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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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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s maketh man, LEE SEO JIN

editor_feature Kim Myung Huiㅣeditor_fashion Choi Eun Cho Rongㅣphotographer Kim Yeong Jun

2017. 10. 26

지난달 ‘여성동아’ 에디터와 스페셜리스트들은 ‘블라인드 토크’ 코너에서 우리 시대의 남성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꼰대와 지하철 쩍벌남, ‘낄끼빠빠’를 모르는 눈치 없는 상사, 배 나온 아재가 차례로 불려나와 혼쭐이 나는 그 살벌한 토크의 현장에서 바람직한 남자로 첫손에 꼽힌 스타가 있었으니, 바로 이서진(46)이다. 어른들에게 잘하고(‘꽃보다 할배’ ‘윤식당’), 스타일 좋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서진과의 만남을 예견이라도 한 듯, 에디터와 스페셜리스트들은 입 모아 그의 매력을 열거했더랬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지나고 보면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기사를 본 많은 독자들이 이서진을 지면에서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고, 그가 흔쾌히 수락하면서 ‘여성동아’ 창간 84주년 특집 호와 이서진의 조우가 극적으로 성사됐다.

약속 시간을 5분 앞두고 이서진이 스튜디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이다. 나영석 사단의 예능은 다큐라더니, 그것도 아닌가 보다. 이서진은 화면보다 키가 크고 슬림하고 얼굴도 더 작았다. 그는 ‘삼시세끼’ 바다목장 편을 끝으로 잠시 나영석 PD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모처럼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그는 2013년 나 PD와 소속사의 협잡에 속아 넘어가 tvN ‘꽃보다 할배’의 짐꾼으로 나선 것을 시작으로 강원도 정선 시골집에서 밥 한 끼를 때우려 아궁이와 사투를 벌이고, 이국의 휴양지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식당을 열고, 전남 득량도에서 먹방을 찍느라 참 바쁘게도 지냈다.





“(‘삼시세끼’ 바다목장 편 종영이) 전혀 아쉽지는 않고요(웃음). 집에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촬영이 없을 땐 사람들을 만나거나 운동을 하면서 지내요.”



이서진은 귀찮은 건 딱 질색이고 마음에 없는 말은 못 하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투덜거리면서 해야 할 일은 다하고, 무심한 듯 보여도 어른들에게 깍듯하고 센스 있게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그의 매력이다. ‘윤식당’에 이서진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접한 윤여정이 제작진에게 “차라리 정혁이를 데리고 가지, 이서진을 왜 데리고 가느냐”고 했다가 발리에서 돌아올 즈음에는 “서진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준비를 완벽하게 해주고. 나중엔 의지했다. 걔가 사장이고 나는 바지 사장이 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버지도 엄하고 무뚝뚝한 성격이셨지만 할아버지껜 참 잘하셨거든요.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서 나이나 직책을 떠나 저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께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저는 그게 특별하다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너무 좋게 봐주시니 얼떨떨하기도 해요.”

나영석 PD의 말에 따르면 이서진은 ‘예상외로 유용한 사람’이다. 매번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뒤를 돌아보면 이서진이 있다는 것이다.

나 PD의 계략에 항상 이서진이 당하는 듯 보이지만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케미스트리는 늘 흥미진진하다. 이서진에게 나영석이란.

“언제든 헤어질 준비가 돼 있는 관계죠(웃음). 여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났고, 어른들을 모시고 다니느라 힘들었던 탓에 사적으로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친해졌어요. 지금은 PD와 배우라기보다 친한 형과 동생 사이죠. 만나면 일 얘기는 안 하고 쓸데없는 잡담만 해요. 나 PD는 그런 걸 또 방송 소재로 쓰더라고요.”

그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정해진 틀도 없고 대본도 없다. 그조차 ‘이게 방송이 되겠어?’ 싶었던 것들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고 장수하는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노고들이 있을 것이다.

“‘삼시세끼’는 일이 너무 많아요. 만들고 먹고 치우다 보면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하루가 금방 가죠. 부엌과 불 피우는 곳과 설거지하는 곳이 떨어져 있다 보니 불편한 점도 많고요. ‘윤식당’ 같은 경우는 우리끼리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손님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크고요. 개인적으로는 잠깐 긴장을 하더라도 숨 돌릴 틈이 있고 즐기는 시간도 있는 ‘윤식당’이 좀 더 편해요. ‘삼시세끼’는 노동 강도가 어휴~!”

‘삼시세끼’ 이야기가 나오자 자동으로 투덜이 모드로 전환됐지만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요리에 문외한이던 그는 베이커리에서 내놓는 것 못지않은, 제법 제대로 된 빵을 구워내는가 하면 어선 면허증을 취득하는 등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그중 하나다.

“제가 그다지 음식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어딜 가든 음식부터 살피게 돼요. 맛있거나 특별한 걸 발견하면 정혁이한테 전화해서 ‘다음에는 이런 걸 한번 해보자’고 제안하죠. 정혁이 진짜 요리 실력이 궁금하실 텐데, 정말 ‘제대로’예요. 처음엔 요리 좀 한다고 해서 ‘남자치고는 좀 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특히 국물 요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기본에 충실하고, 깊고 진한 맛이 나거든요.”


지금은 예능 대세지만 그는 한때 백제의 장군(‘계백’)으로, 조선의 왕(‘이산’)으로, 차가운 도시 남자(‘참 좋은 시절’)로 드라마에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데뷔 18년 차인 그의 배우로서의 행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예능 때문에 연기를 미루거나 안 하는 건 아니에요.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검토해왔고,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언제든 연기를 할 준비가 돼 있어요. 그간 출연작이 많지는 않았는데, 앞으로는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좀 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고, 다작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악역도 해보고 싶어요. 단순히 선(善)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됐을까’를 생각하게 만들고, 그의 선택에 공감하게 만드는 명분 있는 악역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영석 PD가 자신의 사단에 가입하고 싶어하는 숱한 ‘지망생’들을 두고 왜 이서진을 고집하는지, 윤여정과 신구가 왜 그의 팬을 자처하고 택연과 문정혁이 ‘서진이 형’을 왜 찾는지. 그는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걸 그의 방식대로 순리대로 풀어간다.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인생이 원래 그런 거지’라고 심플하게 생각하고 앞서 걱정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 이서진 스타일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더 이상 그의 얼굴을 실물로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괜찮다. 그는 지금쯤 어디선가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나영석 PD와 새로운 작당을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designer Kim Young Hwa
의상협찬 디바인핸즈(02-541-8461) 마르니(02-3467-8923) 알렉산더맥퀸(02-3444-3300) 톰브라운(02-3018-0010) 소품협찬 가리모쿠by리모드(02-2051-9888) 헤어 성효진(수퍼센스에이) 메이크업 조해영(에이바이봄) 스타일리스트 홍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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