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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ryan #ryuway

류여해, 나에게 홍준표와 라이언이란

editor 정희순

2018. 02. 01

‘여자 홍준표’에서 ‘홍준표 저격수’로 변신한 정치인. 라이언 인형을 들고 다니는 괴짜. 튀는 행보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한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을 만났다.

지난해 말,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류여해’라는 이름이 꽤 오랫동안 오르내렸다. 지난해 12월 26일, 자유한국당은 류여해(45)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의 제명을 통보했다. 돌출 행동과 (특정인에 대한) 비방이 심각하다는 게 이유다. 이후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의 사당화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연일 쏟아낸 그녀는 현재 제명 결정이 부당하다며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지난 1월 8일, 최근 새로 마련했다는 서울 서초동의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뭔가 ‘큰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와 함께 등장했던 라이언 인형들도 함께였다. 

오늘은 빨간색 의상을 입지 않으셨네요(웃음). 

드디어 나다운 모습을 찾은 것 같아요. 당에 있을 땐 일부러 빨간색 의상을 자주 입었거든요. 맛있는 커피를 내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시장에서 예쁜 꽃을 사는 일이 행복해요. 정계에 뛰어든 지난 1년 동안, 어찌 보면 저는 ‘류여해다움’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연말연시 모임도 많을 때인데, 제명 결정 이후로 어떻게 지내셨나요. 


일단 잡혀 있던 약속들은 전부 취소됐어요. 부르지를 않더라고요(웃음). 천주교 신자라 기도도 열심히 하고 건강을 챙기는 데 집중했고, 새 책 출간 준비도 하면서 지냈어요. 엊그제 사무실도 이사했고요.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국회사무처 법제관, 수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며 법학자로 살던 그녀가 정치판에 뛰어든 건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종합편성 채널의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법률 평론과 정치 평론을 하던 그녀에게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에서 호출이 왔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국면으로 인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당의 쇄신을 꾀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방송 활동을 통해 친분이 있던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다른 사명감이 들었다. 당원으로 가입하진 않은 채, 그녀는 당의 혁신을 위한 윤리위원으로 자유한국당과 인연을 맺었다. 

정계에 입문하신 게 꼭 1년 전 일이네요. 


처음엔 새누리당 당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정치는 전혀 몰랐고 그저 윤리위원으로서 제게 주어진 일을 하는 거였죠. 한편으론 윤리위원이라는 자리를 굉장히 명예롭게 생각했어요. 당이 존재하기 위해 당헌 · 당규가 존재하는 것이고, 해당 행위를 한 사람들을 심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자리보다 뜻깊은 자리라고 여겼거든요. 당원 신분은 아니었지만,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바뀌는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어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가죠. 

정치에 뜻이 없으셨다면서 입당은 언제 하셨나요. 

작년 3월 24일 입당했어요. 당에 계시던 분들이 대거 바른정당으로 떠나면서 당협위원장 자리에 공석이 생겼었거든요. 당이 반으로 쪼개진 상황에서 그냥 떠날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러다 추천을 받아 당협위원장 자리에 지원하게 됐는데, 당협위원장직을 맡으려면 당원으로 가입을 해야 했어요. ‘정치를 꼭 해야 해’라는 목표가 있었다기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지내다가 그렇게 된 거였죠.

그때부터였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 예정돼 있었고, 당내 사람은 부족했다. 명색이 대한민국 제1보수당인데, 상황이 이렇다고 대선 후보를 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경남 도지사였던 홍준표 대표가 대선 후보로 나서게 됐고, 그녀는 한 사람의 당원으로서, 또 당협위원장으로서 자유한국당의 ‘어려운’ 게임에 뛰어들었다. 

당시 홍 대표를 존경한다는 인터뷰를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홍 대표를 존경한다고 했다고요? 좋아하게 됐다고 했겠죠.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당을 대표해서 대선후보로 나간 분이니까요. 

전에는 ‘여자 홍준표’라고 불리기도 하셨는데요. 

