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이해찬은 이해찬이다

입력 | 2018-09-11 03:00:00



이승헌 정치부장


#1. 2001년 4월 어느 날. 필자가 알고 지내던 한 기자가 밤늦게 서울 관악구로 향했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중진 의원 집이었다. 그때만 해도 정치부 기자들은 유력 정치인들 집으로 종종 취재를 가곤 했다. 부인 허락을 받고 거실에서 1시간 기다렸더니 집주인이 왔다.

―안녕하세요? 저 ○○○ 기자라고 합니다.

“미리 예고도 안 하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대개 “안으로 듭시다”는 말을 들어왔던 기자는 집주인이 정중하지만 완강하게 인터뷰를 사양하는 바람에 별 소득 없이 집을 나서야 했다.

#2.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며칠 전인 지난달 중순. 민주당 A 의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이란 문구가 떴다. 평소 아는 번호만 받는 터라 무시했다. 그런데 몇 차례 더 왔다. 하도 울려서 받았더니 당 대표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다음 날 조찬모임을 하려는데 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보안 문제 때문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숨겼다고 한다. A 의원은 “실명으로 전화하면 더 빨리 받았을 텐데 참 독특하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례의 주인공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다. 30년 넘게 정치를 한 만큼 이 대표와 관련한 에피소드와 평가가 많은데 그의 성격이나 성향에 대한 게 적지 않다. 똑똑하고 전략적인데 너무 원칙주의자다, 까칠해서 접근하기 쉽지 않다, 보수 궤멸론을 서슴없이 입에 올린다…. 전대 경쟁자였던 김진표 송영길 의원이 “이해찬 대표로 협치가 되겠느냐”고 공격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요새 이 대표가 변했다고 한다. 여의도 어딜 가도 “이해찬이 왜 그럴까”가 화제다. 취임 첫날 서울현충원에 가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건 시작에 불과했다. 박 전 대통령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회의를 했고, 한때 동지였다 배를 갈아탔으니 더 미울 법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만나서는 평소 보기 힘든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엔 측근들도 당황한 장면이 있었다. 총리까지 지낸 이 대표의 평소 지론 중 하나는 “서서 인터뷰 안 한다”는 것. 그런 이 대표가 국회 복도를 걸어가던 중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자 주요 이슈에 대해선 답을 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까칠 보스’ 이해찬을 달라지게 한 걸까. 처음으로 집권 여당 대표가 돼서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측근들은 이런 분석에 콧방귀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근은 “이 대표는 현실적 개량주의자”라고도 했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이해찬 시즌2’를 보고 있을 뿐, 이 대표 자체가 달라진 건 별로 없다는 거다.

그럼 이 대표의 목표는 뭘까. 사실 이미 스스로 말했다. (최소) 집권 20년이다. 진보 지지층만으로는 20년 집권은 불가능하다. 중도보수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새로운 ‘집권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본질을 유지한 채 얼마든지 변하고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인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 이 대표를 당 정책위의장, 교육부 장관으로 기용하며 유달리 아꼈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주변에 자주 하던 말이다. 지금 이 대표는 DJ 말처럼 20년 집권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정치인생 30년의 내공을 담아 변화무쌍한 춤을 추고 있다. 이 대표의 강성 이미지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노렸던 한국당으로선 더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