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보다 못 벌면 알바하지’ 비아냥에…두 번 우는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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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7월 17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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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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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월급 못 올려준다고? 능력 없으면 폐업해야죠.’

경기 고양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53)는 최근 최저임금 관련 기사에 이처럼 달린 댓글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해 단체행동에 나서자 주변에서 ‘알바보다 손에 쥐는 돈이 적으면 그냥 알바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장님 소리 듣고 싶어서 장사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렸다.

정 씨는 “알바 하고 싶어도 50세가 넘으면 구하기 어렵다. 당장 경제적 손실도 걱정이지만 주변에서 편의점주들을 ‘악덕 사업주’로 오해하고 비아냥거리는 것에 상처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세금도 내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우리는 국민이 아닌가. 서글프다”라고 호소했다.

최저임금 대폭 상승으로 점주와 아르바이트생 간 갈등이 세대 갈등으로 격화되고 있다. 20대 아르바이트생과 5060 점주 간 갈등으로 치닫는 식이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편의점연합회가 단체행동 움직임을 보이자 ‘능력 없으면 문 닫아라’ ‘이참에 자영업 정리하자’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자영업충’ ‘편의점충’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일부 비판적 여론과 부족한 정부 지원 대책에 소상공인의 심리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크다”고 전했다.

상당수 자영업자는 ‘근로자들이 누리는 저녁이 있는 삶도 없고, 최저소득 보장을 해주는 것도 아닌 자영업을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것’이라고 호소한다. 경기 수원시에서 편의점을 하는 장모 씨(59)는 “공직생활을 하다 퇴직 후 편의점을 하게 됐다. 그나마 나는 연금이 있어서 버티지만 그마저도 없는 주변 퇴직자들은 일자리도 없고 막막할 따름이다. 자영업밖에 노후 대책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를 합친 비임금근로자 중 50대와 60대 이상 비중은 59.6%에 달했다. 2007년 47.5%에 비해 12.1%포인트 수직 상승했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퇴직자들이 자영업으로 내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비자발적 자영업자도 적지 않다. 2015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최근 2년 동안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사업 동기를 묻자 ‘이 사업이 아니면 다른 선택이 없어서’ ‘임금근로자로 있을 수 없어서’라고 답한 비자발적 자영업자가 36.0%에 달했다. 소득도 근로자 평균 임금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중소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도소매업의 경우 5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연간 3191만 원이었지만 소상공인은 2514만 원으로 677만 원이 낮았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에 취약한 과밀 영세자영업의 구조적 문제는 ‘중장년층 일자리 부족’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중이 약 21%로 10%대인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경영계에서는 경직된 노동시장이 고령자, 저임금자 일자리를 줄인다고 주장한다. 2015년 당시 정부는 55세 이상 고령자에 한해서는 파견법을 완화해 저임금 일자리를 갖게 해주자는 취지로 파견법 개정을 했지만 당시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올해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령자 중심의 아파트 경비직, 관리직 일자리도 타격을 받은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생산성을 높이지는 않으면서 임금만 올리니 20대는 알바로, 50대는 자영업으로 내몰리게 된다. 노동시장 개혁도 함께 가야 결국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장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장은 “한국은 호봉제가 많아 나이가 많을수록 돈을 많이 받기 때문에 퇴직 후 재취업이 힘들다. 저성장 시대에 일자리 자체도 없어 장년층을 비롯한 취업 취약계층은 ‘치킨집’을 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일자리를 늘리는 근본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kimhs@donga.com
변종국 기자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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