‘여자 홍준표’는 제가 지은 별명이 아니에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이죠. 사람들이 저더러 막말을 한다고 하는데 저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정치판에선 여성 정치인이라면 응당 곱고 우아해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건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예요. 저는 그걸 참을 수가 없어요. 실제 막말의 사전적 정의는 욕을 하는 거예요. 제가 언제 욕했나요? 저는 그런 적 없어요. 할 말을 했던 것뿐이죠. 막말로 따지면 홍준표 대표가 훨씬 많이 했죠. 

공식 석상에 라이언 인형을 많이 들고나오시는 게, ‘여자 홍준표’라는 수식어를 떼기 위해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일단 제가 라이언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해요. 설명에 보면 정의롭고 묵묵한 캐릭터라고 나오죠. 제가 추구하는 모습이에요. 그리고 전 자유한국당이 가진 ‘꼴수(꼴통 보수)당’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어요. 할아버지들끼리 모여서 작당모의하는 당이라는 말도 듣기 싫었고요. 제가 라이언 인형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저는 이게 자유한국당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라고 봐요. 

언젠가 한 번은 저를 본 한 어린이가 “어, 라이언 아줌마다! ” 하고 말하더라고요. 소통이 시작된 거죠. 그 아이가 나중에 자라 유권자가 되고, 자유한국당 당원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제가 이 인형에 담아낸 두 번째 의미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8명의 군인이 작전에 들어가잖아요. 저는 타협하고 편히 가는 길이 아니라, 국민과 보수 우파 당원을 위해 나를 던지고 힘든 시간을 버티기로 했어요.

어떤 기자는 칼럼에서 류여해 전 최고위원에게는 라이언보다 튜브 캐릭터가 어울린다고 썼더라고요(웃음). 워낙 울고 화내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잖아요. 

저는 튜브 싫어요! 걔는 튜브 끼고 눈을 부라리면서 떽떽거리는 애잖아요. 그런 게 막말인 거예요. 저도 예전에 평론을 썼던 사람이지만, 요즘 들어서 평론의 가벼움을 많이 느껴요. 누군가를 평한다는 건 어려운 거고, 되게 조심스러운 거죠. 제가 울고 화내서 튜브라고요? 그렇게 따지면 문재인 대통령이 더 많이 울잖아요. 우는 사람이 오히려 솔직한 거예요. 다만 지금 후회가 되는 게 있다면, 내 눈물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위해 울었어야 했다는 거. 그런 점에서 보면 미성숙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찌 됐건 앞으로는 우는 모습을 많이 보기 힘드실 거예요. 저 요즘 단단히 철갑옷을 입었거든요.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류 전 최고위원과 홍준표 대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다. 지난해 7월 열린 전당대회에서 홍 대표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입당 1백 일 만에 당 지도부에 깜짝 입성했던 그녀다. 홍 대표 옆에는 그녀가 있었고, 그녀 옆엔 홍 대표가 있었다.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빙긋 웃고 있는 사진은 차갑게 식어버린 지금의 관계와 비교할 때 자주 등장하는 그림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어째서 둘은 이토록 멀어지게 된 걸까. 

홍 대표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뭔가요. 

제가 법치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홍 대표는 법치가 아니라 정치를 중시하는 사람이죠. 당에도 분명 당헌 · 당규가 있고, 최고위원회라는 의결 기구가 있어요. 그런데 홍 대표는 자신이 당대표라는 이유로 “이렇게 해, 저렇게 해”하고 말하곤 해요. 

어렵게 일으켜낸 자유한국당이 홍 대표 개인의 정당처럼 변질돼가고 있는 거죠. 한번은 제게 한 달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그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선당후사’라는 생각으로 거기에 따르는 게 맞다고 여겼어요. 

나이도 어리고 정치 경험도 없으니까, 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참고 참다 나중에는 안 되겠기에 제가 대놓고 브레이크를 건거예요. 그랬더니 이제는 아예 저를 쫓아 내버린 거죠. 

1년간의 드라마틱한 정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건 뭔가요. 

진작 더 큰 소리로 말할걸. 인내심이 너무 강했던 걸 후회해요. 불의를 봤을 때 처음부터 ‘노(No)’라고 외쳤어야 했어요. 왜 여자라고, 나이가 어리다고, 정치 초년생이라고 무시하는지를 따졌어야 했어요. 그게 가장 류여해다운 건데 제가 너무 어리석었던 거죠.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도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성격이었나요. 

