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4

2017.04.19

스폐셜

그들만의 시험, 거품 낀 점수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대민 접촉 없는 곳도 일괄 적용 … 효과 대비 예산 낭비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4-17 15: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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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대(對)국민 서비스는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일까. 기획재정부(기재부)는 3월 29일 공기업 24개, 준정부기관 84개, 기타 공공기관 115개 등 총 22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최우수인 S등급을 시작으로 A, B, C등급 순으로 매겨졌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우체국물류지원단, 한국도로공사 등 23개 기관이 S등급을 받았고 공무원연금공단, 한국석유공사 등 18개 공공기관은 최하인 C(미흡)등급을 받았다(표 참조).



    ‘과대평가’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대국민 서비스 품질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는 1999년 공기업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됐다. 그러다 2004년 준정부기관으로 확대된 데 이어 2005년에는 기타 공공기관으로까지 조사 대상이 넓어졌다. 최근 조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11만7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나 e메일, 현장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의 명확한 평가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 데다, 조사 결과가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매번 제기돼왔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한 관계자는 “조사에 응하는 사람들의 표본을 추출하는 과정부터 투명하지 않다. 보통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이들 가운데 기관에 우호적인 사람을 중심으로 연락처를 추출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심지어 국민이 체감하는 것과 정반대 결과가 발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하인 C등급을 받은 기관은 총 18개다.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에서는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공무원연금공단,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연구재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석유공사가 포함됐다. 기타 공공기관에서는 전략물자관리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한국보육진흥원, 국제원산지정보원, 한국공정거래조정원,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강원랜드가 이에 속했다.



    이들 공공기관이 어떤 이유로 C등급을 받았는지는 기재부를 비롯해 해당 기관 모두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잘한 기관을 칭찬한다는 취지가 강한 만큼 미흡한 평가를 받은 기관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다만, 미흡한 평가를 받은 18개 기관의 경우 주무부처에 결과를 통보해 서비스 개선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고, 컨설팅 교육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당수 공공기관 관계자는 고객만족도 조사에 ‘정치적 요소’가 작용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직접 연관돼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성각 전 원장 임명에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최순실이 영향력을 행사했고, 송 전 원장은 이들의 사주를 받아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인 ‘포레카’ 지분을 강제로 빼앗으려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1월 예산 편성에서도 당초 계획보다 1400억 원가량이 삭감된 3175억 원을 배정받았다.

    S등급을 받은 23개 공공기관 가운데 공기업은 한국가스공사, 한국관광공사, 한국마사회, 대한석탄공사,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해양환경관리공단,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등이다. 준정부기관 중에서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우체국물류지원단,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석유관리원, 국립공원관리공단,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도로교통공단이 S등급을 받았다. 기타 공공기관 중에서는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예탁결제원, 코레일네트웍스, 서울대학교치과병원, 전남대학교병원, 코레일유통이 S등급에 포함됐다.  



    고객만족도 조사 경영평가에 연동

    S등급을 받은 기관은 ‘경영평가’에서 가산점 2점을 받는다. 300개 넘는 공공기관이 0.1점 차이로 경영평가 순위가 뒤바뀐다는 점을 고려하면 2점은 결코 적은 점수가 아니다. 더욱이 경영평가 등급은 해당 기관의 성과급 비율과 연동된다. 공기업이 공익성은 뒤로한 채 단기 성과 부풀리기에 전념한다는 비판을 받는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고객만족도 조사는 공공기관 처지에서는 홍보 수단에 불과하다. 해마다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우수 등급을 받은 기관은 너나없이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기 바쁘다. 반대로 하위 등급을 받은 기관은 조용히 숨죽이고 있을 뿐, 어떻게 서비스를 개선해나갈지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국민의 자료 공개 요청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는 공공기관이 과연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대로 대국민 서비스를 이행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당초 공공기관의 고객만족도 조사는 소비자를 대면하는 공기업에서만 활용됐다. 1999년부터 공기업을 일반 기업과 같은 ‘국가고객만족지수(NCSI)’를 통해 만족도를 평가해온 것. 그러나 2007년부터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이 시행되면서 공기업 외 다른 공공기관도 고객만족도 조사를 받게 됐다.

    공공기관운영법 제13조에는 국민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은 연 1회 이상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에 다양한 공공기관의 만족도를 평가하고자 새 지표인 ‘공공기관 고객만족지수(PCSI)’를 개발했다.

    PCSI로 전환한 후 공공기관의 고객만족도 점수가 대폭 올랐다. NCSI로 측정하던 공기업의 고객만족도는 1999년 59.7점에서 시작해 지속적으로 올라 2006년 83.6점에 도달했다. 2007년 PCSI로 평가지표를 바꾼 뒤에는 평균 89.2점으로 상승했다. 2009년 평균 90.6점을 돌파한 이후 현재까지 평균 90점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두 조사지표는 모두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점수를 측정한다. 최고점은 100점이다.

    과거에는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고자 부정을 저지르는 공공기관도 일부 있었다. 2006년에는 한국도로공사가 직원 200여 명을 고객으로 위장시킨 뒤 고객만족도 설문조사에 참여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2012년에는 일부 공공기관이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를 조작하려고 임직원의 친인척을 고객으로 위장시키거나 평가를 맡은 평가위원들에게 선물을 들고 찾아가는 등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졌다.
     
    기재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4년 공공기관이 고객만족도 평가위원 선정에 참여하던 관행을 없애고 부정행위가 드러나면 벌점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기관의 고객만족도 점수는 높다. 기재부 공시에 따르면 2015년 공기업의 PCSI는 평균 92.4점, 준정부기관과 기타 공공기관은 각각 86.6점, 85.8점을 기록했다.


