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소녀들의 우상에서 글로벌 아이돌로… 빅히트 일군 5개의 DNA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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防彈少年團

이달 19일(현지 시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가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 앞 레드카펫에 도착한 방탄소년단. 이날 이들의 시상식 축하무대에 미국 팬들의 따라 부르기와 환호가 뜨거워 화제가 됐다. 왼쪽부터 뷔 슈가 진 정국 RM 지민 제이홉.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달 19일(현지 시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가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 앞 레드카펫에 도착한 방탄소년단. 이날 이들의 시상식 축하무대에 미국 팬들의 따라 부르기와 환호가 뜨거워 화제가 됐다. 왼쪽부터 뷔 슈가 진 정국 RM 지민 제이홉.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미국의 미디어를 놀라게 한 뒤 22일 귀국했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축하 무대, ‘엘런 디제너러스 쇼’ 출연…. 2012년 싸이 신드롬 이후 잠잠한 듯 보이던 케이팝이 또 한 번 ‘사고’를 쳤다는 평이 나온다. 미국 TV 중계에서 현지 관객들이 방탄의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거나 오열하는 모습은, 케이팝 해외 팬덤의 현장에 가보지 않은 한국 대중에겐 다소 충격적이었다.

말춤 열풍으로 세계를 강타한 ‘강남스타일’만 한 글로벌 히트곡이 없는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미국 대중문화의 노른자위를 밟게 된 걸까. 그들의 역사와 인기 가도, 그 비결을 방, 탄, 소, 년, 단을 앞세워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방탄과 방시혁
“청소년 난관-편견 막겠다”… 소속사 대표 방시혁 작품
 
 
 
방탄소년단은 7인조 남성그룹이다. 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으로 구성됐다. 방탄은, 말 그대로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이다. 총알은 소년에게 쏟아지는 난관, 사회적 편견 따위다.

중학교 때부터 ‘소년만화’에 깊이 빠진 이가 있었다. 방시혁(45)이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이자 방탄소년단의 프로듀서이며 정신적 아버지 같은 존재.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7년 제6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입문했다. 2000년부터 박진영이 이끄는 JYP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로 활동했다. god, 박지윤, 비의 히트곡을 만들었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도 그의 작품이다. 2005년 빅히트를 설립해 에이트, 임정희, 이현, 옴므 등의 음반을 제작했다. 현재 빅히트엔 방탄소년단과 옴므가 속해 있다.

탄생과 성장

2013년 6월 7인조 데뷔… 현실적 랩으로 공감 얻어
 
 
 
방시혁과 함께 일하던 프로듀서 피독(본명 강효원·34)은 경남 출신이다. 성악을 전공했지만 힙합이 꿈이었다. 그가 리더이자 래퍼인 RM을 발탁해 힙합 그룹을 만들어 보고자 한 것이 시원이 됐다. 나머지 멤버들이 속속 합류하며 3년간의 연습을 거쳐 방탄소년단은 2013년 6월 데뷔한다.

방탄소년단엔 지방 출신이 많다. 멤버들은 부산, 대구, 광주, 경기, 경남 출신이다. 팔도 사투리에 운율을 맞춘 ‘팔도강산’이란 곡도 낸 적 있다. 외국인은 발음하기도 힘든 방탄소년단이란 작명부터 팔도 사투리까지, 이들은 애초에 해외 시장을 겨냥한 기획 그룹은 아니었던 것이다. 초기엔 ‘학교 3부작’ 앨범에 10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과 고민을 현실적인 랩과 노래에 담아내며 또래의 공감을 사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

트위터-유튜브 적극 활용… 멤버들 일상 실시간 전파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이들이 SM, YG 같은 대형 기획사에서 출발하지 않았기에 더 놀랍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거대 산업 시스템에 맞게 짜인 마케팅 대신, 이들은 마침 데뷔 무렵 본격 개화한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데, 이것이 훗날 큰 성공의 기틀이 될 줄이야.

특히 방탄소년단은 세계적으로도 트위터를 가장 잘 활용한 그룹으로 손꼽힌다. 대개 휴대전화 카메라로 소소하게 찍은 멤버들의 일상 동영상을 수시로, 실시간으로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트위터로 공유했다. 이른바 ‘방탄밤’이라 불리는 자체 제작 콘텐츠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들을 “음악 외적인 자체 콘텐츠를 가장 많이 쏟아내는 팀”으로 꼽는다.

이들은 화보 촬영이나 방송 출연 대기실 현장에서 짧게는 몇 초에서 몇십 분까지 다양한 영상을 찍어 멤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알렸다. 진의 요리 방송인 ‘잇진’, 지민과 뷔의 경상도 사투리 방송인 ‘만다꼬’ 등 멤버별로 특화된 일종의 코너들도 만들었다. 김 평론가는 “하나의 선으로 모든 콘텐츠를 연결했는데 그 구심점이 멤버 공용 트위터 계정이었다”고 했다.

멤버별 개인 계정을 없애고 ‘정국’ ‘제이홉’ 같은 말머리를 달아 돌아가며 운영자 역할을 했다. 팬 활동의 ‘화력’도 자연스레 공식 계정(twitter.com/bts_twt) 한 곳으로 집중됐다. 김 평론가는 “해외 팬들은, 뮤직비디오나 안무를 접하고 소셜미디어 계정을 검색해 들어온 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압도적인 콘텐츠 양에 흥미를 느끼고 다시 다른 유튜브 비디오로 소비를 이어갔다. 이것이 하나로 통합된 소셜 계정의 폭발력”이라고 했다.

