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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문파티에 취해 몸에 불똥 튀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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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문파티에 취해 몸에 불똥 튀는지도 몰랐다

박세준 기자 입력 2018-09-15 23:40수정 2018-09-1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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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이비사, 태국 코팡안 풀문파티 가보니
[박세준 기자]
‘30대가 되기 전 해외에서 혼자 정신줄 놓고 한번 놀아보자.’

올여름 휴가를 계획하며 가장 먼저 한 생각이다. 한국 나이로 서른이지만 아직 만 나이로는 스물아홉이니 말이다. 목표는 세웠으나 장소가 문제였다. 적당한 거리에 적당한 가격의 여행지를 찾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처음 떠올린 곳은 1년 365일 파티가 열린다는 스페인 이비사. 하지만 비행기표 가격만 100만 원이 넘었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다녀올까 싶었지만, 바르셀로나에 살던 지인도 스페인행을 말렸다. 돈도 돈이지만 4박 5일 일정으로는 짧을 수 있다는 것.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태국 코팡안 풀문파티였다.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뜨는 밤에 태국 동남부의 섬 팡안에서 열리는 파티로, 작은 휴양지인 섬을 동양의 이비사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팡안 풀문파티’로 알려져 있지만 코(Koh)가 태국어로 섬이라는 뜻이니, 한국어로 옮기면 ‘팡안섬 풀문파티’다. 물론 섬으로 가는 배편까지 고려해야 했지만 이비사보다 가깝고 저렴했다. 게다가 해변 전체가 클럽이 된다니, 휴가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곳이었다. 8월 26~28일 사흘간 팡안섬에 머물며 파티를 즐겼다.
코사무이에서 코팡안으로 들어가는 배 안. [박세준 기자]

태국 변방에서 유럽을 느끼다


태국 여행 커뮤니티를 검색한 결과 코팡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한국에서 코사무이(사무이섬)로 간 뒤, 배를 타고 팡안으로 들어가는 것. 문제는 코사무이 직항 노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보통은 방콕 등을 경유하는 노선을 타고 코사무이에 도착한다. 기자는 돈을 아껴보려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푸껫을 경유하는 노선을 선택했다. 모든 해외여행자의 조언처럼 경유지는 적을수록 좋다. 마지막 푸껫에서 경비행기 수준의 작은 비행기를 타고 코사무이에 들어갈 때 확신했다. 경비를 아끼려다 올해 연봉도 다 못 받고 이승을 뜨는 것은 아닌지 불안이 엄습했다.

코사무이에 도착하면 택시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웬만하면 도착 전 선착장행 택시를 예약해둘 것을 추천한다. 공항 끝 쪽에 택시를 탈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호텔 픽업 차량이 거의 점령한 상태였다.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도 바가지를 씌우기 일쑤다. 선착장에서 만난 다른 여행객도 2km 남짓 왔을 뿐인데 택시비로만 300바트(약 1만 원)를 냈다며 화를 냈다. 태국 물가를 감안하면 몹시 비싼 편이다.

기자는 출발 전 선착장 픽업 서비스를 예약해뒀다. 안내문에 최소 40분 전에는 나와서 기다려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혹시 승객이 빨리 오면 일찍 출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말을 굳게 믿고 픽업 50분 전부터 택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물론 기자를 데리러 온 선착장 직원은 없었다. 혼자 1시간을 기다린 뒤 선착장 직원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았다. 공항 자체를 리조트처럼 꾸며놓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택시 대기실 직원과 한담을 나눴다. 그는 “여기서 1시간 먼저 와 기다리라는 얘기는 ‘정시에 도착하겠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착장에 도착했다. 말이 선착장이지 바닷가에 컨테이너 박스 1개와 천막이 있는 게 전부였다. 천막 밖에 작은 배가 2척 보였다. 다행히 배는 튼튼한 듯했다. 천막 안에서 20명 남짓한 사람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태국의 작은 섬에 가는 배편인데 승객은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백인이었다. 동양인은 기자밖에 없었다.

파티 이야기만 들어보면 대단위 클럽이 밀집한 섬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섬에 도착하니 외관은 한적한 바닷가에 가까웠다. 오래되고 낮은 건물 앞 그늘에는 개들이 여기저기 누워 자고 있었다. 섬을 채운 사람은 대부분 관광객이었다. 태국의 작은 섬마을이지만 태국어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유럽과 북미권에서 온 사람이 가장 많았고 간혹 중국, 일본,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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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택시기사들이 흥정을 시작했다. 이곳 택시는 트럭 화물칸을 좌석으로 개조한 것으로, 사실상 버스에 가깝다. 이 트럭에 6~8명이 탄다. 풀문파티는 섬 남쪽 끝자락인 핫린(haad rin) 해변에서 열리지만 이 근처에는 숙박시설이 많지 않다. 깨끗한 바다로 이름난, 오히려 섬 북쪽의 샐러드 해변(salad beach)이나 시크릿 해변(secret beach)에 숙소가 밀집해 있다. 핫린 해변에서 오토바이로 20~30분 거리. 해수욕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에 숙소를 잡는 편이 낫다. 핫린 해변의 바다는 별로 깨끗하지 않다.

