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SF 영화에 시진핑 주석의 ‘인류운명공동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1일 15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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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매체들, 폭발적 인기 ‘유랑지구’에 “인류운명공동체 구현” 주장
“중국만이, 공산당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 주장, 사진 나돌기도

사진=중국 영화 유랑지구(사진 출처 더우반)
사진=중국 영화 유랑지구(사진 출처 더우반)

중국 최초의 SF 블록버스터인 ‘류랑디치우’(流浪地球)가 폭발적 인기를 끌자 중국 관영 매체들이 앞 다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창한 ‘인류운명공동체’ 사상을 구현한 영화라고 치켜세우고 나섰다. 영화 내용 자체에 중국인이 세계를 구한다는 중국 중심주의가 배어 있지만 중국이 SF 영화마저 정치 선전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건 중국인뿐”

류랑디치우는 춘제(春節·한국의 설)인 5일 첫 개봉한 뒤 춘제 연휴 내내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 연휴가 끝난 11일 오후 현재 이미 4582만3000명이 관람해 21억7200만 위안(약 3602억 원)을 벌어들이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줄거리는 태양이 급속하게 팽창해 태양계를 집어 삼킬 위기에 처하자 인류가 지구에 1만 개 이상의 ‘엔진’을 장착해 지구와 함께 태양계를 떠나는 내용이다. 영화는 엔진이 중지되는 위기를 중국인들 주도로 극복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세계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을 수상한 중국의 유명 소설가 류츠신(劉慈欣)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지구에 엔진을 장착해 태양계를 떠나는 기본 설정 이외에 줄거리와 주인공은 원작과 완전히 다르다.

류랑디치우가 큰 인기를 얻자 관영 중국중앙(CC)TV는 연휴 기간이었던 9일부터 이례적으로 류랑디치우을 집중 보도하면서 “춘제의 독특한 문화현상이 됐다”며 인기 이유를 분석했다. CCTV는 “중국의 가치관과 상상력이 영화에 구현됐다”고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관영 신화통신 등의 온라인 및 소셜미디어 계정 기사들은 인류운명공동체와의 연관성을 부각시켰다.

런민일보는 “과연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단지 중국인뿐이었다”며 “류랑디치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 인류가 단결하고 힘을 집중해 큰 일을 해내는 것, 전 인류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점”이라고 강조했다.

펑파이(澎湃)신문은 “중국인이 (지구를 구하는 데) 확실히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역할)을 빠뜨리지 않았다. 민족주의를 떠벌리지 않았다. 수십 개 언어가 섞이고 국가 경계를 넘어 인류 정신에 근거한 진정한 인류운명공동체의 깊고 원대한 역사적 명제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고 추어올렸다.

영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세계인들이 모두 엔진을 다시 가동하는 데 실패했다고 여기고 절망 포기하는 상황에서 중국인들만이 필사의 노력으로 세계인들에게 필사의 노력을 호소하는 내용을 시 주석의 트레이드마크 외교정책인 인류운명공동체에 빗댄 것이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중국의 트위터)에는 CCTV가 류랑디치우 현상을 보도하자 “(이 영화는) 인류운명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선전 자료다. 농담이 아니다”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 “인류운명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선전 자료”

런민일보는 다른 기사에서 “류랑디치우에서 두드러진 것은 중국이 글로벌 거버넌스에 보여주고 있는 주도적 역할”이라며 “훨씬 더 자신감 있는 대국의 마음 자세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미중 무역전쟁이 연상된다. 류랑디치우는 때를 잘 만났다”고도 지적했다.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미국과 달리 글로벌 협력을 중시하는 중국의 가치관을 류랑디치우가 보여줬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중국 네티즌들은 소셜미디어 웨이보(중국의 트위터)에 류랑디치우 관람 인증을 위해 영화 티켓 사진을 올렸다. “공산당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문구가 인쇄된 영화 티켓을 올린 사진도 올라와 논란이 됐다.

CCTV는 최근 “수년간 중국 SF의 굴기는 중국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 실력 발전과 밀접하 관계가 있다”며 중국의 우주굴기와 류랑디치우의 성공을 연결시켰다. “(중국이 잇따라 성공한) 유인 우주비행, 달 탐사 등이 SF에 대한 전 중국 국민의 열정을 키우고 불을 지폈다”며 “가정과 국가에 대한 책임, 사심이 없으면 두려울 것도 없다는 정신이 중국 SF 창작인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정신이 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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