연작의 파워

학교-청춘 각 3부작 앨범… 긴 스토리로 호기심 자극
 
 
 
트위터로 짧은 일상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한편, 음악으로는 긴 호흡으로 팬덤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했다. 소셜미디어의 단타 전략과 연속 서사의 장타 전략이 톱니처럼 맞물린 셈이다. 노래는 앨범으로 엮고, 앨범은 연작으로 이어갔다.

중고교생들의 팍팍한 삶을 다룬 ‘학교 3부작’의 뒤에는 조금 성장한 뒤 찾아오는 허무와 환멸, 여전한 희망을 담은 ‘청춘 3부작’(화양연화) 시리즈를 붙였다.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은 “방탄소년단의 서사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방탄소년단이라는 가상 캐릭터의 전기적 이야기가 서사의 연속성을 구성한다”면서 “빅뱅 등 이전의 그룹들이 곡 하나하나에서 완결된 멋짐을 추구하는 단편 작가였다면, 방탄은 여러 권짜리 장편을 계속해서 내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빅뱅의 멤버들은 각자 개성과 매력은 있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처럼 그의 고향이 어디이며 원래 뭘 하던 사람이냐는 데 대한 관심이나 이야기는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합된 팬덤

팬클럽 ‘아미’ 막강 결속력… 트위터 팔로어1000만 돌파
 
 
 
방탄소년단의 스타덤에는 팬클럽인 아미(A.R.M.Y)의 활약 역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미’는 영어 단어 뜻처럼 군대 같은 결속력을 자랑한다. 각종 온·오프라인 상품 구매와 음원·음반 소비, 소셜미디어 게시글 리트윗과 공유로 일당백의 화력을 보인다. 해외 아미들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하면서 방탄소년단의 파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가상공간인 소셜미디어에 불기 시작한 폭풍은 마침내 현실의 세계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미디어들은 지금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지닌 소셜미디어상의 막강한 파워를 원한다.

전문가들은 2015년을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덤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시점으로 본다. ‘화양연화, pt.1’ 앨범과 ‘I NEED YOU’ 뮤직비디오가 폭발적 화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김윤하 평론가는 “케이팝 특유의 강력한 퍼포먼스가 가진 매력은 유지하되 악곡적으로는 최신 서구 트렌디 팝을 잘 곁들여 소화해 해외 팬을 매혹했다”고 말했다. 지금 방탄소년단은 유튜브 조회 수 1억 건 이상 뮤직비디오 11편을 보유했다. 트위터 팔로어 수가 500만이 되는 데 5년이 걸렸지만 1000만이 되는 데는 그로부터 불과 7개월이 소요됐다. 팔로어는 이제 한 달에 100만 명꼴로 급증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방탄소년단의 기세를 설명할 말은 하나다. 바로 파죽지세다.


▼ “음악-퍼포먼스-외모 갖춰… AMA 공연으로 美 전역서도 열광” ▼

현지 언론들 ‘마케팅 파급력’ 주목

그렇다면 ‘아미’가 아닌 미국의 일반적인 대중은 방탄소년단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현지 방송국들이 방탄소년단 섭외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거주하는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문답했다.

―진짜 미국 사람들은 모두 방탄소년단을 아는가.

“팝 음악의 주 소비층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 방탄의 인지도는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학생층에게는 인지도가 대단히 높다고 본다. 사실 방탄의 미국 내 인기는 단순한 인지도로 평가하기 힘들다. 가령 현지 스타인 설리나 고메즈는 TV의 가십난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이 알지만 그의 노래를 모르기는 방탄이나 마찬가지다. 방탄의 인지도는 이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와 각종 방송 출연으로 향후 미국 전역에서 비약적으로 늘 것이다. 미국은 전국방송을 타느냐 마느냐가 인지도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디어가 너도나도 방탄소년단을 섭외하는 이유는 뭘까.

“미국 내 아이돌 그룹 기근에 따라 갈증을 채워줄 그룹이 필요하던 차였다. 그러다 (미디어가) 근년에 세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방탄소년단을 발견했다고 본다. 음악, 퍼포먼스, 외모를 갖춘 팝스타 자질에 소셜미디어의 마케팅 파급력까지 갖춘 스타를 자국 시장으로 끌어안음으로써 미국 팝의 역동성을 꾀하는 거다. 미국이 늘 외국 음악을 활용해온 방식이다.”

―마치 미국 내 라틴 팝과 같은 건가.

“미국은 캐나다, 영국, 라틴 쪽 모두를 일단 품고 보잖나. 어느 순간 국적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 싸이 때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방탄의 차이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자국 젊은층에도 쉽게 어필할 수 있고 히트 곡 하나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스타성을 갖춘 팀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가능성을 보는 듯하다. 아시아에서 온 스타라는 식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비틀스와도 비교하며 미국에 상륙했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방탄의 소셜미디어 파괴력이 큰 역할을 할까.

“그렇다. 시상식 레드카펫 때도 진행자들이 굳이 몇 번이고 방탄 팬클럽 이름을 언급하며 소개한다. 다른 게스트에게 방탄 관련 이야기를 물어보기도 한다. 아마 (미디어에) 근 1년 이상 축적된 내부 자료가 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언급 횟수, 파급 효과 등에 관한 빅데이터가 될 수도 있겠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 수상 이후 거의 노골적으로 방탄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효과를) 다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 정도 파급력을 갖춘 이는 테일러 스위프트나 힙합 스타 몇몇 정도다. 미국 주류 미디어가 이것을 놓칠 리 없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방탄소년단#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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