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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육아 멘토 오은영이 어른들에게 보내는 위로

“당신 모습 그대로 참 좋아요”

EDITOR 이혜민 기자

2019. 02. 18

오은영 박사가 어른을 위한 책을 펴냈다. 자주 마음의 길을 잃고 주저앉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그때 상처 받았고 지금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당신에게 힘이 있다는 증거라고요. 그렇게 아팠는데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버틴 것, 그것은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더 가여운 사람들은 왜 괴로운지 모르고 괴로워만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내면에 그런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_‘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육아의 신, 초긍정 에너지의 소유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54) 박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오은영 박사는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EBS ‘생방송 60분 부모’ 등을 통해 육아의 노하우를 전수해온 대한민국 부모들의 멘토다. 그런 그가 어른을 위한 책 ‘오은영의 화해’를 펴냈다. 이 책에는 내면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내면의 나와 화해하기’를 강조하는 오 박사는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아야 했던 상처가 있다. 이 상처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다가 평생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그 상황을 직시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펴낸 책은 성인들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듯해요.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자신을 찌르는 가시를 안고 살아가요. 부모와 자녀, 그 절대적인 관계 속에서도 때론 미움이, 고통이, 원망이 그리고 죄책감이 자라나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로 남기도 하죠. 그 상처 때문에 이유도 모르는 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많고요. 이번 책은 성인인 우리가 상처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했어요. 

자식은 부모에게 얼마나 영향을 받는 존재인가요. 


부모는 아이가 최소 20세가 될 때까지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면서 아이의 마음이 크도록 도와야 해요.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만 성숙한 부모만이 성숙한 사랑을 줄 수 있어요. 미성숙한 부모가 미성숙하게 사랑을 표현하면 그것이 자녀에겐 상처가 됩니다. 아이를 공격하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일은 미성숙한 방식의 사랑이에요. 

이미 상처를 받고 자라난 성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어떤 유형의 상처에 민감하다면 왜 그런지 알아야 해요. 부정하고 싶었던 수많은 내면과 마주하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부모가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부모가 어떤 사람이기에 상처를 줬는지 알아야 하죠.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다는 걸 파악하고 받아들여야 해요. 그것이 상처에 덜 흔들리는 방법입니다. 



책 제목인 ‘화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그동안 저를 찾아와 “저는 너무 못났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면서 눈물짓던 분들에게 이 말씀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세상 사람들은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는데,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치죠. 노력하는 당신의 자세는 높이 평가하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요. 당신 모습 그대로 참 좋아요. 우리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나를 알아야 나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상처의 시작은 나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것을 기억하세요. 그것을 알고 상처 받은 당신 자신과 진정으로 ‘화해’하길 바랍니다”라고요. 그 마음을 담은 제목이에요. 

블로그를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2주에 한 번씩 글을 쓰고 있어요. 개인 상담을 해드리지는 못하지만 질문 글은 모두 읽어봐요. 그리고 이왕이면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글을 쓰죠. 강연장에 저를 찾아와서 눈 반짝이며 고민을 말해주는 엄마들에게 감사해요. 제가 뭐라고 이렇게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드러내주실까, 나를 신뢰해주는 만큼 정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이분들의 용기가 너무 고마워서 어떨 때는 울컥해요. 상처를 바라보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저는 많은 분들이 용기를 갖길 바랍니다. 용기를 가지고, 저주하고 거부하고 싶었던 자신을 바라봐야, 상처 많은 나와 화해할 수 있거든요.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미숙아로 태어나셨다고 들었어요.

열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8개월 만에 1.9kg으로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저를 처음 봤을 때 검지만 한 크기의 허벅지를 가진 애가 악을 쓰고 울더래요. 부모님은 얘가 살지 못 살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셨는데, 세 살 때 한글 떼고 말도 엄청 빠르고 하니까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도 잔병치레가 많았고, 몸집도 작았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도 2학년생만 한 체구였죠. 하도 병원에 자주 다니니까 선생님이 어머니께 “어머니 잘 좀 먹이세요” 하셨는데 어머니가 어느 날 “선생님 얘가 병원이 단골인 걸 보니 의사가 되려나 봐요” 하셔서 제가 의기양양해했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는 친구분들에게 “죽을 뻔한 아이인데 말도 빠르고 달리기도 잘한다”고 하셔서 저를 자랑스러워하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격려를 많이 받고 자랐다니 평탄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데요. 

