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삼성 자사주 매입 11조, 투자로 돌린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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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산업부
김지현·산업부
22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과 퀄컴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9개월 동안 이들 기업이 자사주 매입에 투자한 자금은 5167억 달러(약 599조 원). 애플이 302억 달러로 가장 많이 썼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퀄컴, AIG 순으로 이어졌다.

기업들의 잇따른 자사주 매입과 관련해 미국 증권가에서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수백억 달러의 현금을 단순히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소진하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이냐는 것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 투자 콘퍼런스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100대 기업이 순이익의 108%를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쓰고 있다”며 “일부 회사들은 자사주를 사들이는 데 너무 많은 돈을 써서 장기적인 회사 성장에는 투자를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 시장에서도 더 이상 ‘자사주 매입=주가 상승’이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애플과 MS는 올해 주가가 8.1%와 16.7%씩 상승했지만 퀄컴은 33.2%, 오라클은 12.5%가 각각 떨어졌다. 꼭 자사주 매입이 기업의 주가 상승을 위한 답은 아니라는 의미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29일 역대 최대 규모인 11조3000억 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2000년부터 올해 1월까지 15년간 11차례에 걸쳐 매입한 자사주 15조8000억 원의 70%에 이르는 규모다. 삼성전자가 올해 착공한 경기 평택 반도체 단지에 신규 라인 1개를 더 지을 수 있는 비용이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고심 끝에 내놓은 회심의 “주주 친화 정책”이지만 오히려 발표 이후 외국인 투자가들의 자금 이탈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23일 기준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0.41%로 지난해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날 종가는 128만2000원으로 자사주 소각 발표 때보다 오히려 3.2% 떨어졌다.

물론 삼성의 고민은 있었다. 엘리엇으로부터 공격받을 당시 주주 가치 제고를 국내외에 약속한 데다 자사주 매입 대신 배당을 선택할 경우 국부 유출 논란을 불러올 수 있어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11조 원을 그냥 허공에 불태울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차라리 유망한 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설비에 투자해 새 일자리라도 만들었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삼성전자조차 미래가 안 보인다는 암울한 시기에 이 11조 원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재원이 될 수도 있었다.

김지현·산업부 jhk85@donga.com
#삼성#자사주매입#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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