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다시 달리는 ‘지하철 1호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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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1’ 원작자 초청 흉상 제막식… 설경구-김윤석 등 옛멤버 응원 관람
국내 뮤지컬 고전… 서사의 힘 여전

약혼자를 찾아 옌볜에서 온 선녀(장혜민·왼쪽에서 세 번째)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외환위기 당시 서울의 속살과 서민의 삶을 들여다본다. 학전 제공
약혼자를 찾아 옌볜에서 온 선녀(장혜민·왼쪽에서 세 번째)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외환위기 당시 서울의 속살과 서민의 삶을 들여다본다. 학전 제공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은 공연 전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국내 뮤지컬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지하철 1호선’이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을 기념해 원작 ‘라인1’의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을 초청해 흉상 제막식을 열었기 때문이다. 김민기 학전 대표와 ‘지하철 1호선’ 출신 배우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제막식에 이어 열린 공연도 함께 관람하며 다시 달리는 ‘지하철 1호선’을 응원했다.

오랜만의 공연이지만 작품이 가진 서사의 힘은 여전히 강력했다. 지하철 안의 천태만상은 외환위기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지하철을 탄 부부, 상처 때문에 엇나간 여고생, 시간강사로 전전하는 남자, 반대 방향 열차를 타버린 평범한 직장인…. 무심한 듯 신문을 들여다보고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지만, 다들 각자의 사연과 삶의 무게를 안은 채 덜컹이는 어두운 선로 위를 함께 달린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의 쓸쓸한 삶이 주축을 이루지만 극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빼놓을 수 없는 건 밴드 음악이다. 5인조 라이브 밴드가 극 내내 함께 공연한다. 올해 남북 정상회담 당시 음악감독을 맡았던 정재일이 편곡해 새로운 감각을 더했다. 다만, 밴드 음향 때문에 배우들의 노래가 묻히는 부분은 아쉬웠다.

이날 학전 출신 배우들은 관람석을 끝까지 지킨 채 환호와 격려의 박수를 유도하며 분위기를 돋웠다. 김윤석은 “10년 만의 공연이지만 지하철은 여전히 시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교통수단이고 그 안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통일이 된 후에도 공연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현성 역시 “예전 이야기지만 보편적인 감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을 어루만지기 때문에 요즘 관객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이제 막 다시 시작했으니 힘차게 달릴 수 있도록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하철 1호선’을 통해 본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의 서울은 열망과 좌절, 실패를 간직한 과거의 공간일 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비춰주는 현재형 공간이기도 했다. 그 공간을 관통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지하철이다. 극의 마지막, 서울역의 부랑자들이 “우리를 태워주는 건 지하철밖에 없다”고 말할 때의 울림은, 그래서 여전히 묵직하다. 12월 30일까지. 6만 원. ★★★☆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지하철 1호선#뮤지컬#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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