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공종식]모스크바대 수학과 출신이 한국에 온 이유

입력 | 2010-12-01 03:00:00




모스크바대 수학과를 졸업한 블라디슬라프 마트베예프 씨는 2006년부터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직장은 국내 대표적인 클라우드 컴퓨터 업체인 클루넷. 그는 탄탄한 수학 실력을 기반으로 고화질 인터넷방송 서비스 등 복잡한 프로그램 개발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 이 회사에서 ‘핵심인재’로 분류된다.

차석기 클루넷 부장은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이 국내 개발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수학적인 방법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이 탁월하다”며 “마트베예프 씨가 개발에 참여한 제품은 생산성 등 모든 면에서 완성도가 높아 보수 유지 비용을 크게 줄였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국내 정보기술(IT) 업체에서 근무하는 러시아 수학자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늘었다. 러시아의 수학 실력이 탄탄해 우수한 수학 인재들이 대거 배출되기 때문이다. 국내 보안업체들은 수학 강국인 러시아에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발주’하는 일도 많다. 보안 프로그램 제작에는 고난도의 응용수학이 쓰이는데 국내에선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수학의 쓰임새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 기초과학이나 일부 제조업에서 유용하게 써오던 수학이 이제는 보험, 증권 등 금융은 물론이고 산업계 전반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제 보험사마다 상품 개발에는 수학 전공자들이 반드시 참여하고 있다. 파생상품도 마찬가지다. IT 분야에서도 암호, 보안 관련 고급 프로그램 개발 설계에 수학이 폭넓게 쓰이고 있다. 최근 수학 전공자들의 취업이 잘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학경쟁력=산업경쟁력’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평가(PISA)’의 수학에서 항상 1, 2위를 다툴 만큼 ‘수학강국’이다. 그런데 왜 정작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수학에서는 러시아에 밀리는 것일까. 여기에는 문제풀이식 수학 교육에도 이유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잘 따라오지만 수학 수준이 높아질수록 입시용 수학 교육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힘들어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의 수학 실력은 아직은 ‘최고’가 아니다. ‘중상’ 수준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실제로 국제수학연맹(IMU)은 68개 회원국의 수학등급을 매기는데 최고 등급인 5등급에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러시아 등 주요 8개국(G8)과 중국 이스라엘이 포함돼 있다. 한국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 한국의 수학 등급은 2등급이었다가 2007년에 4등급으로 두 등급 상승했다.

박 교수는 “일제강점기 일본은 한국에서 사실상 제대로 된 수학 교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수학 교육을 했다고 보면 된다”며 “최근 들어 한국 수학계의 실력이 많이 좋아진 점은 희망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4년 수학자들의 최대 축제인 국제수학자대회를 유치했다.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에서는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가 발표되는데, 아직 한국인 수상자는 한 명도 없다. 국내 수학계는 우리도 국제학술지 논문 발표가 늘어나는 등 수학계 수준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2020년까지는 필즈상을 받는 한국인 수학자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학등급도 5등급으로 올라가고, 필즈상 수상자도 배출되는 등 한국의 수학경쟁력, 나아가 산업경쟁력이 한 단계 올라가기를 희망해본다.

공종식 산업부 차장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