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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히지 않았던 당신의 인생, 다시 찬찬히 읽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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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히지 않았던 당신의 인생, 다시 찬찬히 읽어 보라

김기윤 기자 입력 2019-04-02 03:00수정 2019-04-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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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뮤지컬 ‘호프’
뮤지컬 ‘호프’에서 에바 호프(김선영·가운데)가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가던 순간을 떠올리며 원고 ‘K’(고훈정·왼쪽)에게 안긴 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클립서비스 제공
“평생 종잇조각만 붙들고 세상과 싸우는 미친 여자.”

사회와 단절돼 원고에만 매달려 사는 한 노파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에바 호프. 그녀는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을 상대로 원고 소유권을 놓고 30년 동안이나 소송을 이어왔다. 세상은 그녀가 손에 쥔 원고가 고인이 된 한 유명 작가의 미발표 작품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해 그녀를 ‘아집에 가득 찬 78세 노인네’ ‘원고에 미친 여자’로 몰아갔다. 그 누구도 그녀의 괴팍한 태도나 아집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뮤지컬 ‘호프(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무엇이 한 노파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작품은 유대계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유작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실제 사건의 얼개를 토대로 가상 인물들을 만들어 ‘호프’라는 인간이 인생을 걸고 원고를 지키는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수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전쟁터, 법정, 경매장, 집 등으로 배경이 빠르게 전환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다만 일부 장면 전환에서는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이 급박하게 역할을 바꾸느라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아쉽다.

작품 속 주인공과 인물 간 갈등의 중심에는 늘 ‘원고’가 있다. 이 때문에 연출자는 아예 원고를 의인화해 ‘K’라는 배역으로 구현하는 신선함을 선보였다. 오직 호프의 눈에만 보이는 ‘K’는 주인공을 향해 “원고에서 벗어나 너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고 노래하며 주인공의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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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며 삶을 견뎌나가는 호프의 모습은 삶을 견뎌내는 우리의 그것과 닮았다. 극 중 호프가 “잃어 본 사람은 알아”라고 읊조릴 때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많다. 작품은 “그동안 읽히지 않았던 네 인생을 다시 찬찬히 읽어 보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김선영 차지연 고훈정 조형균 등 출연. 5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5만5000∼8만8000원. 13세 관람가.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호프#유대인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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