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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송송’ 괴담 촛불로 번졌지만… 아무도 책임진 사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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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송송’ 괴담 촛불로 번졌지만… 아무도 책임진 사람 없어

이진구 기자 , 송진흡 기자 입력 2018-05-19 03:00수정 2018-06-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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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광우병 10년 그날과 오늘
광우병 사태 당시 촛불집회 모습. 동아일보DB
“광우병이요? 맛있기만 하네요. 싸고….”

17일 저녁 서울 종로 C 미국산 수입육 직판장. 미국산 쇠고기를 파는 이곳은 이 근방에서는 싸고 질 좋은 고깃집으로 소문이 난 곳이다. 이날도 가게 안은 손님들이 굽는 고기 연기로 자욱했다. 이 음식점이 인기인 것은 최상급 미국산 쇠고기를 시내 한우 음식점의 3분의 1 가격으로 팔기 때문. 인근 한우 음식점들이 생갈비 1인분(120∼150g)을 3만8000∼4만2000원 정도에 파는 것에 비하면 이곳은 진꽃살 1인분(180g)은 1만9000원, 갈비본살 1인분(180g)은 1만6000원에 팔고 있다. 등심은 1인분에 1만4000원이다. 친구들과 회식을 하러온 김태윤 씨(49)는 “지금 광우병 걱정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안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 10년 전 이맘때…


꼭 10년 전인 2008년 4∼7월 한국은 광우병 괴담으로 온 나라가 미증유의 파동을 겪었다. 당시 시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와 대한의사협회가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갖기도 했다. 당시 행사를 주관했던 한 관계자의 후일담. “식당 섭외가 골치였다. 시식회를 한 게 알려지면 식당 문을 닫아야 할 수 있으니 그 비용까지 담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일반 식당을 못 구하고 한 2주일 만에 수입육 직영점에서 가까스로 행사를 열 수 있었다. 격세지감이다.”

광우병 사태의 시작은 2003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워싱턴주에서 소해면상뇌증(광우병) 의심 사례가 발견되자 우리 정부가 수입을 중단한 것.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30개월 미만 소의 뼈를 제거한 살코기’만 허용키로 하고 수입을 재개했으나 검역 과정에서 뼛조각이 발견되면서 전량 반송되는 일이 수차례 반복됐고 한미 간 무역 마찰이 빚어졌다.

미국의 압박은 거셌다. 2006년 12월 3일(현지 시간) 미국 몬태나주 빅스카이시의 한 레스토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놓고 5차 협상을 벌이기 위해 온 양국 대표단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맥스 보커스 당시 미국 상원의원은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은 뒤 미리 연습한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다섯 차례나 외쳤다. 그는 이어 “미국산 쇠고기는 뼈가 있든 없든 안전하다. 한미 FTA가 원만하게 타결되려면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비프벨트(쇠고기 생산지)’로 통하는 몬태나주 출신의 보커스 의원이 한국 정부와 취재단 앞에서 일종의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5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서 우리 측은 ‘모든 종류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과 내장, 꼬리 등의 부산물은 받을 수 없고,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제한 규정도 유지하겠다’고 요구했으나 미국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협상이 종료됐다. 이듬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2008년 4월 18일, 새 정부는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을 전격 발표했다. 1단계로 30개월 미만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2단계로 미국이 동물사료 금지 조치를 강화하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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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위대에 의해 파손된 경찰차량 동아일보DB
그러나 이 조치가 막 출범한 새 정권을 뿌리째 뒤흔들 것이라고는 이 대통령 자신도 몰랐다. 4월 29일 MBC PD수첩은 인간 광우병에 걸린 여성의 죽음 등을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해 국민 불안감을 최대로 고조시켰다. 5월 1일 배우 김민선 씨(후에 김규리로 개명)는 인터넷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불안은 시위로 이어졌고, 5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번째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당초 300여 명의 소규모 집회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경찰 추산 1만여 명이 모일 정도로 파장은 심상치 않았다.

○ MB, 두 차례 대국민 담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이명박 대통령. 동아일보DB
5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이 대통령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농가 지원 대책 마련에 열중하던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8분여간 준비한 원고를 읽기만 한 채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했다. 약 한 달 뒤인 그해 6월 19일 당시 이 대통령은 다시 특별기자회견을 위해 춘추관에 섰다. 이번엔 ‘뼈저린 반성’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려왔다.”

