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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美國과 트럼프라는 ‘넘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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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美國과 트럼프라는 ‘넘사벽’

박제균 논설실장 입력 2018-06-11 03:00수정 2018-06-1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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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 ‘潘 총장 면접’… ‘독립성’ 외친 갈리 연임 실패
트럼프, 한국 命運걸린 회담 철저히 美국익 따라 결정할 것
‘역사적 유산’ 血盟 신뢰 지켜야 ‘장사꾼 대통령’ 움직일 수 있다
박제균 논설실장
2006년 9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 벽난로 앞에 마주 앉았다. 두 정상 옆에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수행원들이 나란히 앉았다. 당시는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득표전 막바지. 노 대통령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부시 대통령은 반 장관에게 물었다. “왜 그런 힘든 자리를 하려고 하느냐.”

반 장관은 먼저 노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시에게 직접 영어로 5분가량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본인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겪은 나는 평화와 안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세계의 안전보장을 위한 미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총장이 되면 미국과 함께할 것이란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흡족해진 부시가 참모들에게 말했다. “그가 우리의 (총장) 후보다(He is our candidate).”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미국 대통령이 유엔 사무총장 면접을 본 것이다. 미국이란 그런 나라다.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총장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이집트 출신 부트로스갈리 총장은 “만약 단 한 단어로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을 설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독립성”이라고 말할 정도로 미국의 입김을 벗어나려 했다. 그럼에도 그의 총장 연임 여부에 대한 안전보장이사국의 투표 결과는 14 대 1의 압도적 찬성이었다. 문제는 반대한 단 한 나라가 미국이었다는 것. 부트로스갈리는 결국 미국의 상임이사국 거부권이란 마지막 허들을 넘지 못했고, 유엔 사무총장 가운데 유일하게 연임에 실패한 사례로 기록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늦게 나타나 회의 도중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싱가포르로 출국했다. 공동성명조차 거부했다. 외교적 무례인 데다 자기 마음대로다. 미국을 제외한 6개국은 한목소리로 비난했지만, 뒤에선 미국과 ‘딜’을 할 것이다.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나라, 그게 미국이다.

그런 미국으로부터 동맹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반미 시위가 벌어지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성조기를 흔들며 친미 시위를 벌이는 유일한 나라 또한 한국일 것이다. 여러모로 미국은 한국에 숙명적 존재다. 더구나 내일이면 그 나라의 대통령이 사실상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회담에 들어간다. 상대방은 같은 민족인 북한의 지도자이지만, 한국의 안보 이익을 대변할 쪽은 미국이다. 불안하다.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회담에 발을 못 들이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 쪽 스피커인 미국 대통령이 럭비공이다.

분명한 건 하나 있다. 트럼프는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다.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말하는 것도 작금의 미국 국익에 맞아떨어져서다. 한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했기 때문이 아니며,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외교를 잘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과거에도 미국이 작심만 했다면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밀어붙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국가의 존망(存亡)이 걸린 선택마저 미국의 처분에만 맡겨야 하는 운명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에겐 6·25전쟁 때 미군 4만 명이 목숨을 바친 혈맹(血盟)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유산이 있다. 그 소중한 유산을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미국은 아프간 국제안보지원군(ISAF) 병력 부족 때문에 큰 곤란을 겪었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파병 요청을 하지 않았다. 외교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돌아온 대답.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목숨 걸고 싸울 군인들이다.” 한국은 군인들을 전투지역에 안 보내려 하니, 필요 없다는 얘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정부는 이듬해 특전사 병력 300명을 파견키로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미국 조야(朝野)가 감동했음은 물론이다.

동맹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 큰 나라라도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란 있을 수 없다. 미국이 어려울 때 한국이 달려갈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야말로 혈맹의 유산을 지켜내는 버팀목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방주의(unilateralism)로 치닫는 미국과 장사꾼 대통령은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미국과 트럼프를 움직이는 건 여전히 우리 하기에 달렸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부시#유엔#북미 정상회담#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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