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4

2017.04.19

커버스토리 | 입시 '헬조선' 장미 대선이 바꾸나

대한민국 미래 교육이 5월에 결정된다

장미 대선, 수능 개편안 발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4-17 10: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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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만큼 우리 국민의 관심을 끄는 주제도 드물다. 특히 대학입시제도는 이해 당사자인 학생, 학부모, 교사를 넘어선 국가적 관심사다. 코앞으로 다가온 ‘장미 대선’에서 각 후보의 교육 관련 공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번 대선의 유력 후보들은 하나같이 현재 우리나라 교육을 ‘심각한 문제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3월 22일 교육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교육이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교육을 통해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도록 교육이라는 희망의 사다리를 다시 놓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4월 7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해 “지금의 교육부는 ‘교육통제부’로 우리나라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안 후보는 교육부 폐지와 학제 개편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도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저마다 ‘교육대통령’을 자임하는 이들 가운데 누가 집권하든 현행 교육정책에 대변혁이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차기 정부 교육정책, 대세는 수시 확대


    게다가 대선이 있는 5월엔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2015년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문·이과 융합교육 △체험·과정 중심 교육 △토론·참여수업 등을 골자로 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이 과정 적용 대상인 현 중학교 3학년생은 고교에 진학하면 문·이과 구분 없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등 7과목을 필수로 배운 뒤 2021학년도 수능을 치른다.



    교육부는 5월까지 이에 맞춘 ‘2021 수능 개편안’을 마련하고 공청회 등을 거쳐 7월 중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대입제도의 근간인 수능이 대수술을 앞둔 상태에서 교육의 큰 방향을 결정할 대선까지 맞물리며 ‘교육 어젠다’는 19대 대선의 향방을 가를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현재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는 입시정책의 큰 방향을 밝힌 반면, 도지사직 사퇴 문제로 상대적으로 늦게 선거전에 뛰어든 홍준표 후보는 관련 공약을 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놓고 보면 네 후보의 입시 관련 의견은 대동소이하다. 대입제도 간소화, 대입 선발 과정에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영향력 확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폐지 또는 축소 등에 대체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현재 입시 공약을 밝힌 유력 대선후보 가운데 수능 성적을 대학 신입생 선발의 주요 전형 요소로 활용하자고 주장하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문 후보 측은 “대입에서 점진적으로 수능 비중을 줄여나갈 것”이라 했고, 안 후보는 장기적으로 수능을 자격고사화해 “고교를 졸업하면 자격고사인 수능을 치르고 학생부 제출과 면접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유 후보도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려면 학생부가 입시의 중심이 돼야 한다”며 수능 확대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현행 대학입시는 수능 성적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모집과 학생부, 논술, 실기 등 다른 전형요소를 평가 도구로 활용하는 수시모집으로 크게 나뉜다. 입시전형에서 학생부의 영향력이 커지는 건 현재로서는 수시 확대를 의미한다. 3월 말까지만 해도 차기 정부 출범 후 수시가 힘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각 정당 예비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 한목소리로 ‘수시 축소, 정시 확대’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총선 당시 이를 당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화제를 모았고, 문 후보 또한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교육 공약을 발표하며 “대학입시에서 수시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문재인 캠프에서 “학생부 전형을 정시에 치르게 하겠다는 취지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지금은 모든 후보가 ‘학생부 중심 대입’을 공언하는 것으로 정리된 상태다. 이는 현행 대입제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진짜 돈 드는 전형은 수능?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자료에 따르면 2018학년도 대학 수시 비중은 73.7%에 달한다. 수시는 다시 내신을 주로 보는 학생부교과전형(40%)과 학업성적뿐 아니라 동아리·봉사활동 등 비교과활동까지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23.6%) 등으로 나뉘는데, 현재 서울 주요 대학 입시의 중심축은 학종 쪽에 놓여 있다.

    서울대가 2018학년도 전체 신입생의 78.5%를 학종을 통해 선발하기로 했고, 고려대 역시 2018학년도부터 학종 선발 인원을 62%로 전년(30.3%)에 비해 2배 이상 늘린다고 밝힌 상태다. 서강대(55%), 동국대(47%), 성균관대(46%), 경희대(45%) 등도 신입생 2명 중 1명을 학종으로 뽑는다.