    조사 설계 자체에 문제

    이는 2014년(공기업 평균 94.4점, 준정부기관 89.9점, 기타 공공기관 86.3점)에 비해 소폭 낮아진 것이지만 일반 기업의 NCSI가 평균 70~80점대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점수다. 지난해 호텔 분야 NCSI 최고 점수를 기록한 호텔신라도 86점에 머물렀다.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PCSI와 NCSI가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항목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10점 이상 차이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국민체감도 조사 점수와 PCSI의 차이가 큰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공기관 국민체감도 조사란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와 국민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만족도의 차이를 줄이고자 국민이 생각하는 공공기관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 이행 정도를 설문조사로 평가한 수치다. 공공기관 대부분이 PCSI에서 80점 이상을 기록한 반면, 공공기관 국민체감도 조사 점수는 평균 50점대에 불과하다.

    이처럼 두 지표의 점수 차가 큰 현상에 대해 한 공기업 관계자는 “이는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평가가 칭찬일색인 반면, 정작 공공기관의 주요 고객인 국민이 갖는 공공기관에 대한 인식은 나쁜 격이다. 공공기관 내부에서도 PCSI는 기재부 평가자료의 일부일 뿐, 기관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나 신뢰도와는 관련 없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단순 비교하면 점수 차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PCSI와 공공기관 국민체감도 조사는 목적, 조사 내용 등이 각각 다르다. 따라서 점수 차가 다소 난다고 PCSI가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매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 참여한다는 한 대학교수는 PCSI 설문조사 항목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조사기관에서) 전화로 10개 남짓한 질문을 해오거나 직접 찾아와 설문지를 주는 식으로 조사한다. 그런데 평가 항목이 매우 단순하고 형식적이다. 일반 설문조사의 5점 척도(매우 그렇다-그렇다-보통이다-아니다-매우 아니다) 대신, ‘예’ ‘아니요’ 등 단답형으로 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해당 공공기관에 악의적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웬만하면 높은 점수를 주도록 유도하는 질문이 많다. 따라서 일반인과 접점이 모호한 기관은 해당 기관이 가진 고유 이미지 때문에 응답자가 엉뚱한 대답을 할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PCSI 조사에 필요한 모집단 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기업과 달리 공공기관은 법인고객이 많은 곳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 데 유리하다는 것. 법인고객은 개인고객과 달리 공공기관과 수주계약을 맺거나 지원 사업에 응모하는 등 계약 관계를 맺고 있어 사실상 ‘을(乙)’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도 법인고객은 개인고객에 비해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향이 있다.


    “순기능보다 역기능 크다”

    실제 2015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법인고객의 비중이 높은 산업진흥·시설기반서비스 관리 공공기관(IBK기업은행, 한국도로공사 등)은 83개 기관 가운데 14개(17%)가 S등급을 받은 반면, 개인고객의 비중이 높은 국민생활증진·안전 관련 기관(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은 107개 가운데 5개(약 5%)만 S등급을 받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고객만족도 점수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많아 2014년부터는 기관 성격별 상대평가 방식을 도입했다. 각 기관이 받은 절대 등급이 높더라도 기관 성격별 순위가 함께 산출되는 만큼 기관 간 경쟁을 활성화하고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의 신뢰도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문 문항이나 모집단 선정에 관한 문제는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매년 조사 방법의 기술적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수영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팀장은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는 공기업 경영에 불필요한 장치”라고 비판한다. 이 팀장은 “국립중앙의료원처럼 고객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기관에만 경영평가지표의 하나로 고객만족도 조사를 넣으면 될 일이다. 300여 개에 달하는 모든 공공기관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국민에게 혼란만 안겨준다는 점에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크다”고 주장했다.


    정부, 공공기관 컨설팅 교육에 헛돈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최하 등급을 받은 공공기관은 고객만족도 향상과 관련해 컨설팅 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만 관련 교육을 받는 기관들은 “컨설팅 교육의 효과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 같은 특수성 때문에 기업 위주의 컨설팅 교육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컨설팅 교육을 두고 ‘예산 낭비’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C등급을 받은 공공기관에게 개선 계획을 제출케 하는 한편, 관련 컨설팅 교육을 이수하라고 요구한다. 이에 낮은 등급을 받은 피검기관은 보통 고객만족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조사 주관사인 한국생산성본부, 한국능률협회컨설팅, ㈜기술과가치 컨설팅, 리서치랩 등 4개 업체에 고객만족(Customer Service  ·  CS) 교육을 위탁해 실시한다. 

    고객만족도 점수가 낮으니 관련 교육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해당 기관들에서는 교육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공기업도 엄연히 기업이라지만 일반 사기업과는 사업 목적과 방향성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공기업에 알맞은 고객 응대 교육이 필요한데, 컨설팅업체의 CS 교육은 일선 기업에서나 통용되는 내용을 다루다 보니 아무리 열심히 교육을 들어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CS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예산 낭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재부는 조사 주관사와 계약을 맺을 때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에서 미흡(C) 등급을 받은 기관에 대한 CS 교육 비용도 포함시킨다. 따라서 조사 후 CS 교육 과정을 생략하면 고객만족도 조사에 드는 전체 비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고객만족도 조사는 공공기관의 고객만족도를 높이겠다는 것보다 평가 자체에 목적이 있다. 따라서 미흡 등급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사 주관사의 컨설팅 교육 외 기재부 차원의 사후교육 등 후속조치는 따로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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