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서울공화국’에서 소외된 지방대생의 목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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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왕의 사회학/최종렬 지음/460쪽·2만4000원·오월의봄

가상의 대학 ‘기안대’를 배경으로 지방대생의 현실을 코믹하게 그린 웹툰 ‘복학왕’. 책 ‘복학왕의 사회학’의 저자는 “‘서울공화국’이 지방을 변방으로 내몰고 식민지로 전락시켰다”며 “청년 담론에서도 지방대생은 소외돼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웹툰 캡처
‘지방 소외’ 담론은 한국사회의 오래된 주요 의제지만 막상 당사자의 목소리를 조명한 책은 얼마나 될까. 이 책은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대구 경북 지역에서 평판이 2, 3위권인 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 그 부모 등 29명을 인터뷰한 연구를 담았다.

저자가 보기에 ‘무한 경쟁을 내면화하고 성공을 목표로 끝없이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개인주의적 청년들’이라는 이미지는 서울 수도권 중심의 스테레오타입에 불과하다. 지방대생은 다르다. 이른바 ‘수단 목적 합리성’에 따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어차피 해도 안 된다”고 알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공부를 해도 잘 되지 않았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몰두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겸연쩍다’. 저자는 이를 ‘성찰적 겸연쩍음’이라고 표현한다.

“청년들이 속물로 전락했다고 질타하는 담론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는 게 연구 동기였다고 한다. 지방대생은 속물로 전락한 게 아니라 경쟁사회의 바깥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적당주의’ ‘알지 않으려는 의지’ ‘가족만이 최고 가치’ 등이 지방대생의 내면에 담겨 있다고 봤다.

간간이 저자의 해석이 다소 무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이 같은 특징이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실패’가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배제는 포섭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가 작동하는 근본 방식이다. 서울 수도권 대학 학생에게 경쟁의 규율을 내면화시키는 건 지방대생을 노동시장의 주변부로 몰아내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저자가 발견한 특징은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지닌 성공의 일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책의 부제)에서 배제된 이들의 무기력함을 발견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자의 노고와 선의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자칫하면 이 같은 접근은 지방대 비하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 역시 지방대생을 다룬 웹툰 ‘복학왕’이 그런 논란에 별로 시달리지 않았던 건 작가(기안84) 자신이 허우적댔던 이야기로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성급한 일반화’는 아닐까? 책은 연구 결과가 사례를 분석한 예시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지방에서는 고향이 상실되지도 않았고, 가족 또한 굳건하다”고 말한다. ‘가족이 버팀목이 되지 못해 가족주의에서 튕겨져 나간 지방대생’도 상당수 있을 법하지만 책은 그에 주목하지 않는다. 평범한 독자에게 생소할 수 있는 서구 사회과학 개념의 잦은 돌출 탓에 읽기 편치 않은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말마따나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소수자”의 목소리가 빼곡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적지 않은 책이다. 읽다 보면 화자가 지방대생일 뿐, 대다수 보통 서민들의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하는 점도 흥미롭다. 지방대생의 자아 찾기가 좌절된 역사, 배제를 내면화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짤막한 에필로그에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이 담겼다. 국가는 공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지방대생이 가족 밖으로 나와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 독립, 주거 독립을 지원해야 하고, 기업은 경제 일변도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 청년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단체와 소모임을 활성화해야 한다. 청년은 가치론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학은 학생들이 인간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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