하지만 파티를 즐기러 왔다면 핫린 해변 근처에 숙소를 잡을 것을 추천한다. 이 섬의 교통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 아스팔트로 제대로 포장된 도로를 찾기 힘들다. 포장이 돼 있더라도 여기저기 깨져 있기 일쑤다. 그만큼 차가 흔들린다. 화물차를 개조한 택시 좌석에 앉아 있으면 군 복무 시절 탔던 2.5t 트럭의 승차감이 그리워질 정도다.

이미 축제는 시작됐다


다행히 출발 한 달여 전 숙소를 예약해둬 해변 근처에서도 깔끔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리조트에서 지낼 수 있었다. 기왕이면 2박 3일 일정을 잡는 편이 낫다. 풀문파티 당일 하루 숙박하는 가격이 2박 3일 숙박비보다 비싸다. 가장 좋은 일정은 풀문파티가 열리기 하루 전에 섬에 들어오는 것. 인근 리조트와 해변에서 풀문파티 전야제가 열린다. 하지만 휴가 일정이 맞지 않아 풀문파티 당일 섬에 들어와 하루 더 머물고 나가는 일정을 잡았다.


기자가 섬에 들어온 시간은 낮 2시. 벌써 해변으로 향하는 거리는 축제 분위기였다. 파티 드레스 코드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 형광 도료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몸에 역시 형광 도료로 그림을 그린다. 인근 가게에 가면 형광 도료 티셔츠를 100~200바트(약 3400~6800원)에 살 수 있다. 질은 좋지 않지만 티셔츠는 불티나게 팔렸다. 해변에서 놀다 보면 옷을 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바다를 화장실로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날 입은 옷을 다시 입기는 어려우니, 한 번 입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해변에서 파티가 열리는 만큼 수영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이도 많았다.

파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거리 풍경도 화려해졌다. 긴 비행으로 한숨 자고 일어나니 저녁 6시.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오니 모든 가게에서 좌판을 내놓고 형광 도료를 팔고 있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몸 여기저기에 형광 도료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돈을 받고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기자도 처음에는 직접 그림에 도전했지만 미술에 영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프로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가격은 100바트.


8시가 되자 본격적으로 파티가 시작됐다. 원래 풀문파티에는 입장료가 없었으나, 2년 전부터 환경부담금 명목으로 20바트(약 680원)를 받는다. 입장료를 내면 영어로 ‘Haad-Rin beach Full Moon Party’라고 쓰인 팔찌를 묶어준다. 해변으로 향하는 길에는 ‘버킷’이라는 칵테일을 파는 좌판이 죽 깔려 있었다. 말이 칵테일이지 태국 위스키와 맥주, 음료 등을 작은 양동이에 넣어 파는 것이다. 술에 따라 가격은 200~300바트 선이다. 과거에는 다 섞어서 판매했지만 가짜 술을 파는 일부 업체 때문에 요즘은 병째 판매하고 돈을 내면 보는 앞에서 섞어준다. 도수가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웬만하면 한 동이를 사 마실 것을 추천한다. 보통 클럽이 그렇듯 살짝 취기가 올라야 채신머리 없이 놀기 편하다. 혼자 마시기에는 양이 많으므로 2명이 한 동이를 사면 된다. 한 동이를 사면 빨대를 서너 개 꽂아준다.
불붙은 림보를 지나는 사람들(위)과 풀문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박세준 기자]

몸짓만으로도 우리는 친구!


파티가 열리는 해변에 도착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클럽 서너 곳에서는 DJ들이 나와 음악을 틀고 있었다. 풀문파티의 상징 중 하나는 불이다. 해변 한켠에는 ‘Welcome to Thailand 2018’이라는 문구가 불타고 있었다. 해변 중앙부에서는 불쇼가 벌어졌다. 두어 명이 불붙은 곤봉으로 저글링을 하거나, 불붙은 봉을 돌리고 있었다. 이들은 클럽 측에서 섭외한 전문가로 보였다. 일반인이 참가할 수 있는 이벤트도 있었다. 불타는 봉으로 림보를 하거나, 불타는 밧줄로 줄넘기를 하기도 했다.

잘 놀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한국에서도 클럽에 가본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인 데다, 친구도 없이 혼자 호기롭게 파티에 왔지만 대부분 일행이 있는 것 같았다. 소심함이 도져 도착한 후 해변 주위를 배회했다. 술과 음식을 파는 가게 다음으로 많았던 것은 응급처치센터였다. 응급처치센터 관계자는 “깨진 유리병을 밟거나 불 줄넘기, 림보를 하다 다치는 사람이 많아 매번 파티마다 대여섯 개의 의료센터를 연다”고 말했다.