제가 한 여성지에 연재했던 칼럼 주제가 ‘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였어요. 당신을 위한 법은 없으니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더 들여다보고, 법을 만들라고 얘기했죠. 법 전도사였어요. 

정치인들을 보면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뭔가요.

꼭 하나만 얘기해야 해요(웃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거요. 자유한국당을 버리고 떠났던 사람들이 자유한국당 욕을 좀 많이 했나요? 이 당은 망했다는 말을 밥 먹듯이 했죠. 그랬던 사람들이 돌아와서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유한국당을 지켜온 척을 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들이 한 일을 잊어버린 것 같은 사람들을 보는 것도 힘들었고요. 

재심을 청구했다는 건 다시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 아닌가요. 정치판을 떠나고 나면 더 류여해처럼 살 수 있을 텐데요. 

제가 법학자가 아니었다면 훌훌 털고 나가버렸을 거예요. 그런데 전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권리를 찾으라고 말하는 사람이잖아요. 나부터 내 권리를 포기해버린다면 앞으로 다른 이들에게 “너의 권리를 찾아”라는 말을 꺼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재심도 신청한 거예요.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가족들은 걱정하지 않으시나요. 

남편과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어요. 제 가족들은 중간에 멈추면 분명 후회할 테니 할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해보라고 해요. 오늘 아침에도 남편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난 자기가 참 자기다울 때 가장 좋아. 하지만 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내려놔도 돼”라고요. 전 정말 욕심 없이 달려왔고, 대한민국 보수 우파의 가장 큰집이 자유한국당이길 원했던 사람이에요. 지금 젊은 세대들이 바라보는 자유한국당의 이미지가 진정으로 바뀌길 원하는 사람이고요. 

재심을 청구하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플랜 B를 세웠냐고 묻자 그녀는 “가능한 모든 법적 절차를 밟아 끝까지 싸울 것”이라 답했다. 인터뷰 후 수일이 지난 뒤엔 그녀가 자유한국당 서울시당신년인사회장을 방문했다가 당 관계자들로부터 퇴장 요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어 그녀가 홍준표 대표가 헌법을 위반했다는 명목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만만하게 보고 시작하지 않았다”는 그녀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다시 당에 들어가게 된다고 해도 결국 정치력으로 다퉈야 할 거예요. 홍준표 대표는 정치력이 좋은 베테랑이고요. 

정치력 좋은 베테랑이 아니니까 지금 바른정당 탈당파를 받아주고 있는 거예요. 다시 얘기하면, 본인이 가진 기반이 없으니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보려고 해선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 내 힘이 안 된다고 해서 타협하는 거, 저는 그 모습이 가장 실망스러워요. 아무리 어렵고 곤궁해도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 있는데 말이죠. 

과거 한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적이 있으시더라고요. 지금도 같으신가요. 

그렇죠. 박원순 시장이 3선에 도전한다는 말도 있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온다는 말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제 조금 젊고 신선한 인물이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저는 서울 시민들에게 필요한 아름다운 서울을 만들고 싶어요. 서울 시청 앞 광장, 광화문 광장도 특정 시민이 아닌 서울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돌려놔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자유한국당이 아니더라도 출마할 계획인가요. 

저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던 사람이에요. 길을 걷다 더 좋은 길을 만나면 그리로 걷게 되기도 하는 법이잖아요. 중요한 건 그 길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죠. 저는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야말로 제가 갈 길을 가리키는 등대라고 생각해요. 작년 1월 8일의 류여해는 정치인이 될 거라고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새누리당에 들어가게 됐고, 당원이 됐고, 또 최고위원의 자리에도 올랐어요. 그렇게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류여해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쭉 듣고 나니, 이 싸움이 좀처럼 쉽게 끝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간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모처럼 불붙기 시작했다는 점이 무척 반갑다. 

그녀의 말처럼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정치판은 특히 더 그렇다. 그런데 왠지 끝까지 가보라고 응원하고만 싶다. 그게 류여해의 길이라면.

photographer 홍중식 기자 designer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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