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열린 마당+창의적 인재=혁신의 본산이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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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美 스탠퍼드대

그림 이중원 교수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넥스트 실리콘밸리는 어디일까?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중요하지만 중국인에게도 중요하고, 하물며 미국인에게도 중요하다. 현재 각 국가 대표 도시마다 경쟁하며,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대학들은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하면서 저마다 자신들의 대학과 인접 리서치 파크가 넥스트 실리콘밸리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촉진되기 위해서는 어떤 건축적 조건이 필요한가? 한 도시의 혁신이 다른 도시의 혁신보다 우수하기 위해서는 어떤 이노베이션 사이클링을 건축적으로 기획해야 하는가?

지금은 ‘실리콘밸리’ 하면 떠오르는 기업이 애플, 구글, 페이스북이지만 원래 실리콘밸리가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되짚다 보면 스탠퍼드대에 도달한다. 스탠퍼드대는 역사의 필연과 우연, 인간의 의지와 실험의 소산이다.

철도 왕 릴런드 스탠퍼드와 부인 제인 스탠퍼드는 사랑하는 아들을 유럽여행 중에 어처구니없이 잃었다. 15세의 아들은 이스탄불에서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피렌체에서 죽었다. 부부는 망연자실했다.

다음 날 릴런드는 외쳤다. “이제 다른 집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 되리라.” 부부는 귀국행 선박에서 대학 설립을 다짐했다. 릴런드는 동부 명문대인 매사추세츠공대(MIT), 하버드대, 코넬대를 방문했다. MIT의 워커 총장은 뉴욕 센트럴파크를 디자인한 조경가 프레더릭 옴스테드와 저명한 보스턴 건축가 찰스 쿨리지를 릴런드에게 소개했다.

당시 대학들은 지식 습득 못지않게 도덕 함양을 중시했는데, 이를 충족하기 위해 대학을 도심이 아닌, 자연 속에 지었다. 릴런드는 자신의 농장 ‘팰로앨토’(palo alto·스페인어로 ‘높은 나무 막대’라는 뜻)를 기부했다. 릴런드는 축과 좌우 대칭을 강조하는 조경을 옴스테드에게 요구했다.

릴런드는 유럽식이나 동부식이 아닌, ‘캘리포니아식” 건축 양식을 요구했다. 쿨리지는 길고 낮은 건물 집합을 캘리포니아산 노랑 샌드스톤과 빨강 지붕 타일로 마감했다. 또, 다리가 짧은 로마네스크형 투박한 아치들을 써서 스탠퍼드대 특유의 정체성을 확보했다. 이는 미션 건축(유럽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용 건물 집합)과 쿨리지 스승(건축가 헨리 리처드슨) 건축인 ‘리처드소니언 로마네스크’ 건축을 혼합한 결과였다. 특히, 돌을 아주 두껍게 사용한 점과 돌 표면에 망치와 정의 궤적을 분명히 남긴 점은 눈에 띄었다.

오늘날 스탠퍼드대는 달걀 모양의 잔디밭 광장을 지나 정문을 지나면 전정인 메모리얼 코트가 나오고 중정인 메인 콰드가 나오고 끝에 대학 교회당이 있다. 메인 콰드 좌우로는 타워로 된 관문이 있고, 그 너머에는 부속 마당들이 접속했다. 모든 마당에 아치 회랑이 돈다. 회랑은 깊고 짙다.

스탠퍼드대는 종횡이 모두 열린 마당 체계로 전개되는데, 이 점이 무리 없이 물리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다. 메인 콰드 일곽은 릴런드가 쿨리지와 협업하여 지었고, 메인 콰드 외곽은 릴런드 사후에 제인이 쿨리지와 협업하여 지었다. 교회당과 거대한 초기 정문(현재는 소실)에서 제인 취향인 비잔틴 양식이 곳곳에 보이는 이유이다.

캠퍼스 건축 못지않게 릴런드가 신경을 쓴 점은 총장 선발이었다. 그는 기존 지식을 수용하는 지식인보다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지식인을 찾았다, 또, 학자이면서 우수한 경영자인 사람을 찾았다. 첫 총장을 임명하기까지 무려 4년을 썼다.

스탠퍼드대의 또 다른 숨은 저력은 땅이었다. 릴런드가 기부한 팰로앨토 농장의 규모는 9000에이커였다. 약 1100만 평으로 여의도보다 무려 4.3배가 큰 규모다. 스탠퍼드대는 이 땅을 스마트하게 기획했다. 부동산 장사를 하지 않고 리서치 파크를 만들었고, 그곳에 최첨단 하이테크 기업들만 받았다. 대학과 기업이 시너지를 일으키게 했다.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레더릭 터먼 교수는 스탠퍼드대의 또 다른 인적 자산이었다. 그는 학생들의 창업정신을 격려했고, 대학이 학문 메카에서 창업 메카로 바뀌어야 함을 역설했다. 그의 제자 휼렛, 패커드와 베리언이 굴지의 기업가로 변신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도시가 대학을 끼고 넥스트 실리콘밸리가 되고자 노력한다. 시카고대를 중심으로 시카고가 그러했고, 펜실베이니아대(유펜)를 중심으로 필라델피아가 그러했다. 시카고대와 유펜의 경우는 지역의 낙후된 흑인 커뮤니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까지 혁신지구 만들기 프로젝트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우수 인재 영입이 가장 중요한데, 글로벌 우수 인재가 어떤 환경적 조건을 원하는지 모르는 데서 비롯됐다. 스탠퍼드대에서 도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마거릿 오마라 교수는 스탠퍼드대의 조건을 몰랐던 점이 두 실패 사례의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스탠퍼드대의 성공 조건을 우리가 재차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다.
 
이중원 건축가·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스타트업#실리콘밸리#스탠퍼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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