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저축률 높아져도… 우울한 이 느낌, 뭐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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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주 기자
이원주 기자
“도저히 지갑을 열 엄두가 안 나네요.”

최근 대리로 승진하면서 월급이 30만 원가량 오른 여성 직장인 김모 씨(29)는 “승진 기념으로 명품가방을 하나 살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결국 오른 월급을 적금과 소득공제 장기펀드에 고스란히 담기로 했다.

요즘 김 씨와 같은 사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여윳돈은 있는데 도무지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면 돈을 허투루 쓸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저축률 통계도 이런 씁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저축률은 4.5%로 1년 전보다 1.1%포인트 높아졌다. 2009년 이후 4년 만에 상승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저축을 많이 한다고 박수 치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에서 쓰지 않는 돈을 저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사람들이 이자수익을 얻기 위해 소비를 미루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소비를 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은행 이자율이나 금융상품 수익률이 유난히 낮은 요즘 같은 상황에서 저축률이 높아진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소비위축의 원인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만 있는 건 아니다. 1, 2년 새 많게는 1억 원까지 오른 전세금, 줄지 않는 아이들 사교육비도 문제다. 최근 동창모임에서 만난 30대 중반의 친구는 “얼마 전 고등학교 비정규직 교사에서 정규직 교사가 됐지만 1000만 원 정도 오른 연소득이 모두 전세보증금 대출을 갚는 데 나갈 것 같다”며 신세 한탄을 했다. 모임에 참여한 친구들도 대부분 “월급이 늘어도 생활은 항상 팍팍하다”는 데 공감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빚이 있는 가구의 비중은 2010년 59.8%에서 지난해(3월 기준) 66.9%로 증가했다.

저축 증가는 보통 국가경제에 긍정적인 신호다. 시중에 예금이 많아지면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쉬워지고, 자본시장에서 외국인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 해외 변수가 생겨도 경기가 안정화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소득이 늘어도 소비는 위축되는 추세가 장기화되는 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록적인 저물가가 이어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소비를 자꾸 미루는 것이 디플레이션 우려를 갈수록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안 그래도 노년 빈곤층에 대한 신문기사를 요즘 자주 접하다 보니….” 명품가방을 포기한 김 씨의 선택이 엄살로만 들리지는 않는 이유다.

이원주 기자·경제부 takeoff@donga.com
#저축률#소비 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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