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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이상한 나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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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이상한 나라’ 미국

정양환기자 입력 2018-07-14 03:00수정 2018-07-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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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랜드/커트 앤더슨 지음·정혜윤 옮김/720쪽·2만5000원·세종서적
청교도와 히피, 큐클럭스클랜(KKK)과 헐크 호건, 배트맨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은 참 ‘화려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 화려함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여긴다. 모든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냐고 하기엔, 이 ‘멜팅폿(melting pot)’은 이미 임계점을 넘은 게 아닌지 그는 불안하다. 세종서적 제공 ⓒKeith Negley
미국(美國)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미친’ 나라였나 보다.

소설가이자 언론가,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저자가 보기엔 확실히 그렇다. 초기 디즈니랜드 한 파트의 이름이었던 판타지랜드. 아마도 그건 이상향이나 행복의 나라를 일컫는 뜻이었을 게다. 여기선 ‘환상에 빠진’ ‘환상에 사로잡힌’ 정도로 정의된다. 그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읽어보면 거의 전자로 기울지만). 자국 역사를 이리도 매몰차게 ‘엿 먹이는’ 저자의 속내는 뭘까.

대략 500년쯤 된 시간 동안 미국은 참 다사다난했던 나라다. 16세기 금과 신세계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오면서부터 숱한 역경과 모험을 겪었다. 안팎으로 전쟁과 갈등도 꽤나 치렀지만,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군사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월등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로 자리 잡았다. 근데 이게 결코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지적 자유라는 위대한 계몽주의적 이상이 미국으로 건너와 실험되는 동안, 모든 개인은 뭐가 됐든 각자 바라는 대로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미국의 극단적 개인주의는 처음부터 영웅적인 꿈, 때로는 영웅적인 환상과 연결됐다. … 미국인들은 온갖 종류의 신비한 생각 및 무차별적인 상대주의와 더불어 우리를 위로하거나 흥분시키거나 공포로 몰아넣는 크고 작은 공상들과 기발한 설명에 대한 믿음에 사로잡혀왔다.”

특히 이 땅에서 천변만화한 종교(특히 개신교)는 이런 비뚤어진 환상을 만들어낸 가장 큰 주범이다. 제도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인 건 좋았는데,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봤다. 자유에 방점을 찍은 나머지, 맘대로 해석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다보니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게 진실이고 정답인’ 이상한 상대주의가 뿌리내려 버렸다.

그런 사상의 자양분은 결국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제1의 가치로 작용한다. “어떤 상상적 이론이 흥미진진하고 아무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없다면, 미국인인 내게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도 그런 태도는 변치 않는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진화생물학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나 외계인의 존재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믿는 세력이 미국에선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은 이를 반증한다.

‘판타지랜드’는 굉장히 재밌다. 솔직히 시간 제약 탓에 서평을 쓸 땐 빨리빨리 읽는 게 미덕인데, 한 글자도 놓치기 아쉬울 정도로 정독하게 만든다. 빌 브라이슨이나 올리버 색스가 떠오를 정도로 ‘글발’도 끝내준다. 다만 목적의식 탓인지 백인의 역사에만 치중해, 유색인종을 곁다리로 만들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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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니 뇌 한쪽에서 이런 ‘의심’도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혹시 트럼프 대통령 ‘까려고’ 너무 나간 거 아닌가.” 미국 지성인들에게 작금의 현실은 참혹할 정도로 개탄스러웠던 걸까. 이 방대한 자료를 엮어낸 재주는 배우고 싶을 정도로 감탄스럽지만, 왠지 입맛에 맞게 재단한 의도도 보인다. 하나 더. 미국 얘긴데 자꾸 한반도가 겹쳐 보이는 건 왜인지. 괜히 찔려서 머리만 긁적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판타지랜드#커드 앤더슨#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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