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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쓰지마!” 중국의 ‘역사 갑질’…사진촬영도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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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쓰지마!” 중국의 ‘역사 갑질’…사진촬영도 막아

지안·하얼빈=김정훈 기자 입력 2018-08-14 17:25수정 2018-08-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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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 성 지안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 동아일보 DB

지난달 26일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기념관. 40여 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중국인 관광객과 섞여 투명한 유리통으로 돼 있는 기념관 내에서 광개토대왕릉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구경을 마친 일행은 기념관 내에 모여 광개토대왕릉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때, 유리통 밖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중국인 경비원이 소리를 질렀다. “사진을 찍지 말고, 한국어로 말하지 말라.” 경비원은 한국인 관광객 옆에서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해 중국어로 얘기하는 중국인 관광객에겐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한국인 관광객은 “우리끼리 이야기도 하지 못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지만, 경비원의 강경한 태도에 기념관 밖으로 나가 대화를 이어갔다. 이들이 기념관 밖에 모이자 경비원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와 “관광지 내 어디서도 한국어로 말하지 말라”고 또 소리쳤다. 이때도 중국인 관광객에겐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경비원은 심지어 기념관 밖에서 촬영을 하던 한국인 관광객들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사진을 삭제하기도 했다. 관광객 김 모씨(27)는 “사학과에 다니는 친구가 광개토대왕릉비가 궁금하다고 해 한 장 찍은 건데 삭제당했다”며 “우리나라 역사 유적을 사진도 찍지 못하니 억울하고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 이후 중국 내 고구려 유적지와 항일운동 지역 등에서 중국 정부의 ‘역사 갑질’이 도를 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측은 한국인 관광객이 고구려 유적지에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인들끼리 한국어로 대화도 못하게 했다. 일부 중국인 경비원은 한국인 관광객의 휴대전화를 무작위로 검열해 사진을 삭제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하얼빈역에 있는 안중근 의사 저격 표시석을 볼 수 없도록 방해도 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 감시하려고 동반 등반

이 같은 일은 다른 유적지에서도 반복됐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항의를 할 때마다 중국인 경비원은 “고구려 유적지에서 사진을 찍지 말고, 한국어로 말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심지어 일부 경비원은 한국인 관광객들을 감시하려고 환도산성 등반길을 함께 오르기도 했다. 경비원이 착용한 하늘빛 셔츠가 땀에 젖어 진한 파란빛으로 변했지만 경비원은 끝까지 한국인 관광객들을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중국 동포인 지안지역 가이드 A 씨는 “사드 논란이 심해진 지난해 7월부터 한국어로 설명하지 못하게 됐다”며 “경비원이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한국어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예 출입을 금지한 곳도 있다. 지린시의 위원(毓文)중학교, 왕칭(汪淸)현의 봉오동(鳳梧洞)전투 터 등은 시설 보호와 내부공사를 이유로 한국인 관광객이 출입할 수 없다. 여행사 대표 정모 씨(50)는 “봉오동 전투 터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공교롭게도 지난해 7월경부터 여러 유적지가 시설 보호나 공사 등의 이유로 출입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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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저격 표시석 못 보게 방해

심지어 중국 정부는 한국인 관광객이 우리 역사지역에 접근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2013년 6월 한중 정상회담 이후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역 승강장에 안중근 의사가 권총을 쏜 자리와 이토 히로부미가 총에 맞을 당시 서 있던 자리 등을 바닥에 표시해 놨다. 이를 잘 볼 수 있게 하얼빈 역사 내에 통유리로 된 기념관도 설치했다.

하지만 하얼빈역을 전면 개축하면서 안중근 기념관을 임시 철거했고, 그에 따라 표시석을 보기 위해선 다른 지역에서 열차를 타고 하얼빈역에 내리는 방법밖에 없어졌다. 현지 가이드와 여행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마저도 지난해 7월 이후부터 쉽지 않게 됐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하얼빈역행 열차를 탑승했다는 것을 중국 측이 알면 하얼빈역 대신 바로 옆에 있는 하얼빈동역에 내려주기 때문이다. 이정빈 충북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지난해 사드 논란이 심화된 이후부터 한국인 관광에 대해 경계가 한층 심해졌다”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중국 내 한국 유적지 관광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안·하얼빈=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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