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세계인의 영어 열풍, 英 산업혁명 이후 시작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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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전파담/로버트 파우저 지음/356쪽·2만 원·혜화1117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인 외과 의사 이인국은 기회주의자로 평생을 호의호식한다. 그의 비결은 다름 아닌 ‘언어’였다. 일제강점기 땐 일본으로 유학해 일본어를 익혔고, 광복 후 소련이 진주하자 러시아어를, 6·25전쟁이 터지고 월남한 후엔 유창한 영어를 통해 친미파로 살아남았다.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힘 있는 국가의 언어가 힘없는 나라로 흘러들어가고, 외국어가 권력이 되는 현상은 세계사가 증명한다. 이 책은 고대 문명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주요 언어의 전파 과정을 파헤친다. 저자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한 미국인 언어학자다. 모국어인 영어부터 라틴어, 독일어, 일본어, 몽골어, 중국어까지 각국의 언어를 섭렵한 해박한 지식이 우리말로 직접 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활발한 언어 전파의 시작은 고대 종교의 확장에서 찾을 수 있다.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자연스레 라틴어로 기록된 성경이 널리 퍼져나갔다. 유럽 전반으로 기독교가 보급되면서 라틴어가 유럽의 뿌리 언어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중동의 아랍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과 함께 아랍어가 지배적인 언어가 됐다.

지금과 같은 ‘외국어’의 전파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가 형성된 이후부터다. 국가와 함께 국어가 등장했고, 이에 대비되는 외국어라는 개념이 나타났다는 것.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지배자의 언어는 식민지 정책의 대표적인 무기가 돼 피식민지에 뿌리 내린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어에 밀렸던 영어가 세계의 중심에 등장한 것은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부터다. 20세기 초반 세계 1·2차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세계의 패권을 휘어잡으며 영어의 지위는 지금처럼 공고해졌다.

미래의 언어는 어떻게 될까. 영어의 영향력이 여전하겠지만 인공지능(AI)의 발달로 과거처럼 영어 능력 자체가 권력으로 작동하는 시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예측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외국어 전파담#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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