1시간쯤 주위를 돌다 배회를 멈추기로 했다. 기왕 왔으니 정신 놓고 놀자는 마음에 버킷을 한 동이 사 절반을 단숨에 마셨다. 취기가 올라오면서 용기도 생겼다. 어차피 태국이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설령 여기서 누가 내가 춤추는 모습을 보고 추태라 여기더라도 오늘 보고 안 볼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막상 인파 속으로 들어오니 신이 났다. 분위기가 사람을 만들었다. 모두가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안에 있다 보니 표정과 감정이 금방 옮아왔다. 오히려 혼자 간 것이 좋은 선택이었던 듯하다. 동양인 남자가 혼자 놀고 있다는 데 궁금증을 느끼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 덕분에 이름도 모르는 백인 남녀가 모인 곳에 따라가 함께 양동이에 든 술을 나눠 마시고 신나게 한참을 춤췄다. 이름 대신 출신지와 생김새 정도만 아는 친구는 빠르게 늘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이 순간 한정 친구가 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불 림보 앞에 와 있었다. 축제 분위기에 취했는지 림보 게임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 림보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뒤이어 불붙인 밧줄 줄넘기도 해봤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단체 줄넘기를 해본 터라 쉽게 넘었다. 뒤를 돌고 땅을 짚으며 나름의 묘기까지 부렸다. 별 어려움 없이 뛰는 모습을 보니 쉽다고 생각했는지 한 무리의 남녀가 뛰어들었다. 용기는 가상했으나 진입이 서툴렀다. 그들의 어깨로 불 줄넘기가 떨어졌고, 내 팔과 다리에도 잠시 불이 붙었다. 금방 꺼져 화상은 얕았다. 통증이 오면 취기가 달아날 만도 한데 신나는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불 줄넘기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또 술을 나눠 마시며 춤을 췄다.

세계 일주를 하는 기분이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중국, 태국 등 하룻밤 새 생애 가장 다양한 국적의 사람을 만났다. 영어가 서툴러도 괜찮았다. 영미권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영어가 서툴렀다. 분위기가 오른 축제에서 말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었다. 어려운 것은 없었다. 신나게 분위기를 타고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돼 있었다. 어떤 사람은 연인을 만들기도 했다. 해변 구석에서는 꽤 많은 연인이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새벽 3시가 넘어가자 열기가 조금은 사그라졌다. 해변 중심부에는 잠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10명 남짓한 사람이 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코팡안에 숙소를 구하지 못한 사람인 것 같았다. 오전 6시 첫 배를 타고 코사무이로 들어갈 예정인 이도 많았다. 연인들도 하나 둘 숙소로 돌아갔다. 물론 음악이 나오는 곳 앞에는 여전히 사람이 적잖았다. 하지만 DJ부스가 없는 해변에서는 빠르게 인파가 줄었다. 기자도 그날 만난 친구들과 술을 더 마시러 자리를 옮겼다. 즐거운 기분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지만, 모래 바닥 대신 의자에 앉고 싶었고 독한 버킷 대신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해변 근처 가게에서 왁자지껄하게 맥주를 마시고 서로의 다음 날 일정을 물었다. 각각 미국과 캐나다에서 왔다는 이 친구들은 내일 오전 배를 타고 코사무이로 간다고 했다.


해가 뜨면 함께 아침을 먹자고 했지만 아무도 그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친구들이 배를 타러 가는 시간에 겨우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다. 혼자 늦은 아침을 먹었다. 파티가 끝나니 섬은 조용했다. 숙소 풀장에 몸을 담그다 섬 반대쪽 해변으로 가보기로 했다. 걸어가긴 멀고, 택시를 기다리기도 싫어 오토바이를 한 대 빌렸다. 하루 빌리는 데 250바트(약 8500원)였다.

코평안의 한 식당. [박세준 기자]

축제가 끝나고 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해변과 연결돼 있다는 길로 향했다. 팡안은 생각보다 큰 섬이었다. 10분쯤 달리니 근처에 건물이 보이지 않는 산길이 나왔다. 그 길을 지나야 다른 해변으로 갈 수 있었다. 산길에서는 원숭이들이 과일을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험한 길을 10분쯤 더 달리자 포장도로가 보였다. 식당과 마사지 가게들이 나타났다. 간혹 예쁜 카페도 있었다. 더 가니 ‘Big C’라는 대형마트도 있었다. 긴 시간 운전이 지루하지 않게 여기저기 구경거리가 많았다. 먼발치에 바다가 보일 때쯤이 되자 나온 지 1시간이 지나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태국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는 돌아가야 했다. 산길에는 가로등이 드물었고 오토바이 운전이 서툴렀다. 결국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바로 잠자리에 들까 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핫린 해변으로 나갔다. 사람이 가득 찼던 해변에는 사람보다 의자가 더 많았다. 관광객 몇몇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지난밤과 너무나도 다른 광경에 흥이 깨져 버렸다. 숙소에 돌아오니 로비에 몇 사람이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 본 사람을 대하는 데 어느새 익숙해져, 좀 돌아다녀 봤느냐고 물었다. 오늘 오후에 섬에 도착했다는 스페인 커플은 “생각보다 섬이 너무 조용해 실망”이라고 했다. 저녁에 도착한 일본인 일행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들은 어젯밤 섬은 어땠느냐고 되물었다. “파티를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내가 가본 파티 중 가장 미친 것처럼 놀 수 있는 곳”이라고 답해줬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5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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