    그렇다면 왜 일부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정시 확대를 주장했고, 문·안 두 유력 주자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을까. 그 배경에는 현재 수시의 ‘대세’인 학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있다. 황희돈 숙명여대 입학사정관에 따르면 학종의 전신은 2008학년도 10개 대학에 시범적으로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다.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이 수능, 내신 등 학생의 학업성적뿐 아니라 비교과적 요소와 자기소개서(자소서) 등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해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대학은 2009학년도 41개, 2010학년도 90개, 2011학년도 118개 등으로 빠르게 늘었다. 2012학년도 이후에는 전국 거의 모든 대학이 운영하는 일반 전형 방식이 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서울 강남 등 이른바 ‘사교육 특구’를 중심으로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스펙 컨설팅이 유행하고, 이를 전담하는 고액 사교육업체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입학사정관제=돈 전형’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높아졌다. 학종은 입학사정관제의 정성평가 기조를 유지하되 사교육의 개입은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2015학년도에 새로 도입된 것이다.

    두 전형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른바 ‘외부활동 스펙’을 기재할 수 있느냐 여부다. 현재 학종은 각종 인증시험 결과나 교외 대회 수상 경력 등의 기재를 금하고 있다. 하지만 학종이 ‘가진 자에게 유리한 입시제도’라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하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전국 고교생(747명)과 학부모(151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전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학생(40%), 학부모(51%) 모두 가장 많은 수가 학종을 꼽았다.

    수능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11.3%, 8.6%에 불과했다. 교사들 역시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김영주 한성여고 교사가 전국 교사 8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3.1%는 ‘학종이 수능에 비해 대도시지역(특별·광역시) 학생에게 유리하다’고 봤다. 학생의 거주지, 달리 말하면 정보력과 부모의 경제력 등이 학종 입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선거전에서 “공정한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수능 중심의 입시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남경필 경기도지사 역시 “복잡한 대입 전형이 컨설팅 사교육을 유발한다. 단순화·표준화된 전형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배경이 여기 있다.

    그런데 학종 도입 3년 차를 맞아 여러 대학과 고교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는 이런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다. 강기수 동아대 교수가 전국 54개 대학의 2015~2016학년도 입학생을 전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학종으로 대학에 합격한 신입생 중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자~소득 4분위) 비율은 31.3%로, 수능(23.1%)이나 논술(20.2%) 전형에 비해 높았다. 일반고와 읍·면지역 출신 학생의 진학률이 가장 높은 전형도 학종으로 나타났다. 학종 전형 신입생 중 읍·면, 기타 지역 출신은 10.6%였지만 수능 전형에서는 그 절반인 5.1%에 불과했다.



    학종 이후 신입생 다양성 증가

    김현 경희대 교수가 서울지역 10개 사립대(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의 2015~2017학년도 입시 결과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이들 대학의 2017학년도 신입생 중 일반고 출신 합격자는 학종(63.5%)이 수능(61.6%)보다 많았다. 반면 자사고 출신 합격자는 수능 위주 전형 출신(16.9%)이 학종(8.3%)의 2배에 달했다. 김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학생부 위주 대입 전형 방식이 고교 다양성과 지역 균형성을 높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대상에서 빠진 서울대의 성낙인 총장도 3월 3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같은 의견을 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수시보다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정치권에 있는 분들이 옛날 정시 입학 세대라 정시를 옹호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변화된 입시 상황을 보면 지금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발굴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소외계층과 소외지역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데도 수시가 적합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국 고교의 교장 추천을 받아 학생을 선발하는 ‘지역균형’(지균) 선발을 진행해온 서울대는 2017학년도부터 그동안 지균 전형을 실시하지 않던 자율전공과 음대, 미대에까지 이를 확대했다. 다양한 지역·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학생을 더 많이 선발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1986학년도 입시에서는 서울대에 가장 많이 학생을 보낸 고교 5개에 경기고(75명), 상문고(54명), 휘문고(52명), 서울고(51명) 등 서울 강남·서초구 소재 고교 4개가 이름을 올렸다. 서울대 입학의 중심이 특수목적고교(특목고), 자사고가 된 2007학년도 서울대 입학 실적 1~3위는 서울예술고(88명), 서울과학고(72명), 대원외고(64명)가 차지했다. 그러나 지균 등 수시가 확대되면서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서울대 합격생’이 나오고 있다.

