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5

2018.09.12

국제

일본, 복지원년 45년 만에 고령자 의료비 ‘자기부담’ 늘려

셋 중 한 명은 노인인 2040년 의료비 1.7배, 요양비 2.5배 증가 예상

  • 입력2018-09-11 11: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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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일본 한 요양시설에서 복지사가 로봇 인형을 이용해 노인을 치료하고 있다. [동아DB]

    2017년 일본 한 요양시설에서 복지사가 로봇 인형을 이용해 노인을 치료하고 있다. [동아DB]

    5월 일본 정부는 2040년까지 ‘사회보장의 장래 전망’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7%를 훌쩍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오래된 일본은 2040년 무렵 노인인구가 35.3%에 이르고, 이에 따른 사회보장비가 18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고령자 관련 의료 및 요양, 연금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를 기준으로 연금 1.3배, 의료비 1.7배, 요양비 2.5배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론 재정 문제 해소 방안이 쉽게 나오지는 않겠지만, 일본의 선행 경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적어도 무의미한 재정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일본이 전체 인구에서 고령자 비율이 7%를 넘어 유엔이 정한 ‘고령화사회’가 된 것은 1970년이고, 14%를 넘어 ‘고령사회’가 된 것은 1994년으로 24년이 걸렸다. 전 세계가 24년이란 기간에 주목한 데는 이유가 있다. 유럽 선진국 프랑스가 고령사회로 진입하기까지 100년 전후가 소요된 것을 고려하면 전대미문의 속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이제 더는 뉴스가 되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의 추월 속도가 무섭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0년 7월 고령화사회가 된 후 18년 만인 올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 5175만 명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725만 명이다. 장수는 축복할 일이지만 개인, 가족, 국가가 노인들의 건강과 생활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오히려 비극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많은 사례를 통해 경험했다.

    ‘고부담-저복지’ 위험에 빠진 고령자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이 최상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성이 평생 출산하는 아이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올해 0.9명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는 생산연령인구 감소로 이어져 향후 장수 고령자를 떠받칠 지지기반이 약화되리란 것이 명약관화하다. 다행히 경제성장 일변도로 달려온 한국이 뒤늦게나마 연금제도 보완 및 치매국가책임제 실시 등 고령자 관련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다만 어떤 정책이든 당사자나 관계자들이 실질적 혜택을 체감할 수 없다면 정책의 의도나 가치는 빛이 바래고 만다. 그래서 더더욱 한 발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고도경제성장을 지속해온 일본은 1973년 고령자 의료비(자기부담분)를 무료화하고 연금 수령액을 인상하는 등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면서 그해를 ‘복지원년’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고령자 의료비 무료화는 ‘병원의 살롱화’라는 유행어만 남긴 채 10년 만에 폐지됐고, 이후 복지정책에 ‘자기부담’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는 단초만 제공했다. 



    2000년 가족이 지던 요양 부담을 모든 국민이 나눈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개호보험제도’(한국의 장기요양보험제도)는 높은 이용률을 보이며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용자 수가 급증하면서 재정 부담이 커지자 등급 인정기준을 강화했고 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져 6개월 만에 다시 인정기준을 완화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올해 8월부터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는 제1호 피보험자(65세 이상 고령자)가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자기부담분은 10%에서 30%로 대폭 인상됐다. 재정 부담을 줄이고 젊은 층과 고통 분담이라는 차원에서 자기부담분 인상에 수긍하는 사람이 많지만 고령자는 그만큼 고부담-저복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회보장제도의 성패는 실수요자가 적절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에 달렸다. 즉 정치적 목적이나 계산이 깔린 선심성 행정이어서는 안 되고, 이용자의 남용이나 악용이 있어서도 안 된다. 한때 일본은 재가복지를 위해 가정봉사원(홈헬퍼)을 집중적으로 양성했다. 수백만 명이 가정봉사원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실제로 그 자격증을 가지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10% 남짓이다. 한국의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11년 이미 요양보호사 자격증 보유자가 100만 명이 넘었지만 실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사람은 20여만 명에 불과하다. 일자리 창출과 저렴한 요양인력 확보를 목적으로 요양복지사제도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정부 보조금을 노린 요양보호사 양성기관과 영리 위주의 민간 요양업체의 난립은 처음부터 우려됐던 일이다. 

    의료, 교육 등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해 시장을 활성화하고 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책 취지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제도나 정책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높을수록 철저한 검증과 시스템 확립이 선행돼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골고루 혜택을 누리고 재정적 누수를 최대한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고령자 문제에서 인지증(치매)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 높는 만큼 현 정부가 내건 치매 국가책임제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크다. 인지증 대응을 위한 선행제도인 치매특별등급제는 2014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경증 대상자가 제도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와 함께 그 취지에 공감하지만, 명확한 기준이나 치료법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성급한 제도 시행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예를 들면 인지증과 무관한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의료수가가 높다는 이유로 6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치매 소견서를 발급함으로써 과잉진단은 물론, 의료재정의 낭비를 가져올 수 있다. 또 병원 의사들이 한의사의 치매특별등급용 의사 소견서 발급을 이유로 치매특별등급제도 참여를 거부하는 등 양의와 한의 간 갈등도 촉발됐다.

    한국의 치매 국가책임제가 성공하려면…

    서울시가 운영하는 치매지원센터(센터)의 예도 유사하다. 센터의 주요 업무는 지역 내 인지증 환자를 선별, 진단하고 치료받을 수 있게 병원에 보내는 일이다. 서울시 모든 구마다 센터가 마련됐고 치매 환자를 많이 찾아낼수록 상대적으로 평가 점수를 더 주다 보니 경쟁적으로 무리하게 인지증 환자를 찾아내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치매 환자의 발견과 치료가 중요하지, 환자 수에 따라 센터 기능을 평가하는 것은 설립 취지와 동떨어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심성 등급 인정이나 제도 남용·악용으로는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책이라도 지속되기 어렵다. 얼마 전 동료 교수가 연구차 스웨덴에 가려는 이유에 대해 “스웨덴 국민 가운데 국가가 세금을 더 올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 궁금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국민과 국가 간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국민은 국가를 믿고 국가는 국민을 믿을 수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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