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와 주먹밥 싸들고 감태나무 찾아 헤매던 기억 생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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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자’ 책 펴낸 인오 스님

자신이 만든 주장자를 살펴보고 있는 인오 스님. 벽에 줄지어 늘어선, 길이가 각기 다른 주장자들이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인오 스님 제공
자신이 만든 주장자를 살펴보고 있는 인오 스님. 벽에 줄지어 늘어선, 길이가 각기 다른 주장자들이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인오 스님 제공
당나라 선승 임제 선사에 얽힌 얘기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그는 스승 황벽 선사를 만나 밤을 낮으로 여기고 정진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그대는 왜 황벽 선사를 만나 불법의 참뜻을 묻지 않는 건가”라고 했다. 이에 임제 스님이 황벽 선사를 찾아 그 뜻을 물었지만 스승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주장자(柱杖子)로 제자를 내리쳤다. 임제 선사는 세 차례 스승을 찾아가 주장자로 두드려 맞은 뒤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이처럼 주장자에 얽힌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적지 않다. 주장자는 출가자가 몸에 지녀야 할 지팡이이면서 불법(佛法)의 상징이었다.

부산 원광사 주지 인오 스님(54)이 최근 출간한 ‘주장자’(맑은소리맑은나라·1만5000원·사진)에는 은사 지일 스님과의 추억이 담겨 있다. “은사와 주장자 얘기를 나눴는데 그럼 주장자를 만들자고 하시더군요. 주먹밥과 김치를 싸서 천성산 영축산 운문산 등지를 돌며 재료가 되는 감태나무를 찾아다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네요.”

그로부터 4, 5년 뒤인 2001년 은사는 입적했다. 21일이 17주기다. 은사 입적 뒤에도 인오 스님의 주장자 사랑은 계속됐다. 겨울마다 가볍고 단단한 감태나무를 찾아 산을 오르내리며 작업한 주장자가 250여 개 이른다.

“감태나무는 가지에 빨간 잎이 남아 있어 겨울에 찾기가 더 쉽습니다. 혹 벼락 맞은 나무는 번뇌가 사라진다고 해서 최상으로 칩니다. 껍질을 구워 벗겨내고 물로 씻고 그늘에서 말린 뒤 옻칠 작업을 합니다.”

이 책은 주장자 백과사전을 연상시킨다. 주장자의 의미를 비롯해 경전과 설화, 고전 속의 주장자 이야기, 경봉·성철 스님의 주장자 법문을 실었다.

주장자는 부처 재세 시기뿐 아니라 후대까지 불법을 상징하는 법구(法具)로 계승됐고, 석장(錫杖) 지장(智杖) 덕장(德杖)으로도 불렸다. 윗부분을 탑 모양으로 만들어 고리를 여러 개 달았는데, 보시 인욕 정진 등 보살의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6개의 고리가 있는 것은 육환장(六環杖)이라고 한다.

인오 스님은 “주장자를 통해 바른 수행 기풍과 가르침의 엄격한 정신을 볼 수 있다”며 “큰 스님들의 위엄을 보여주는 주장자를 과거처럼 자주 볼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장자 전시회도 내년 3월 서울 조계사와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부산 원광사#인오 스님#주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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