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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모두의 대통령’이란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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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모두의 대통령’이란 판타지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8-11-07 03:00수정 2018-11-0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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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안팎에서 주목하는 중간선거… “나에 대한 국민투표” 트럼프 올인
당선 때는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 이제는 ‘반대세력은 敵’ 프레임
‘국민 모두의 대통령’ 되새기며… 文, 트럼프와는 다른 길 걷기를
고미석 논설위원
미국 중간선거에 대한 관심이 올해만큼 뜨거운 적이 또 있었을까. 유권자의 93%가 ‘대선만큼 중요하다’고 평가(CBS방송)했고 지구촌의 이목도 쏠려 있다. 6일(현지 시간) 치른 이번 선거는 상원 100명 중 35명, 하원 435명 전부를 뽑는 것이지만 핵심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즉 집권 2년에 대한 ‘심판’이다. 결과에 따라 남은 임기와 재선 가도의 운명이 가늠되고, 북-미 관계와 미중 무역전쟁 같은 국제적 이슈도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스스로도 중간선거를 자신에 대한 국민투표라고 선언하며 총력 지원을 벌였다. 이번의 승부수 역시 대선 때 약효를 발휘한 ‘공포와 분노’를 파는 전략이었다. 상대를 비판하고 약점 잡아 공격함이 선거운동의 기본 공식이라지만 트럼프는 역대 대통령과 차원이 달랐다. ‘내 편 네 편’ 정도가 아니라 ‘우리 편 아니면 우리의 적(敵)’이란 프레임으로 지지계층을 공고히 하고, 민주당과 비판적 미디어를 악마화해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겼다.

문제는 지지층의 적개심과 충성도를 자극하는 발언이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점.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7주 동안 사실과 다르거나 오해 소지가 있는 주장을 1419건 남발했다. 하루 평균 30건, 믿거나 말거나식 말폭탄을 쏘아댄 것이다. 임기 초반 하루 5건 정도를 터뜨린 점에 비추어 보면 얼마나 선거에 사활을 걸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당당히 말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팩트를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맞든 안 맞든 그의 발언에 지지자들은 열광의 도를 더하고 적과 동지의 간극은 더 깊어간다. 쇼비즈니스의 달인은 환상과 사실의 구별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자국민의 습성을 간파했다. 정치가 오락으로 추락한 미국에서 트럼프는 거짓과 환상으로 작동하는 판타지 산업의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이 ‘판타지랜드’를 쓴 문화비평가 커트 앤더슨의 지적이다. 대외정책의 현안인 이란 제재를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한 자기 사진과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리는 식이 그런 사례다. 개인적인 견해와 감정을 주입하는 선동이 간단히 먹혀들고, 신념과 다르면 객관적 사실에 눈감아버리는 대중들로 이뤄진 환상 기반 공동체. 판타지와 현실이 뒤범벅된 곳에 이성과 합리가 발붙일 수 있을까. 미국 정치가 회복불능 상태로 가고 있다는 자탄과 불안의 소리가 내부에서 나오는 까닭이다.

이것이 단지 미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로 번져간다는 점이 문제다. 포용, 통합보다 혐오, 배타주의를 앞세운 극단적 주장과 포퓰리즘이 갈수록 세를 불리고 있다. 중도 리더십을 대표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퇴진을 예고한 것이나, 헝가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 극우 정당이 부상한 것이나,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다. 판타지랜드가 미국을 넘어 판타지 유럽, 나아가 판타지 월드로 접어드는 도중인가.

“이제는 하나로 단결된 국민으로 함께 나가야 한다. 나부터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을 약속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확정 직후 이렇게 말하며 반대자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라를 통합되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 말은 공언(空言)이 되고, 통합은커녕 균열에 가속도가 붙은 상황이다. 자기검증 대신 무오류를 확신하는 지도자, 이성적 토론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사회가 어디 미국만이겠는가.

한국의 판타지 현황은 또 어떠한가.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트럼프보다 넉 달 후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짐했다. 그 약속에 대한 자기평가가 트럼프의 중간평가 못지않게 궁금하다. 남북 군사합의 ‘셀프 비준’이나 소득주도성장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국민 의견을 듣고 있는지 말이다. ‘모두의 대통령’임을 증명할 책임은 대통령 스스로에게 있다. 새 경제 사령탑 인선이 그 신호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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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권이 끝나도) 나라가 원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인 돈 드릴로(82)가 최근 인터뷰에서 내놓은 전망이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균형감각과 양식은 한번 망가지면 복원하기 힘들다는 원로의 직감이리라. 그의 눈에 비친 오늘의 미국은 이렇다. ‘날마다 쏟아지는 대통령 뉴스의 홍수 속에서 트럼프의 엄청난 실수는 모두 24시간 안에 사라진다. 전 국민의 기억은 기껏해야 48시간 지속된다.’ 좋은 지도자를 만드는 것은 결국 국민인가 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미국 중간선거#트럼프#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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