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4

2017.04.19

특집| 첩첩산중 안철수 대세론

시동 걸린 검증 공세… 정체성 넘어 가족으로

모호한 정책적 ‘투트랙’은 중도층 확장 전략?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7-04-14 16: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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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진영의 정치평론가 진병춘 씨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급등한 것에 대해 ‘판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1987년 이후 고착된 새누리-민주당의 보수 양당체제를 신뢰하지 못한 이들이 안 후보가 좋아서, 혹은 대안이 없어서 그를 지지한다는 얘기다.

    ‘(불)판을 갈자’는 표현은 과거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TV토론회에서 처음 사용해 호응을 얻었다. 어찌 보면 적극적 정치개혁의 염원을 담았지만,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도 깔린 이중적 표현인 셈이다. 5년의 시간 차를 두고 반복되고 있는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자 기존 정치인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검증 프레임’이 안 후보에게만큼은 비교적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의 경쟁력 자체가 기존 정치판과 거리를 두었던 ‘신선함’인 덕분이다.



    검증의 핵심은 ‘일관성 부재’ ‘모호성’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를 대상으로 한 ‘네거티브 공방’은 예전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두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야권의 유력 주자로 거론되며 비교적 활발하게 언론의 검증 대상에 올랐기 때문. 그런데 대선을 완주한 문 후보와 비교하면 단일화 과정에서 일보 후퇴했던 안 후보에 대한 검증은 개운치 못한 맛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꺼진 불처럼 보이던 안 후보에 대한 검증이 대선을 3주 앞두고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본격화되고 있다. 후보 자신을 포함한 가까운 친인척의 처세와 관련한 의혹이 고전적인 네거티브 영역이라면, 안 후보에게는 기존 정치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한 가지 영역이 더 추가된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안 후보를 향한 주요 비판의 칼날은 그의 오락가락하는 정책적 스탠스를 겨눈 것이 큰 특징이다. 한마디로 “뚜렷한 일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정책적 일관성의 부재는 4월 11일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 억제’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는 유치원 과정에 대해서는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은 자제하고, 지금 현재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독립운영 보장하고….”(4월 11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행사) 최근 정치권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유아교육 부문에서 국가의 책임을 확대하는 것이 일반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다.

    국민의당 역시 지난달 ‘학제개편안’을 앞세운 대선 교육공약에서 “만 3세부터 의무교육을 시작해 유치원 2년 과정도 국가가 책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돼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부모 대부분이 경제적 이유로 선호하는 단설(혹은 병설)유치원 확대 대신 사립유치원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언급했다. 논란이 커지자 안철수 캠프 측도 “단설유치원 신설을 억제한다는 것은 병설유치원을 늘리겠다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젊은 부모들의 표심이 크게 흔들렸다.



    ‘투트랙 전략’은 중도보수의 특권?

    첨예한 안보 이슈로 떠오른 ‘사드 배치’ 논란도 이와 흡사하다. 지난해 7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이 시작되자마자 국민의당은 가장 먼저 “남북의 6·15 정신을 계승한 정당으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주요 정당 가운데 최초로 ‘사드 배치 불가’를 당론으로 택하는 초강수를 선보였다. 당론으로만 본다면 국민의당은 안보 분야에서 ‘진보 야당’의 길을 택한 것이다. 안 후보 역시 초기부터 이 당론에 적극 동조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안 후보의 태도는 ‘상황변화론’을 거쳐 ‘조건부 수용론’을 언급하더니 최근에는 ‘적극 찬성론’으로 뒤바뀌는 반전을 선보였다. 박지원 당대표는 그간 ‘북한의 추가 핵실험 조짐’과 ‘트럼프 집권’ 등을 입장 변화의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로는 보수층 껴안기를 위한 궤도 수정이라는 분석이다.

    주요 이슈에서 전형적인 ‘투트랙’ 전략을 쓰는 것도 안 후보의 정치적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가중하고 있다. 그는 정치적 스탠스를 설명할 때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남북대화나 개성공단 폐쇄,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안 후보는 대체적으로 “남북 양측이 대화로 풀 수 있다”는 원론적 얘기만 반복한다.