임태희 국립 한경대 총장(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당시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라 청와대도 제대로 안정되지 않았고, 당도 막 18대 총선(2008년 4월 9일)을 치른 뒤라 사실상 지도부 공백 상태여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이 첫 번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5월 22일에서야 홍준표 원내대표, 임 정책위의장을 선출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한 A 씨도 “쇠고기 협상이 체결된 4월 18일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의욕은 높았지만, 국정 경험은 거의 없었고, 민심을 전달할 여당도 선거 때문에 지도부 공백 상태라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첫 촛불시위 이후 1700여 개 시민단체가 모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결성되고, ‘72시간 연속 촛불집회’ ‘100만 촛불대행진’에 ‘뇌송송 구멍탁’ 같은 괴담이 난무했지만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광우병의 위험 수준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국제 기준에 대한 정상적 토론은 실종됐다. 여기에 6월 10일 등장한 일명 ‘명박산성’이 붙은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6·10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100만 촛불 대행진이 계획되자 경찰이 이날 새벽 서울 세종대로 충무공 동상 앞과 안국로 등 청와대로 갈 수 있는 길목을 컨테이너 박스 60여 개로 차단한 것.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시위대가 청와대까지 진격하려던 상황이었고, 당시 경찰 정보로는 시위대가 경찰과 물리적 대치 중에 일부러 인명피해를 일으켜 사태를 더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도 있었다”며 “비난을 받기는 하겠지만 시위대와 경찰을 접촉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이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도 막을 겸 컨테이너로 장벽을 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박산성’은 이후 불통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청와대 내에선 ‘재협상’이냐 ‘추가협상’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당시 여권 고위관계자의 전언. “협상을 다시 하는 것은 이미 결정됐고, 이것을 재협상으로 부르느냐, 추가협상으로 부르느냐는 문제 때문에 6월 1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김중수 경제수석과 박재완 정무수석은 추가협상을, 이종찬 민정수석과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은 어차피 내용적으로 사실상 재협상이니 빨리 인정하고 사태를 진화하자는 의견을 냈다. 결국 MB가 추가협상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렇게 발표됐다. 그리고 광우병 사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두 번째 대국민 담화는 이처럼 상황 수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와중에 나왔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8년 6월 26일 추가협상을 포함한 협상 내용이 관보에 고시되면서 수입이 재개됐다.

○ 10년 후 “언제 그런 일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물량은 2016년(15만6000t)보다 13.5% 늘어난 17만7000t으로 외국산 수입 쇠고기 가운데 가장 많았다. 호주산은 전년 대비 4% 줄어든 17만3000t, 뉴질랜드산은 전년 대비 16.5% 감소한 1만9000t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1년 쇠고기 수입 자유화 조치 이후 줄곧 1위를 달렸지만 2003년 광우병 의심 사례 발생으로 수입이 전면 금지됐고, 2006년 ‘30개월 미만, 뼈를 제거한 고기’라는 조건으로 수입이 재개됐지만, 뼛조각이 발견돼 전량 반송되는 일이 반복된 데다 광우병 파동의 후폭풍으로 1위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그 자리는 2004년 이후 호주산이 지켜왔는데 14년 만에 1위가 바뀐 것이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국내 소비자들이 막연히 갖고 있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사실상 사라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광우병 파동 이후 최근 10년 새 전 세계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로 인한 피해 사례가 없어 안전한 쇠고기라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 그는 “당시 광우병 문제를 내세워 국가적인 혼란을 부추겼던 사람들이 현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미국산 쇠고기의 부활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한미 FTA에 따른 관세 인하 효과 덕분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관세율은 2015년 29.3%에서 올해 21.3%로 매년 낮아지고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산의 관세율도 낮아지고 있지만 미국산에는 못 미친다. 호주의 관세율은 지난해 29.3%, 뉴질랜드는 32.0%였다. 올해는 각각 26.6%, 29.3%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총 12억2000만 달러(약 1조3000억 원)로 일본(18억9000만 달러)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지난해 미국 쇠고기 수출총액(72억6900만 달러) 중 한국이 17%를 차지했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2015년 이전까지 3∼5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6년 멕시코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이후 지난해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2년 연속 2위에 랭크됐다.

당시 시위를 강력히 주도했거나,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지적했던 이들은 여전히 유사한 입장이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으로 활약했던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08년 촛불집회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쇠고기를 수입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100% 안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광우병이 발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미국에서 비정형 소해면상뇌증(BSE·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된 직후 열린 ‘미국 다섯 번째 광우병 발생 사태에 대한 전문가 기자설명회’에서 “(2008년) 당시 촛불의 요구는 ‘무조건 수입금지’가 아니었는데 정부가 이를 매도했다. 30개월 미만을 수입하라는 요구에 ‘미국 사람도 먹는 소를 왜 위험하다고 하느냐’며 잘못된 수사적 대응을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교부 출신으로 2006년 농림부로 옮겨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민동석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협상 수석대표)은 지난 10년의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저 조용히 잊혀진 사람으로 지내고 싶다”며 인터뷰를 고사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2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한 뒤 2012~2016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이진구 sys1201@donga.com·송진흡 기자
#광우병#촛불집회#미국산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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