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이성주 “한국과 닮은 동유럽 감성을 담았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5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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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세대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보헤미안의 필링이 가득한 콘서트를 이틀간 연다. 100년 이상 묻혀 있던 노바크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국내 최초로 공개 연주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스테이지원
국내 1세대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보헤미안의 필링이 가득한 콘서트를 이틀간 연다. 100년 이상 묻혀 있던 노바크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국내 최초로 공개 연주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스테이지원
■ 1세대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의 ‘보헤미안 스케치’

18·19일 예술의전당 IBK홀서 콘서트
“서정적인 체코음악, 한국과 많이 닮아”


이성주 교수와의 인터뷰는 그가 몸담고 있는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실에서 영상촬영과 동시에 진행됐다. 연구실 커다란 유리문 밖으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내려다보였다. “뷰가 참 좋죠?”. 이성주 교수가 말을 뗐다.

카메라 앞에서 이성주 교수의 프로필을 읽었다. 딱 절반 읽었다. 너무 길어서다. 1964년 서울시향 소년소녀 협주곡의 밤을 통해 데뷔했고 1966년 이화 경향 콩쿠르에서 특상을 받았다. 이화여중 재학 중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줄리어드음대에서 공부했다. 1977년 뉴욕 카프만 홀에서 데뷔 리사이틀. 당시 뉴욕타임즈로부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찬사를 받으며 본격적인 프로 연주자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뉴욕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 또는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됐다.

“이 많은 이력을 다 기억하시냐”고 물으니 “그 정도까지는 외우는데 그 뒤는 나도 잘 모른다”며 웃었다. 세계 유명 지휘자, 피아니스트, 오케스트라와의 연주 이력은 워낙 많아 본인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활동을 병행해 온 이 교수는 이번에 꽤 기대되는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이름하여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의 보헤미안 스케치’. 18일과 19일 이틀 동안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막을 올린다.

첫날은 피아노와 함께하는 독주회 형식으로 ‘로맨틱 프라하’라는 부제를 달았다. 둘째 날은 챔버의 밤이다. 드보르작의 작품으로만 프로그램을 짰다. 그래서 타이틀도 ‘슬라빅 드보르작’이다.

이성주 교수는 프라하, 드보르작과 인연이 있다. 2004년 드보르작의 서거 100주년을 맞아 프라하 드보르작홀에서 협주곡을 연주했다. 프라하와의 인연은 실은 좀 더 많이 올라가야 한다.

“1980년대 중반이었다. 챔버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 겸 악장으로 처음 프라하를 방문했는데 그때는 도시가 굉장히 어둡고 낡은 느낌이었다. 어딘지 소외된 듯한 장소랄지.”

20년이 지나 다시 찾은 프라하는 이 교수를 놀라게 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었다. 그건 음악이다.

“체코의 음악은 감성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서정적이면서 민속적이다.”

이 교수가 “이 얘기는 꼭 해야 한다”며 첫날 콘서트 프로그램을 보여줬다.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G장조에 이어 두 번째로 연주될 곡이다. 비테슬라브 노바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d단조라는 곡이다. 이름이 낯설다.

“사실 나도 잘 몰랐던 작곡가다. 우연치 않게 유튜브에서 들었는데 곡이 너무 좋았다. 연주를 해보고 싶은데 악보를 구할 수가 있어야지. 나중에 다시 찾아보니 유튜브에서도 사라졌더라.”

결국 프라하에 살고 있는 지인을 통해 악보를 구할 수 있었다. 프라하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냈다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1891년에 작곡되었지만 작곡넘버는 없다. 피아노 반주는 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맡는다.

둘째 날에는 김대진(피아노), 김영욱(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이 함께 무대에 선다. 요즘 국내 클래식계에서 가장 핫한 실내악단 중 하나인 노부스콰르텟의 멤버 김영욱은 이성주 교수의 제자이기도 하다.

“요즘 클래식계가 너무 쉬운 곡, 파퓰러한 곡들만 요구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는 이성주 교수에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해달라고 하니 많이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같이 열심히 합시다”하고 말았다.

그렇다. 왕도는 없다. 설사 왕이 된다고 해도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 부단히 고민하고 연구하고 연습 또 연습해야 한다. 예술가의 길이란 그런 길인 것이다.

◆ 이 인터뷰의 영상은 네이버TV, 카카오TV, 동아닷컴 VODA ‘스타저장소’와 유튜브 ‘공소남’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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