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세진]현금 없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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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케냐 통신기업 사파리콤과 영국 보다폰이 만든 엠페사는 휴대전화의 모바일 계좌에 돈을 보관하거나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도입한 아프가니스탄 경찰은 월급이 30% 늘었다. 경찰 수뇌부가 일부를 빼돌리고 지급했던 현금을 정부가 모바일 계좌로 직접 준 덕분이다. 이런 서비스는 개발도상국에서 부패를 줄이고 조세수입은 늘렸다. 현금은 부패와 탈세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모바일 머니는 기록이 남아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현금 거래 비중이 1%에 불과하다. 현금거래가 사라지면서 은행 강도와 같은 범죄는 확 줄었다. 하지만 샤넬과 같은 사치품의 매장이나 애플 아이폰과 같은 정보기술(IT) 제품을 실은 수송차를 털다가 잡히는 범죄는 급증했다. 미국에서는 ‘탈(脫)현금화’로 저소득층의 경제활동이 제약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9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부족한 자금과 낮은 신용도로 은행계좌를 개설하지 못하는 가구 비율이 7%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스타벅스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 중이다. 16일부터 103곳으로 확대한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기존 3곳에서 시범운영한 결과 현금 거래율이 0.2%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본사는 한국 매장이 휴대전화로 음료를 사전에 주문하고 결제하는 스타벅스 전용 앱인 ‘사이렌오더’를 가장 먼저 도입해 성공시킨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현금 없는 매장도 한국에서 가장 먼저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첫 실험에 나선 것이다.

▷한국은 현금 결제 건수가 2016년 26%로 2년 전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줄면서 빠르게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 중이다. 금융거래가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 개인이나 현금 사용에 익숙한 노년층은 반갑지만은 않다. 화폐가 이제 지폐나 동전 같은 물질의 ‘입자’가 아닌 디지털상의 ‘신호’로 거래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통신망의 블랙아웃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현금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필요하다.
 
정세진 논설위원 mint4a@donga.com
#현금 거래#금융거래#블랙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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