    사드 배치가 국가 간 합의이기 때문에 정권이 교체돼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그의 입장은 일본과 위안부 협상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적용된다. 안 후보는 “위안부 문제는 생존자(피해자)분들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다음 정부에서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 “대일관계는 경제와 역사 문제를 분리해 풀어야 한다”는 부연설명까지 덧붙인다. 논리적 문제는 없지만 “그 누구와도 척지지 않겠다는 두루뭉술한 태도”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에서도 ‘공정성장론’을 표방하며 일부 개혁적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표적 정책의 구체성이 부족한 것 역시 논란거리다. 정치평론가 공희준 씨는 “그의 모호한 표현은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서의 이득 때문”이라고 분석했고,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뚜렷한 정치철학을 앞세우는 대신 선거 공학적 이해득실이 먼저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오랜 양당 프레임 속에서 중도성향의 정당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라는 옹호론도 있다. 실제 안 후보와 국민의당은 지난 ‘촛불정국’과 ‘개헌정국’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투트랙 전략을 가동하며 지지층을 다져왔다는 분석이다. 실제 촛불정국 초기 안 후보는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쳤지만 이후 상황이 보-혁 대결로 흘러가는 모양새가 되자 “(자신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양쪽에 나가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또 개헌론이 불거진 직후 국민의당 지도부가 “대선투표와 함께 개헌투표도 해야 한다”고 밝힌 반면, 안 후보는 “국민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개헌에 반대한다”고 당과 상반된 자세를 내비쳤다.



    재산과 가족 관련 의혹도 ‘첩첩산중’

    지지율 선두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민주당은 안 후보 본인을 포함한 가족의 비위 검증에 당력을 집중한 모양새다. 문 후보의 아들 준용 씨의 한국고용정보원 취업 논란에 대한 대응치고는 판을 훨씬 키운 것이 특징이다. 크게는 안랩(옛 안철수연구소) 재직 시절 안 후보 본인의 행보와 관련한 검증이 중심을 이루고, 아내 김미경 씨의 교수 자격 논란, 딸 설희 씨의 재산 논란 등 가족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논란은 아내 김씨다. 당초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였던 안 후보는 2011년 6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취임했고, 김씨는 8월 서울대 의대 전임교수로 특별 채용됐다. 문제는 김씨의 부교수 경력이 지나치게 짧고, 채용계획 수립 전 추천서를 받았으며, 연구 실적이 미흡해 사실상 특혜 채용의 근거가 된다는 것.

    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4월 13일 “김 교수의 연구 실적 중 일간지 기고문과 사실상 2쪽에 불과한 리포트가 영문저서에 포함된 것도 채용 의혹을 증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는 미국에서 석학을 초빙할 때 부부를 동시에 채용하는 ‘듀얼 채용’이 일종의 관행이라는 옹호론도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흔한 사례가 아니다. 2011년 6월 작성된 서울대 임용심사위원회 회의록은 ‘연구 실적이 미흡해 전문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세에 대해 국민의당 김재두 대변인은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물론, 서울대에서도 김 교수의 채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반격했다.

    민주당이 추가로 공격한 안설희 씨의 재산 및 증여세 논란은 국민의당 측에서 “재산이 1억1200만 원이며 연소득은 4000만 원이고 현재 대학기숙사에서 산다”고 발표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잠잠해진 모양새다. 안 후보의 딸은 과거부터 ‘미국 국적 취득설’이나 ‘호화 미국 생활’ 등의 자극적 공격을 받아왔는데, 후보등록과 함께 제출하는 서류를 통해 논란이 끝날지 주목된다.

    안 후보의 정치적 성공의 뒷배가 됐던 안랩의 주식과 관련된 논란도 있다. 최근 제기된 의혹은 1999년 10월 안랩이 당시 최고경영자(CEO)인 안 후보에게만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에 배정해 안 후보가 나중에 수백억 원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아내 김씨가 이사, 친동생  안상욱 씨가 감사로 참여해 이를 도운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판사 출신인 민주당 박범계 의원과 함께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유죄 판결을 받은 1999년 삼성SDS의 ‘BW 저가발행’ 사건과 유사하다”며 공격에 나섰다. 박 의원은 “회사 기술이 향후 어떻게 발전해 ‘잭팟’을 터뜨릴지는 경영자 본인만 알기 때문에 우리 상법은 내부자거래를 금지하고 있다”며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한 BW 발행도 마찬가지”라고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이 논란은 이미 2012년 끝난 문제”라며 황당하다는 입장. 김진화 공동선대위원장은 “안랩의 BW 배정은 창업자의 경영권 방어 목적이 컸다”며 “일절 승계 없이 안 대표가 경영에서 물러났고 보유 주식 절반을 사회에 환원까지 했다”고 응수했다. 이에 대한 관련 기관들의 판단도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가장 최근에 불거진 논란은 안 후보의 동생 상욱 씨의 30년 전 ‘성적 조작 사건’이다. 1984년 당시 대구한의과대 2학년에 다니던 안씨가 유급되는 것을 막으려고 부친이 교수들에게 성적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불응하자 대학 당국이 임의로 성적을 올려줬다는 것이다.

    당시 사건으로 다른 학교로 옮겨 졸업한 뒤 현재는 서울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는 안씨는 2012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형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는 없는 사람으로 해달라”며 정치인 형과 선을 긋는 발언을 했다. 이 밖에도 안 후보가 과거 각종 신문과 TV 인터뷰에서 한 언행을 검증 대상으로 부각하는 사례도 생겨날 정도로 당분간 ‘안철수 검증 정국’이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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