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종대]청량리 588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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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어디 가? 잠깐 놀다 가∼.”

1997년 임권택 감독이 제작한 영화 ‘노는 계집 娼’에서 여주인공 신은경은 달콤 야릇한 목소리로 취객을 유혹한다. 홍등가(紅燈街)에 들렀던 사람이면 한 번쯤은 들었을 말이다. 비록 몇몇에 불과했지만 ‘돈독한 우정의 표시’라며 군대 가는 친구에게 십시일반 돈을 모아주면서 ‘청량리 588’에 억지로 데리고 가기도 했다. 1930년대부터 형성됐던 대한민국 성매매 1번지 ‘청량리 588’이 도심 재개발로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다.

▷‘청량리 588’을 지번(地番)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행정구역상 이곳은 동대문구 전농1동 588∼620번지다. 미아리텍사스, 천호동텍사스와 더불어 서울의 3대 집창촌으로 1980년대엔 200여 업소가 성업했다. 하지만 2004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일명 성매매 특별법)’이 실시되면서 쇠락했다. 부산 완월동, 대구 자갈마당, 경기 파주 용주골 등 전국 45곳의 집창촌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성매매는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 탄생 문명 중 하나인 수메르, 바빌론 시대에도 행해졌다. 성매매를 금지하면 오히려 성매매 장소만 옮겨 가는 ‘풍선 효과’만 있을 뿐이라는 주장도 여기서 출발한다. 최근엔 성매매 알선과 매매가 인터넷 공간에서 더 활발하다. 2010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확인 가능한 성매매 여성만 14만2248명이다. 은밀히 행해지는 인터넷 성매매까지 포함하면 27만 명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성매매를 전면 금지한 나라는 한국과 슬로베니아뿐이다. 27개국은 전면 합법, 6개는 제한적 합법국가다.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는 성매수자는 물론이고 성매매 여성도 처벌하도록 한 ‘성매매 특별법’ 위헌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간통죄 폐지와 달리 성매매를 정식 직업으로 인정하기에는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에게 이는 생계와 생존이 달린 문제다.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
#임권택#노는 계집 창#성매매#성매매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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