그런 편이죠. 하지만 집이 있는 고지대에서 유치원까지 30분 정도를 걸어 다니면서 세상을 알았어요. 그때 많은 아이들이 자가용을 타고 보모나 차량 기사, 예쁘게 차려입은 엄마와 같이 오더라고요. 여자애들은 예쁜 헤어핀으로 머리를 묶고 다니는데, 저는 엄마가 이발소에서 머리를 짧게 깎아주셨거든요. 그때 애들이 놀면서 저를 끼워주지 않았어요. 유치원 놀이터에 플라스틱 말이 4개가 있었는데 한번은 호텔 운영하는 집의 아이가 다리를 쩍 벌리고 말 4개를 다 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나 좀 타자” 하니까 안 된대요. 그때 그애 할머니가 나타나서 “넌 누구니?” 하고 혼내셔서 못 탔죠. 그 뒤로 선생님한테 30분 정도 일찍 와도 되는지 여쭈니까 괜찮다고 하셔서 다음 날부터 30분씩 일찍 와서 말 타고 등원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제 연필은 계속 부러지는데, 제 짝의 연필은 부러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네 건 왜 안 부러져?” 하니까 “넌 안 좋은 거 써서 부러지는 거야. 내 연필은 아버지가 미국 출장 갔다가 사다 주신 거야” 하더라고요. 아버지께 그 얘기를 했더니 남대문 시장에 저를 데리고 가셨어요. 거기서 허쉬초콜릿 한 판, 연필 2다스, 지우개를 사서 돌아왔죠. 

어쩌면 상처가 됐을 수도 있는 일인데,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문제를 잘 해결한 것 같아요.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때는 심각했어요(웃음).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월례고사를 보고 1등을 해서 매달 상을 받았는데요. 한번은 부잣집 남자아이인 A의 어머니가 “네가 오은영이니?” 하면서 머리를 쥐어박고 가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A는 아버지를 닮아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하시는 거예요. 순간 ‘선생님이 이걸 어떻게 알지?’ 싶었죠. 이 선생님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실까 싶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일들이 알게 모르게 인생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다음 날 위암 수술을 받으러 가야 한다면서 “너하고 오빠가 대학에서 공부할 정도의 돈은 있으니까 동요하지 말고 열심히 할 일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방에 돌아와서 통곡하며 기도했어요. ‘하느님. 이거 하나만 부탁을 합시다. 나한테 너무 소중한 우리 아버지 건강을 돌봐주세요. 그러면 나는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되어서 마음과 몸이 아픈 병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어요’라고요. 아버지가 89세신데 지금도 건강하세요. 약속을 했으니까 지켜야죠. 사람이 신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그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인간을 돕겠다’고 다짐했어요. 

스스로와 화해한 경험도 있나요. 

2008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동문 할인을 해준다기에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담낭암 진단을 받았어요. 선배한테 연락해서 진료를 봤더니 담낭암이면 6개월 정도밖에 못 산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1박 2일 동안 남편하고 통장, 대출, 보험 이런 여러 가지를 다 정리했죠. 부모님은 놀라실 거니까 상황을 말씀드리지 않고 친정 오빠에게만 살짝 이야기했고요. 수술을 받던 날도 진료를 했어요. 저를 만나기 위해 월차를 내고 오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진료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진료를 보다가 수술실로 갔는데 대장암도 발견됐다는 거예요. “담낭에서 대장으로 전이되면 3개월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굉장히 차분해지더군요. 

그러면서 ‘우리 남편은 너무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죽어도 잘 살아갈 거야, 내가 그래도 우리 부모님께는 최선을 다했어’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이던 아들 얼굴이 커다란 쟁반처럼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논문 하나 더 쓰겠다고 아등바등하느라 아이와 놀아주지 못한 게 너무 후회되더라고요. 다행히 암 초기여서 치료를 받고 지금껏 잘 살고 있어요. 그때의 경험으로 제 자신과 화해한 것 같아요. 그때 기도했어요. ‘아이에게 엄마 역할을 더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세요. 엄마들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게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약속 지키며 사는 거예요(웃음). 

그 이후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엄마가 된 탓에 엄마보다 의사 오은영, 교수 오은영의 비중이 컸죠. 하지만 그 일 이후로는 아이가 귀하다는 걸 느꼈고, 아이한테 진심으로 대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고 했죠. 아들은 지금 미국 대학에서 해양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수학 1등급을 받기 어려워했던 애가 미국에서는 1학기 만에 실력을 인정받아서 조교가 됐죠(웃음). 

인생에서 얻은 성찰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거군요. 

어떤 분들은 강연을 들으시고 감사하다면서 제 손에 사탕을 꼭 쥐여주고 가세요. 책을 쓰는 게 그런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게 필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나를 알아야 나를 다룰 수 있거든요. 아픈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존경스럽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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