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유기하는 미혼모 언제까지…“남성도 절반의 책임”

  • 뉴시스
  • 입력 2018년 12월 9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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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혼모는 산에서 구덩이를 파고 아이를 묻으려고 했었다고 해요. 하지만 아이 울음 소리를 듣고 도저히 못하겠어서 베이비박스를 찾아왔었죠. 오면서 하혈을 너무 많이 해서 대문 앞에서 주저앉은 모습으로 만났습니다.”

이종락 목사는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유기되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이다. 그는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되는 미혼모들을 숱하게 마주해왔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목사가 만난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아이에 대한 악의가 아닌 현실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 목사는 “임신과 출산을 학교 혹은 사회에서 알게 됐을 때 미혼모들은 불이익을 받게 되고 편견과 무시 속에서 살아야 한다”며 “무조건적으로 미혼모를 비난하는 분위기로 인해 소중한 생명이 죽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전북 익산에서는 원룸에서 홀로 아이를 출산한 뒤 방치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쓰레기 더미에 유기한 혐의를 받은 산모가 구속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산모가 홀로 출산하고 유기해야 했던 상황에 이르도록 아이의 아버지와 사회는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적 의견이 제시됐다.

트위터 아이디 @neou**** 이용자는 “낙태를 해도 불법이고 그렇다고 낳아서 잘 키울 수 있는 환경과 능력은 부족하지 않나. 국가가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며 “피임에 소홀한 게 여자의 죄인가. 신생아를 유기한 건 잘못이지만 씁쓸하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해 공감을 얻었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이 이뤄질 경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양육 부담이 여성에게로 쏠린 현상은 통계적으로도 나타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8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 부와 모는 3만3108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미혼모의 비중은 72.3%(2만3936명), 미혼부는 27.7%(9172명)로 차이가 현저하게 벌어진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출산이 이뤄질 경우 여성이 홀로 그 책임을 지고 영아 유기로 입건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박현호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주로 어머니가 아이를 유기하는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고, 아버지가 직접 유기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잡는 게 어려워 동시 처벌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도의적으로는 아버지가 미혼모 양육에 양육비를 지원해야 하나 법적으로 양육비 지원이 필수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황태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법에서는 책임주의라서 개인이 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게 된다. 남자가 원인 제공을 했어도 아이를 버리는 행위를 여자가 하면 여자가 처벌 받을 확률이 높다”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 모두의 책임이 맞지만 형법으로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제도와 사회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신생아 유기와 같은 안타까운 사건이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국 모든 출산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는 게 아니기에 여성들만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한 현실”이라며 “영아 유기 사건 뉴스에서 접하는 젊은 여성들에 대한 범죄자 취급이 잘못된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도 절반의 책임이 있으며, 출산의 문제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미혼모의 영아 유기를 막으려면 사회에서 양육을 책임지는 식의 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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