    서울 강서지역 한 인문계 고교의 진학담당 교사는 “지난해 우리 학교에서 정시로 진학한 학생 가운데 가장 좋은 학교가 숭실대였다. 그런데 수시를 통해서는 서울대, 고려대 합격생도 나왔다. 그런 결과를 보면서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면 우리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학교 환경도 달라졌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성권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회장(대진고 교사)은 “학종 등 수시모집은 내신과 교사가 기록한 학생부를 입학 사정의 주요 자료로 삼기 때문에 사교육이 영향을 미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한 문제 차이로 입시 당락이 바뀌는 수능은 여전히 학원 의존도가 높을 수 있다”고 밝혔다. 

    고교 윤리교사 출신인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역시 “협업능력, 의사소통능력 등 미래사회의 핵심 역량으로 여겨지는 여러 요소 가운데 객관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게 한 가지라도 있나”라며 “수능 중심의 입시제도는 소모적 점수 경쟁과 무의미한 문제풀이의 반복을 가져올 뿐 학생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3월 23일 ‘제19대 대선 교육공약 요구과제’를 발표하며 ‘2021학년 수능부터 △출제 과목을 공통과목에 한정 △평가방식을 절대평가로 전환 △수능 성적은 대입 자격 기준으로 활용’ 을 요구하는 등 교육계는 전반적으로 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줄일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관건은 여전히 남아 있는 학종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이에 대해 “현재 대학 입시에 한창 관심을 기울이는 40, 50대 학부모는 대부분 ‘학력고사(1982~93년 시행) 세대’다. 이들은 전두환 정부의 강력한 과외 금지 조치에 따라 학력고사 점수와 내신만으로 대학에 갔다. 시험 문제 1개 차이로 입시 당락이 갈리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니 현행 입시를 복잡하기만 하고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정부가 사교육을 전면 금지할 수 없는 현 사회에서 수능이 결코 공정한 입시제도가 될 수 없음을 그들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교육계를 중심으로 ‘수능 중심 전형의 실체’를 알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다. 이에 따라 각종 단체가 주최하는 관련 심포지엄도 증가 추세다.



    학교별 격차 줄이려는 노력 필요

    전형 과정에서 학생의 동아리·봉사활동 등 비교과활동을 많이 보는 학종의 경우 학생 개인의 노력보다 교내 프로그램이나 담당교사의 헌신성에 따라 입시 결과가 달라질 여지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서울 마포구 한 고교의 국어교사는 “학종 입시에서는 교과 담당교사가 학생을 관찰해 수업 태도와 성취 수준, 특이사항 등을 500자 이내로 학생부에 기록하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이 매우 중요한 평가 항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한 학급에 30명 이상씩 8개 학급의 수업을 담당하는 상황에서 모든 학생의 특징을 파악해 세세하게 적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교육부가 배포한 ‘2017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의 세특 입력 예시를 보면 해당 학생의 수업 내 활동과 그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 교사의 평가까지 담고 있다.

    그러나 수업과 각종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교사가 모든 학생에게 이만큼의 성실성을 보이는 건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이 때문에 명문대에 학종 전형으로 진학할 가능성이 높은 상위권 학생의 학생부만 학교 차원에서 특별 관리하고, 일반 학생의 경우 상대적으로 기재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교총의 도움을 받아 고교 교사(747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학생의 성적에 따라 학교(교사)가 학생부 작성에 기울이는 시간과 노력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교사의 81.9%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학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면 먼저 이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각 대학이 학종 관리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교총에 따르면 지난해 2월 현재 대학입학사정관 중 전임은 19.9%에 불과하다. 2016학년도 대입에서 전임사정관 1명이 담당한 학생 수가 서울대 694명, 고려대 673명, 동국대 634명에 이른다. 평가의 엄밀성에 의심이 생길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조만기 경기 판곡고 교사는 “현행 학종이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학종을 통해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늘어나고, 교내 프로그램이 다양화되는 등 공교육이 정상화된 건 분명하다”며 “대선과 수능 개편을 앞두고 학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이 제도를 흔들 것이 아니라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고쳐나가면서 더 좋게 만들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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