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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인륜의 조화 주장한 조선 철학자, ‘갑질’ 만연한 한국사회에 깨달음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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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인륜의 조화 주장한 조선 철학자, ‘갑질’ 만연한 한국사회에 깨달음 주죠”

조종엽 기자 입력 2018-07-11 03:00수정 2018-07-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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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구 역학’ 가치 재조명한 이선경 조선대 철학과 교수
이선경 조선대 객원교수는 “이원구의 철학은 ‘구체적 삶 속에서 인(仁)의 실현’을 목표로 했다”고 10일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당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사라졌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뛰어난 사상은 기억하고 연구하는 후학이 있는 한 바스러져 먼지로 흩어지는 운명을 딛고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으로 살아난다.

조선 후기 평생 밭을 갈고 면화를 기르면서 오로지 독서와 사색을 통해 독창적인 역학(易學)의 경지를 개척한 철학자가 있다. 경북 약목(현 칠곡군) 출신의 학자 일수 이원구(一수 李元龜·1758∼1828)다. ‘이원구 역학―18세기 조선, 철학으로 답하다’를 최근 낸 이선경 조선대 철학과 객원교수(51)는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10일 “주자학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조선 후기 실학의 경세론에 탄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세간에 혹 인륜(人倫)은 높이면서 산업(産業)을 속되다고 하는 자도 있고, 산업은 취(取)하면서 인륜을 가벼이 여기는 자도 있으니 되겠는가?…인륜과 산업은 하나인데, 둘로 하여서 서로 싸우니 애석하구나!”(이원구의 ‘심성록·心性錄’에서)

이 교수에 따르면 이원구는 중국 역학의 수용과 이해를 넘어 자신만의 새로운 사상을 펼쳤다. 핵심은 ‘건곤론(乾坤論)’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괘 위주였던 조선 성리학자들의 역학과는 달리 이원구는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에도 주목했다. 이 교수는 “18세기 후반 조선의 모순이 인륜(건)과 산업(곤)의 대립과 분열에 있다고 본 그는 ‘곤’의 현장을 바탕으로 건곤을 통합해 산업 속에서 인륜이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현대로 치면 경제는 사적 이윤 추구의 장에 그쳐서는 안 되며, 도덕과 정의가 실현되는 장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비슷하다. 이원구는 산업 전체에 ‘권(眷·아끼고 돌보아 잊지 않음)’이 관류해야 한다면서 ‘사람을 살리는 마음’이 없으면 산업은 생명력을 잃는다고 봤다. 그의 사상은 ‘갑질’이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에 적지 않은 울림을 갖는다. 이원구의 ‘산업’은 물질 생산을 기초로 교육과 법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교수는 “정덕(正德)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건 북학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지만 경세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탐구는 빈약했다”며 이원구 역학의 가치를 설명했다.

이원구에게는 학맥(學脈)이랄 게 딱히 없다. 홀로 솟아났고, 조용히 스러졌다. 당대 영호남 유림에 그의 이름이 점차 알려졌지만, 제자들이 학단(學團)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이원구를 재발견한 이는 1950, 60년대 한국 철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박종홍(1903∼1976)이었다. 그는 논문에서 이원구가 “300년 뒤 나를 알아줄 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원구의 사상은 한국의 ‘오래된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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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구 역학#조선 철학자#이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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