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교수와 技保뚝심이 ‘녹색 强小기업’ 키웠다

입력 | 2010-07-06 03:00:00

은행권서 외면받던 그린하이테크 中企‘나노’의 성공 비결




경북 상주시 나노 상주공장 내 중앙마당 분수대 앞에서 신동우 나노 사장(경상대 신소재공학부 교수·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임직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영민 전략마케팅 팀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신 사장의 제자로 1999년부터 함께해 온 창업 멤버이다. 사진 제공 나노


《‘EnBW 수주량 278m³ 가운데 150m³ 생산 중.’ 지난달 24일 경북 상주시 청리일반산업단지에 있는 중소기업인 나노의 상주공장. 원료로 보이는 흰색 분말을 기계에 집어넣자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한쪽에서 골판지처럼 생긴 사각필터가 줄지어 나왔다. 필터가 나올 때마다 천장에 달린 전광판 숫자도 올라갔다. 공장 관계자는 “독일의 대표적인 발전회사인 EnBW에 수출할 물건”이라고 말했다. 어떤 제품인지 궁금해 하는 기자에게 신동우 사장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 신소재전문가의 도전
온난화 물질 분해 원료 개발
사업성 자신해 의욕적 출발

■ 암담한 현실
질소산화물 규제 연기되고
투자자도 없어 돈줄 꽉 막혀

■ 한 줄기 빛
열정과 기술 눈여겨본 技保
위기때마다 거금 보증지원
“봐도 잘 모르겠죠? 이 필터는 산성비의 원인이면서 지구온난화 유발 물질인 질소산화물을 질소와 수증기로 분해하는 장치입니다. 지구에 맑은 공기를 돌려주는 기특한 놈이죠. 원료부터 생산설비까지 100% 우리 기술로 만들었어요.”

세계 수준의 녹색기술을 갖춘 중소기업으로 훌쩍 성장한 나노는 한 지방대 교수와 금융 공기업인 기술보증기금의 ‘겁 없는 도전’이 결실을 맺은 사례다.

○한 지방대 교수의 겁 없는 도전

나노는 관련 업계에서 ‘작지만 강한 녹색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95명의 직원이 163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중소기업 중에서도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세라믹 재료를 가지고 유해가스를 정화하는 필터 제조 분야에서 국내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데다 기술경쟁력도 세계적 수준이라는 점에서 잠재력이 더 높은 기업으로 꼽힌다.

출발은 눈물겨웠다. 호방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신 사장도 창업 당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사업가이면서 경상대 신소재공학부 교수이기도 하다.

“1997년 말 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1998년에는 지방대 공대 졸업생 취업이 전무했어요.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했죠.”

1997년 이후 2년간 제자 중에서 한 명도 취직을 못하자 공장을 직접 차리기로 결심했다. 졸업생 1명과 재학생 3명이 ‘교수님’을 ‘사장님’이라 부르며 동참했다. 다행히 1999년 환경부에서 2억 원을 지원받아 경상대 캠퍼스 안에 60평 규모의 땅을 임차할 수 있었고 이곳에 아담한 공장을 지었다. 대학 캠퍼스 안에 들어선 국내 최초의 공장이라고 했다.

○중소기업과 정책금융의 만남

신 사장은 일본이 필터 제조기술을 독점한 가운데 질소산화물 분해 필터의 원료를 저렴하게 생산하는 기술을 1998년 교수로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 2001년에 한국, 미국, 중국에서 특허까지 받으면서 의욕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상황은 암담했다. 2003년에 공장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을 규제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산업계의 반발로 2005년으로 미뤄지면서 수요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장 돈줄부터 막혔다.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빌릴 수 있는 대출 한도는 꽉 찬 데다 창업 이후 적자만 낸 기업에 돈을 대주겠다고 나서는 투자자도 없었다. 마침 EnBW에 수출할 기회가 생겼지만 원료를 살 돈이 없어서 포기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국내외서 주문 밀물… “3년후 세계 녹색챔프 자신”

