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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ceo #business

콘돔부터 프랑스 귀족 문화까지 다 팔아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실험

EDITOR 김명희 기자

2018. 08. 09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야심작 삐에로쑈핑과 레스케이프 호텔이 베일을 벗었다. 일관되게 경험과 재미를 팔겠다는 그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혼돈의 카오스야. 정체성을 모르겠어.”
 
“비싼 다이소 같아.” 

“없는 게 없어. 근데 돈키호테랑 똑같은데.” 

“여기 동전 파스도 있네? 이제 일본 안 가도 될 것 같아.” 

“우리처럼 구경만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쇼핑몰 문을 나서는 사람들이 각양각색 품평을 내놓는 이곳은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 지하에 새로 문을 연 삐에로쑈핑. 스타필드 코엑스몰은 하루 방문객만 평균 6만 명에 달하는 곳이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는 이곳에서도 가장 노른자위 부지에 지하 1· 2층 2513㎡(7백60평) 규모로,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6월 28일 삐에로쑈핑을 오픈했다. 



정 부회장의 돈키호테 인증샷

쇼핑의 정석은 내게 필요한 좋은 물건을 싸고 편하게 사는 것인데, 삐에로쑈핑은 이것과는 아예 출발점이 다르다. 천장까지 빼곡하고 촘촘하게 쌓인 4만여 종의 물건 가운데 나한테 필요한 물건만 꼭 집어 들고 나오는 건 효율성 측면에서 꽝이다. 화장품 매대 옆에 안마기가 있고, 과자 옆에 성인용품이 있고, 그 옆에 가전이 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구석구석을 살필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 이곳의 콘셉트다. 심지어 직원들도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쇼핑 편의를 포기하는 대신 발품을 팔아가며 재미를 찾는다.

계산대 옆쪽에는 보테가베네타, 프라다, 발렉스트라, 골든구스 같은 명품 브랜드 가방과 신발을 판매하는 코너가 있다. 유리장 안에 진열된 철 지난 명품들이 뿜어내는 독특한 오라가 이곳이 지향하는 B급 감성 콘셉트와 제법 잘 어울린다. 이들 명품들은 병행 수입된 제품들로 정상가 대비 최대 50%까지 저렴하다. 

삐에로쑈핑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성인용품 코너다. 19금 성인 인증 존이라는 문구가 쓰인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콘돔, 자위 기구, SM 기구 등 성인용품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기자가 찾았을 땐 의외로 커플 고객들이 많았는데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을 위해 19금 마스터가 직접 제품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지문 인식을 통해 성인 인증을 해야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삐에로쑈핑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 여행을 가면 꼭 들른다는 잡화점 돈키호테를 연상케 한다. 신세계 측도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인스타그램에 ‘시장조사 중’이라는 글과 돈키호테를 방문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1989년 도쿄에 1호 매장을 오픈한 돈키호테는 덤핑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전략으로 불황 중에도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다. 2017년 말 현재 매장 수는 3백68개, 연매출은 8조4천억원 상당이다. 

한동안 점포 수를 급속히 늘려가며 승승장구하던 대형 마트는 최근 성장력 둔화로 위기에 직면했다. 점포 수가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온라인에 비해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마트도 덕이점을 매각하고 부평점과 시지점을 폐점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삐에로쑈핑은 위기에 처한 유통 사업 부문의 활로를 찾기 위한 히든카드인 셈이다. 이마트 측은 개점 11일째를 맞은 7월 9일 삐에로쑈핑의 누적 방문객이 11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일단 ‘오픈발’은 통한 셈이다. 하지만 구경 행렬이 계속 이어질 것인지, 또 그것이 매출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Fun(재미) & Crazy(미친 가격)’를 표방하나 재미를 세뇌받는 분위기고, 가격도 기대만큼 크레이지하지 않다. 유통 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일부 기획 상품은 저렴한 것도 있지만 깐깐한 소비자들 사이에선 벌써 마트나 온라인 몰에 비해 가격 메리트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마트는 올해 안에 삐에로쑈핑 2호점과 3호점을 서울 동대문 두타몰과 강남구 논현동 인근에 낼 예정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발탁한 덕후, 호텔 총지배인 되다

레스케이프호텔 김범수 총지배인(왼쪽)

레스케이프호텔 김범수 총지배인(왼쪽)

이마트가 지분을 98% 보유한 신세계조선호텔은 7월 중순 서울 명동에 파리지앵의 감성과 귀족 문화를 콘셉트로 한 레스케이프 호텔을 오픈했다. 프랑스 파리의 명물 르브리스톨 호텔을 벤치마킹 한듯 한 이 호텔은 2백4개의 객실과 홍콩 모트 32의 메뉴를 선보이는 중식당, 뉴욕 미슐랭 가이드 2스타 셰프와 협업한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커피 스테이션, 바, 피트니스, 스파, 라이브러리, 이벤트 룸 등을 갖추고 있다. 

레스케이프 호텔은 재미와 경험을 판다는 점에서 삐에로쑈핑과 일맥상통한다. 무엇보다 맛집 덕후로, 취미가 곧 직업이 된 김범수 총지배인의 히스토리가 이를 말해준다. 2004년부터 네이버 미식 블로그 ‘팻투바하(Pat2bach)’를 운영하며 국내 외의 레스토랑을 직접 둘러보고 후기를 소개하던 그는 미식가로 알려진 정 부회장의 눈에 띄어 2011년 신세계에 스카우트됐다. 데블스도어, 파미에스테이션 등 정 부회장이 주도해서 론칭한 식음료 공간의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의 해외 출장에 종종 동행하며 그의 SNS 사진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 

관광업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데다 재벌 기업들이 너도나도 호텔 사업에 뛰어들어 레드오션이 된 상태에서 레스케이프와 같은 콘셉트의 호텔이 수익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다. 호텔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고급 호텔은 재미나 콘셉트보다 서비스의 수준을 높여 고객들의 로열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세계의 도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호텔업계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레스케이프호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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