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27>‘나를 있게한 4년 돌보미복’, 정부가 교육시키고 검증했다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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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거 봐. 선생님이 아가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머리를 때렸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아이들이 내가 틀어놓은 뉴스를 보곤 소리쳤다. 아이돌보미가 아이를 학대해 논란이라는 내용이었다. 공개된 CCTV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50대 아이돌보미 여성이 밥을 잘 먹지 않는다며 14개월 아기의 뺨을 때리고 소리를 지르거나 꼬집고 머리채를 잡는가 하면 발로 차기까지 했다.

영상을 보는 남도 이렇게 가슴이 철렁한데 부모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우리 아이들도 무서운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엄마, 우리 집 돌보미 선생님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치?”

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의 오랜 이용자다. 둘째를 낳고 복직하기 전인 2015년부터 꾸준히 이용했으니 햇수로 벌써 4년차다. 내가 기자라는 ‘반(反)워라밸’ 직업과 다자녀 엄마라는 만만찮은 역할을 병행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이 서비스의 역할이 컸다. 어린이집과 친정의 도움이 미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시간, 그 보육공백을 아이돌보미가 메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져 여기저기서 몰매를 맞는 걸 보자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다. 솔직히 여러 보육 서비스 중 이만한 양질의 서비스가 없단 생각에 틈만 나면 아이돌보미를 홍보해왔다.

정부가 선발하지, 틈틈이 관리하지, 사설 육아도우미(베이비시터)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지…. 나처럼 여러 아이를 동시에 맡기는 경우엔 혜택도 더 크다. 두 아이를 함께 신청하면 이용금액의 25%, 세 아이면 33.3%를 감면해주기 때문이다. 자녀수, 소득수준 등에 따라 정부로부터 추가지원도 받을 수 있다. 가장 지원폭이 큰 ‘가’ 형의 경우 본인부담액이 시간당 1447원(시간제 일반형·2012년 이후 출생아동)에 불과하다. 사설 도우미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아이돌보미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정부가 보증한 육아도우미’라는 점일 것이다. 아이돌보미 선생님은 신원확인 등 정식 취업절차를 거쳐 교육을 받고 가정에 배치된 후에도 정기적으로 재교육을 받는다. 이용가정 모니터링도 한다. 나도 최근 아이돌보미 모니터 요원의 불시 방문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꼼꼼히 질문하며 확인하시는 모습을 보고 ‘역시 좋은 제도’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이런 관리체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학대 피의자는 아이돌보미 활동경력만 6년에 이른다고 한다. 그동안 수많은 교육과 점검을 거쳤을 텐데 모두 무사통과했다니 기존 관리시스템의 부실을 묵과할 순 없다.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라고 마냥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이런 위험에 대비해 아이돌보미를 자격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었다. 지금처럼 주어진 수업만 수료하면 돌보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절차와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획득하도록 하고 보다 엄정히 관리하겠다는 내용이다.

한데 이렇게 교육과 관리를 강화하면 자연히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난다. 안 그래도 최저임금 인상 등에 발맞춰 6000~7000원 수준이던 아이돌보미 시간당 이용금액이 올해 9650원으로 훌쩍 뛴 참이다. 내 경우 휴직으로 소득이 줄면서 정부금액을 일부 지원받게 됐음에도 오히려 내는 돈이 지난해보다 더 늘었을 정도다. 지금보다 비용이 더 오른다면 시간당 급여가 만 원꼴인 사설 도우미와 별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결국 방법은 국가가 늘어나는 비용을 대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도 아이돌보미에 대한 지원은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올해부터 정부지원대상이 확대되고 지원시간이 600시간에서 720시간으로 늘긴 했지만 실사용자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정부지원 대상인 ‘다’ 형조차 본인부담금이 시간당 8202원(시간제 일반형)으로 지원을 못 받는 ‘라’ 형(9650원)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감면을 받고 있는 나도 여전히 매달 200만 원가량을 아이돌보미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사설 도우미를 이용할 때보다는 저렴하지만 월급쟁이 입장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비용이 더 오른다면 아마도 나를 비롯해 많은 이용가정이 사설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가끔 정부가 내놓은 여러 현금지원정책들을 보면 ‘차라리 저 돈으로 아이돌보미나 어린이집을 더 지원해주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임신 시 병원비 지원, 출산 시 지원금 지급, 아이에게 매달 양육비 지원, 병원 진료 시 의료비 경감 등등 모두 좋지만 그 어느 것도 어린이집이나 아이돌보미처럼 내게 ‘시간’을 벌어다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은 그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일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하고 삶의 재충전 기회를 갖기 위해. 지난해 내가 인터뷰 했던 보육 전문가도 이런 말을 했다. “이 시대의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우리 집 아이돌보미 선생님은 2015년 첫 이용부터 지금까지 4년 넘게 오고 계신 분이다. 서울 금천구 같은 극한사례가 아니더라도 이런 저런 이유로 돌보미 부침을 겪는 집들이 많은데 나는 천운으로 처음부터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종종 우리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도 ‘그때 그 선생님이 아직도 계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내가 정말 전생에 우주라도 구해서 오복(五福) 중 가장 귀하다는 ‘이모복’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난 내 경우가 그저 아이돌보미가 잘 운영됐을 때의 모범사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잘 굴러가기만 한다면 다른 아이돌보미 이용자들도 나처럼 다자녀를 낳고 기자도 하는 ‘언감생심(!)’ 꿈을 꿔볼 수 있다.

이번 금천구 사건이 이렇게 좋은 아이돌보미 시스템을 개선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그러자면 그저 한 사건의 피의자를 처벌하고 제도의 허점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실제 예산과 인력을 늘려 실사용자들 입장에서 체감도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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