이때 기술보증기금이 후원자로 나섰다. 창업 이후 물건을 한 번도 팔아보지 못한 나노에 약 10억 원 규모의 보증 지원 결정을 내린 것. 대일(對日) 무역역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품·소재산업 분야에서 기술경쟁력을 갖춘 데다 친환경 녹색사업이라는 점이 지원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줬다. 당시 나노의 현장조사를 맡았던 김의철 기보 지식창업부 팀장은 “외환위기 이후 모두 투자를 포기하는 상황에서 세계무대에 도전해 최고가 되겠다는 임직원의 열정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EnBW로의 수출은 나노가 이후 승승장구하는 전환점이 됐다. 프랑스의 전력공사인 EDF, 한국중부발전 보령화력본부, 현대중공업 등이 나노의 고객이 됐다. 내년부터는 삼성중공업이 만드는 선박에도 나노 제품이 장착될 예정이다.

나노와 기보의 아름다운 인연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지난해 국내외에서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공장 증설이 절실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국내 은행권은 몸을 사렸다. 이때 기보는 다시 100억 원을 보증했고, 나노는 경북 상주에 4만9600m²(약 1만5000평) 규모의 제법 큰 공장을 완공했다. 신 사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기보가 큰 힘이 됐다”며 “2013년에는 이 분야의 세계 1위 업체인 미국의 코메텍을 따라잡아 진정한 ‘녹색 히든챔피언’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 기보, ‘녹색 챔피언’ 키운다

나노는 기술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정책금융 지원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보 역시 이런 지원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녹색산업에 대한 보증 지원을 더욱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올해 4월 기보가 국내 금융회사 중 유일한 녹색인증 평가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이런 구상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기보는 4월 정부의 녹색인증제도 시행 이후 LS산전을 시작으로 6월 말까지 12건을 녹색기술로 인증했다. 인증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앞으로 활성화할 녹색예금·채권·펀드 상품의 우선 투자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이 녹색금융 지원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그린하이테크 특례보증’ 상품을 도입했다. 녹색기술 인증을 받은 대기업과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녹색 상생 협력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한편 지난해 중소기업이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기보와 신용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이 지원한 신용보증 규모는 75조2535억 원으로 전년보다 49.5%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보였다.

상주=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제조업 위주 지원 탈피, 문화콘텐츠 사업도 보증”

■ 진병화 기보 이사장


“무늬만 녹색인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녹색 거품을 우려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사실 지금은 녹색금융 지원의 사각지대를 더 걱정해야 할 단계예요.”

진병화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사진)은 녹색산업 육성책이 ‘정보기술(IT) 버블’ 같은 거품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이는 한국 산업계의 절박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한국의 녹색산업 육성 정책이 거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는데….

“정부가 4월에 도입한 녹색인증제를 들여다보면 걱정이 지나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녹색기술로 인증을 받으려면 세계 최고 기술의 70% 수준까지 도달해야 할 정도로 기준이 엄격합니다. 일부 대기업만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져 중소기업 대상의 그린하이테크 특례보증, 녹색상생 협력 프로그램 등을 만들었을 정도입니다.”

―녹색 중소기업 중에서도 어떤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인지.

“현재 한국의 무역구조는 중국으로부터 수백억 달러의 흑자를 내고, 일본에는 수백억 달러의 적자를 내는 식입니다. 부품 소재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하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나노처럼 부품 소재산업의 경쟁력이 강한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나쁜 남자’ 제작사가 한국수출입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보증을 서줬는데….

“제조업 위주로만 보증 지원을 해왔던 기보가 문화콘텐츠 사업에 뛰어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발달할수록 제조업 비중은 줄고 문화콘텐츠를 비롯한 지식서비스산업 비중은 늘기 마련입니다. 제조업에 대한 보증 지원만 고집하는 것은 녹아들어가는 빙하 위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손에 잡히는 유형 기술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기관에서 무형의 자산까지도 평가할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