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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미친년의 그림”…홍인숙 ‘글자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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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미친년의 그림”…홍인숙 ‘글자풍경’

뉴시스입력 2018-07-13 17:52수정 2018-07-1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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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년이 그렸겠다. 그렇지 않으면 감당 못 할 큰 그림들이다. 곱게 미친년의 그림.”

시인 김민정 (출판사난다 대표)은 화가 홍인숙의 ‘글자 풍경’에 대해 “이 여자의 미침을 꽤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것 같다”며 “이 여자의 미침이 가장 뜨겁게 품고 있는 불씨야말로 솔직함이 아니더냐”며 환호한다.

민화인지 만화인지, 글자인지 그림인지 모를 독특한 화법(畵法)을 선보이는 홍인숙 작가의 아홉번째 개인전이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아트홀에 열리고 있다.

작가가 7년만에 여는 이번 전시는 간절함에서 다시 나왔다.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7년을 보냈다”는 작가는 그간 쓰고, 정리하고 다스렸던 삶의 궤적을 ‘글자풍경’으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글자들은 박제된 글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글자’로 존재감을 보인다.

시, 셔, 썅, 싸랑, 밥, 집 등의 글자그림은 평범한 ‘한 글자’를 그림으로 그렸다. 크게는 2~3m, 작게는 1m 남짓 되는 널찍한 화판에 작은 꽃다발을 나란히 줄지어 만든 글자는 소박한데 오히려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왜 이 글자들은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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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글쓰기에 능한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생각과 메모, 낙서들을 그 때 그 때 남겨 두었다가 그녀만의 기발한 문장으로 만든다. 그 문장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간결한 단문 시어(詩語)가 되고 결국엔 이미지가 된다.

마치 수천, 수만의 의미를 담았을 일상 언어의 수고로움에 감사의 꽃다발을 건네는 것처럼 글자들은 작가가 만든 면류관을 쓴다.


‘작은 꽃다발’같은 글자 그림은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다. 밑그림을 그린 후. 그것을 먹지 위에 다시 눌러 검은 윤곽선으로 그린다. 이어 색깔 별로 판을 자르고, 롤러로 색을 칠하고, 그 색 판의 수만큼 프레스기를 돌려 판화라고는 하지만 에디션도 없는 그림을 완성한다. 작가는 1996 년수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한후 2003년 성신여자대학교 조형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했다.

제작 과정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은 십중팔구 이렇게 묻는다. “왜 컴퓨터로 안 뽑으세요?”

작가가 ‘가장 나다운 것’을 찾다가 고안한 이 방식은 드로잉처럼 빠르지도, 컴퓨터 작업처럼 매끈하지도 않다. 느낌이 좋아 사용하기 시작한 한지 위에 먹지를 대고 눌러 그릴 때 손의 압력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검정색의 느낌은 손그림과는 다른 ‘힘 뺀 그림’이 된다.


이번 전시는 홍인숙의 작은 회고전 같다. 가족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자의 가차문자를 갖고 노는 말장난의 달인의 면모를 보였던 ‘後眞후진사랑’, ‘큰 잘못’, ‘무지개동산’ 등 초기 작품부터 글과 몸이 사라지고 덩그러니 얼굴만 그려 넣었던 ‘점점 동그래지는 얼굴’시리즈와 ‘명랑한 고통’시리즈, 그리고 2009년 이후로 서서히 그림과 글이 분리되어 ‘누이오래비생각 ?二悟來飛生覺’시리즈와 ‘글자풍경’시리즈로 나뉘게 되는데, 각 시리즈의 대표작품들이 선보인다.

얼핏보면 추억의 만화가 떠오르고, 비례에 맞지 않는 커다란 눈에 꽃, 리본으로 장식한 소녀 등 작가의 독특한 회화 스타일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머리에 각인되는 작품들이다.

아버지의 낡은 책에서 발견된 어린 시절 자신의 낙서그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로 시작된 가족그림은 작가에게는 슬픔과 결핍에 대한 지속적인 재확인이자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작가는 그림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에 일관된 시점과 태도를 잊지 않으려 차곡차곡 기록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 지나간 ‘싸랑’을, ‘시’에서 언어의 ‘위로’를, 대천의 욕지거리인 ‘썅’에서 ‘거룩함’을 새긴 것처럼 말이다.

어눌하고 어눌해 보이는 그림인데 묘하게 마음을 보듬는다. 드로잉이면서 회화이고, 판화인 ‘먹지 그림’인 덕분일까. 노동화(勞動畵)가 주는 진정성이 전해진다. 전시는 29일까지.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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