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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터뷰]“남북 언론 교류가 통일에 도움 …北 파견 적극 추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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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터뷰]“남북 언론 교류가 통일에 도움 …北 파견 적극 추진해야”

유덕영기자 입력 2018-05-18 16:32수정 2018-05-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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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린스도르프 독일 언론학회장.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한국 기자가 북한 땅에서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다면 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독일 통일의 경험에 비출 때 말이죠.”

라스 린스도르프 독일 언론학회(DGPuK) 회장(슈투트가르트미디어대 교수)은 18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남북간 화해와 교류, 나아가 통일의 과정에 언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린스도르프 회장은 19일 부산 경성대에서 열리는 ‘한국언론학회 디지털 주권 세미나’ 참석차 방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동·서독은 1960년대까지는 언론 환경이 현재 남북한의 상황과 유사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외국의 기자들은 동독에서 취재할 수 있었지만 서독의 기자들이 동독을 취재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린스도르프 회장은 “서독 기자가 동독 방문을 신청해도 허가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성사된 경우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은 1970년대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으로 언론 간 교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동독의 기자가 서독에 상주했고, 서독의 기자도 동독에서 취재했다. 하지만 상황이 한 순간에 급변한 것은 아니었다. 린스도르프 회장은 “동독으로 파견을 간 서독 기자들은 근무조건이 열악했고, 취재에도 제한이 많아 진실을 추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동서독의 상황을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춰줬던 것이 통일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동독 언론은 공산당의 기관지 성격이어서 모두 같은 목소리를 냈지만 서독 언론들은 다양한 시각의 보도가 이뤄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동독을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DDR’로 표기하는 언론사부터 더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언론사까지 다양한 시각을 담은 기사가 쏟아졌다. 린스도르프 회장은 “당시 동독 주민들도 서독의 공영방송을 볼 수 있었는데, 공영방송이 동독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균형 잡힌 보도를 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라스 린스도르프 독일 언론학회 회장이 18일 동아일보 부설 신문박물관을 방문해 ‘일장기 말소 사건’ 관련 지면을 소개하는 게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5일자에 손기정 선수의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하면서 손 선수의 가슴에 붙어있는 일장기를 지운 채 보도해 무기 정간 조치를 당했다. 린스도르프 회장은 “신문사와 기자가 겪을 고초가 불 보듯 뻔한데도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는 점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현재 북한에는 미국, 유럽 등 서방의 언론사 특파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한국 기자들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이후 현지 방문조차 거의 못하고 있다. 4월 27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다양한 차원에서 남북언론인 교류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그는 “기자가 북한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좋은 일이고, 현장에 기자가 있어야만 북한의 목소리와 상황을 밖으로 알릴 수 있다”며 “한국 기자의 북한 파견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린스도르프 회장은 “외국인으로서 지켜보면 남북관계는 굉장히 복잡하고, 통일에 이르기까지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럴수록 언론은 섣부른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사안의 의미를 정확하고 심층적으로 보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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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가 언론의 오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린스도르프 회장은 “오보가 아니라 발표자의 실수와 우연으로 빚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동독 정부가 서독으로 여행을 자유화하는 방침을 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발표자의 실수가 빚어졌다는 것. 자유화 시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동독 관료는 실수로 ‘즉시’라고 대답했고, 이것이 서방 언론을 통해 바로 보도됐다. 보도를 본 동독 주민들은 베를린 장벽 통과를 요구했고, 국경 수비대도 얼떨결에 장벽을 열어주는 바람에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 붕괴가 이뤄졌다.

린스도르프 회장은 “동독 정부가 서독으로 여행 자유화 방침을 정한 것은 맞지만 정부의 계획은 그때부터 법안을 발의해서 국회를 거쳐 몇 달 뒤에나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면서 “또 만약 국경 수비대가 명령을 받지 못했다며 장벽 통과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발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다른 역사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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