 행위이지만 상식에 기반을 둔 방법이라는 것이 현대 정신분석학의 관점입니다. 제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국제적으로 저명한 분석가들 모두 말과 행동에 있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분들이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주요기사
#자유연상#분석적 듣기#정신분석학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