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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 정책 성과 속도내기 위해 대기업에 손 내밀어

입력 | 2018-07-06 03:00:00

[文정부 2년차 정책 방향]文대통령 정책좌표 재설정하나




행복주택 입주민들과 생맥주 파티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5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 행복주택단지를 방문해 야외행사장에서 열린 신혼부부 및 청년 주거대책 발표 행사를 마친 뒤 입주민 등과 생맥주로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인도 국빈 방문에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현지 휴대전화 공장 준공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날지를 놓고 청와대 내부에선 고민이 적지 않았다. 촛불민심이 여전히 삼성을 타깃으로 하는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만큼 지지층이 떨어져나갈 수도 있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나기로 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 2년 차를 맞아 이전과 다른 기조하에 경제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사회의 ‘주류 교체’를 내걸었던 문 대통령이 지방선거 압승 이후 진보 진영은 물론 보수층에도 다가가는 쪽으로 국정 운영의 키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 대기업에 손 내미는 문 대통령

청와대는 인도 순방을 준비하며 삼성 측에 먼저 노이다 신공장 방문을 제안했다고 한다. 다만 이 부회장의 참석 여부를 놓고는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 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 부회장의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지지층의 반발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부 격론 끝에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나기로 한 것은 6·13지방선거 후 경기 진작을 위해 기업과의 소통 강화를 강조한 문 대통령의 스탠스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내부 회의에서 참모들에게 “과거에는 청와대가 기업을 만나면 뭔가 뒷거래가 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그런 것이 없지 않나.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만나라”고 지시했다.

여기에는 집권 2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고민이 담겨 있다. 6·13지방선거에서 PK(부산경남) 지역은 물론이고 서울 강남구까지 차지하며 진보 진영과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안는 데 성공한 만큼 진정한 ‘주류 교체’를 위해선 중도 세력을 더 확실히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급전직하하는 ‘고용 쇼크’ 속에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의 협력이 절실한 정책이 산적해 있다는 점도 기조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일자리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선 결국 대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며 “대기업을 더 이상 공정경제를 위한 개혁이나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핵심 파트너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중도층 포용하면서도 수위 조절 고심

지방선거 직후부터 이 같은 기류 변화는 다양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소득주도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지난달 26일 경제정책라인 수석비서관 3명을 전격 물갈이한 건 여권에 충격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 다음 날엔 혁신성장 속도가 더디다며 규제혁신점검회의를 시작 3시간 전에 전격 취소하는 ‘레드카드’를 날렸다. 공직사회를 겨냥한 것이었다. 빠른 성과를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면 이념이나 정치 지형을 떠나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는 ‘문재인식 충격요법’인 셈이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4일 ‘부자 증세’를 놓고 충돌 양상을 보이자 청와대가 예상과 달리 기재부의 손을 들어준 것도 이전과는 다른 대응 방식이다. 옛날 같으면 “기재부가 청와대에 항명했다”는 말이 나올 사안이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재정특위의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권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은 데 대해 “김 부총리가 한 말과 청와대의 입장에 차이가 없다”며 속도조절론의 손을 들어줬다. 지지층도 중요하지만 중도보수층의 수요도 감안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발해 최저임금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요구를 거부한 문 대통령은 이달 3일에는 비공개로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나 ‘사회적 대화’ 복귀를 설득하기도 했다.

다만 청와대는 집권 2년 차에도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등 진보적인 정책 기조는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정책 혼선’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부자 증세의 청사진을 담은 재정특위의 권고안을 그대로 발표하도록 한 것도, 뒤집어 보면 여건이 성숙된 뒤엔 언제든 증세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이 부회장과의 만남으로 대기업 정책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경제계 일각의 기대에도 선을 긋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과거 정부와 같이 대기업 위주 경제정책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말 그대로 억측”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류와 맞물려 지방선거 후 문 대통령이 경제라인 수석 3명을 물갈이하며 전격 발탁한 윤종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는 관측이 많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번번이 부딪치는 청와대 참모들과 부처들을 장악해 정책 수위를 조절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황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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