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정미경]다른 듯 같은 그들의 삐뚤어진 욕망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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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뉴스를 읽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빠른 속도로 무너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과장된 디스토피아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펼쳐지는 것 같은. 그 느낌은 화산폭발이나 지진해일의 소식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서슴없이 저지른 악행을 접할 때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펑펑 터지는 사건을 보면 마음이 몹시 피로해지면서 정말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동성폭행과 검사의 성접대


근래에 작심하고 인간을 분석한 인문서를 새삼스럽게 읽어보기도 했으나 어떤 책에서도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천체물리학 개론서 몇 권 읽어봤자 우주는 더욱 알 수 없는 신비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최근에 다시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맞닥뜨린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어린 여학생이 대낮에 자신이 다니는 학교 운동장에서 납치되어 폭행을 당한 사건이다. 아이는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지는 못한다. 짐작할 뿐이다. 이런 일은 너무도 끔찍해서 범인이 우리와는 아주 다른 종이기를 기대해 보지만 그 역시 나와 똑같은 DNA 구조를 가진 인간이다.

다른 하나는 스폰서 검사 사건이다. 이건 훨씬 비폭력적이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은 피해자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진상규명위원회 역시 스폰서 검사에게 스펀지 같은 징계를 내렸다. 이미 예상한 결과이다. 당사자는 평생 법을 공부하고 법 지식을 심화하고 적용하는 일에 종사해왔고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사회로부터 남다른 존경과 대접을 받아온 이들이다. 지켜보는 주위 분이 걱정하지 않아도 잘 빠져나가리라 짐작했다. 거의 평화롭기까지 한 일련의 처리 과정을 바라보는 심정은 그러나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위원회와 검찰 사이에 오가는 대사를 살펴보니 더 가관이다. 향응을 받는 등 비리가 인정되지만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한다. 징계라기보다는 앞으론 부디 들키지 말라는 애틋한 마음이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까칠한 걸까. 검찰은 즉각 화답했다. 위원회의 권고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앞으로는 술 문화를 반성하겠다며.

수사학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보면서 그들이 공소장이나 판결문을 통해 끊임없이 문장을 갈고닦아 온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법을 잘 모르는 나조차 성매매가 현행법 위반이란 걸 아는데 법집행의 주체인 그들은 성 접대에 대한 언급은 빼놓은 채 술 문화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빠져나간다.

걸그룹에 열광하는 아저씨 팬들

이 지점에서 일견 비폭력적인 듯한 이 사태는 앞서의 가혹한 사건과 어쩔 수 없이 연결된다. 잡혀온 성폭행 피의자 역시 비슷한 말을 늘어놓았다. 소주를 두 병 마셨다는. 술 취해 저지른 일은 죄가 아니라는 이 마초적 발상은 지위 학력 직업과 상관없이 이 사회에 깊숙이 번져 있다. 문화라는 말이 행동의 양식이면서 동시에 사유의 양식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성매매에 술 문화라는 말을 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갑작스럽고 느닷없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모든 사건은 사회라는 유기체가 내뿜는 날숨과 같은 것이다. 악취의 성분을 분석하면 사회의 욕망의 지도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왜 이다지도 저급한 욕망으로 가득 찼을까.

TV 화면에 나오는 걸그룹을 볼 때도 비슷한 맥락에서 마음이 불편하다. 뽀얀 피부에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몸매. 그러나 젖비린내 나는 목소리와 달리 그들이 보여주는 도발적인 춤과 노출은 폐쇄적인 성인클럽에서나 보여줄 만한 모습이다. 영혼과 육체의 불협화음이 아슬아슬하다. 그 소녀들은 진짜 소녀들은 결코 줄 수 없는 점, 그러니까 남성의 성적 이데아를 구현한다. 그들의 가장 열성적인 팬이 아저씨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조카 같다며 드러내놓고 열성 팬을 자처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속마음을 누가 알리.

미성년자이거나 아직 가치관을 확립하기엔 미성숙한 그녀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소비되는 상품의 속성을 띤다. 꼭두각시처럼 부리다가 문제가 생기면 즉시 새로운 인물로의 대체도 가능하다. 어리거나 젊은 여성을 사물화시키고 타자화시키는 데는 검사나 범죄자나 연예기획자나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우리 자신이나 다 똑같다 하면 지나친 일반화라고, 억울하다고 펄쩍 뛸까.

초기 기독교나 이슬람 학자는 아름다운 건축이 그곳에 거주하는 인간에게 영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다 한다. 옛 성당이나 모스크의 경탄할 만한 아름다움은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열망의 결정체이기도 할 것이다.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리가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은 보고 듣는 주변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자극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유연한 근육이다. 정신적 유목민을 자처하는 현대인에겐 삶을 채우는 문화가 집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요즘 대중문화의 생산자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정미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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