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수탉 잊어라” 젊은 프랑스, 젊은 리더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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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마크롱-데샹 월드컵팀 감독

15일(현지 시간) 크로아티아를 꺾고 1998년 자국 대회 이후 20년 만에 월드컵 정상에 복귀한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라커룸은 축제 분위기였다. 정장 윗도리를 벗어던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수비수 뱅자맹 멘디, 미드필더 폴 포그바와 함께 춤을 췄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댑댄스였다. 선수들은 대통령과 허물없이 어울렸다. 함께 어깨동무를 했고 셀피도 찍어댔다. 경기 후 그라운드로 내려간 마크롱 대통령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했다. 경기 도중 프랑스가 골을 넣을 때마다 폴짝 뛰고 포효하며 좋아한 마크롱 대통령의 모습은 프랑스 언론에서 큰 화제가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16일 선수단을 엘리제궁으로 초대했다.

디디에 데샹 프랑스 대표팀 감독이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선수들은 감독을 향해 물을 뿌리고 목을 조르며 노래를 불렀다. 기자회견 단상 위에 올라 춤을 추는 선수도 있었다. 데샹 감독은 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나는 안개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행복 속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며 즐거워했다.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에 선발로 나선 프랑스 대표팀 11명의 평균 나이는 26세 90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이후 대표팀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이런 혈기왕성한 젊은 선수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두 리더 마크롱 대통령과 데샹 감독의 모습은 프랑스인들이 ‘늙은 수탉’으로 평가받던 옛 프랑스 대표팀에 대한 조롱을 잊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나이로 40대인 젊은 리더 마크롱 대통령(1977년생)과 데샹 감독(1968년 10월생)은 각각 정치와 축구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이루며 젊음에 신뢰를 보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서 승리하자 데샹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파바르가 넣은 골은 대표팀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줬다. 모든 건 감독의 공이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극찬했다. 데샹 감독은 22세의 벵자맹 파바르를 포함해 대표팀 엔트리 23명 중 14명을 국가대표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로 채웠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는 20, 30대를 대거 공천했고 이들의 돌풍으로 국회의원 평균 연령(48.6세)이 이전 국회보다 6세나 낮아졌다.

두 사람은 강한 승부욕과 뚝심을 보여줬다. 마크롱 대통령은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대표팀 훈련장을 방문해 “우리는 경기에 참가하러 가는 게 아니라 이기러 간다”고 말했다. 부담을 느낄 만도 했지만 데샹 감독은 “나는 그(마크롱 대통령)의 의견에 동의한다. 경쟁은 시작됐다. 이기러 간다”고 화답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데샹 감독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엘리트 코스를 밟아 실패의 경험이 많지 않다. 최고 명문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온 마크롱 대통령은 30대에 장관을 거쳐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데샹 감독은 16세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뒤 24세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경험했다. 1998년엔 월드컵, 2000년엔 유럽축구선수권에서 우승했고 43세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데샹 감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공격수였지만 사생활이 복잡한 카림 벤제마를 대표팀에서 제외하고 대신 팀에 헌신적인 올리비에 지루를 선택했다. 스타의 이름값보다는 실용적인 전략을 중요시하는 것도 그의 특성이다. 좌우 이데올로기 프레임을 거부하는 마크롱 대통령과 통하는 대목이다. 데샹 감독은 개성이 강한 젊은 선수와 흑인, 북아프리카 이민자 2세대가 뒤섞인 용광로 같은 대표팀 내에서 조화를 이뤄냈다. 데샹 감독은 월드컵에서 역대 세 번째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러시아 월드컵#프랑스#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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