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8

2018.05.16

김민경의 미식세계

차진 맛, 구수한 이름의 쇠고기 ‘뭉티기’

평일 대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 입력2018-05-14 17: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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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러운 생고기인 뭉티기는 접시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차지다(왼쪽). 대구 뭉티기 식당에는 다른 고기 요리도 여럿 있다.

    부드러운 생고기인 뭉티기는 접시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차지다(왼쪽). 대구 뭉티기 식당에는 다른 고기 요리도 여럿 있다.

    20대 시절 한창 유행하던 프랜차이즈 술집의 캐치프레이즈가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였다. 당시엔 이 글귀가 무척 좋아 친구를 만나면 그곳으로 함께 달려가 변변치 않은 안주 한 접시를 곱씹으며 밤새 떠들곤 했다. 그때 나에게는 친구들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였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서로에게 의지하며 촘촘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기였다. 지금 그 친구들은 부모가 되고, 직업이나 직장을 가진 어른이 됐다. 그 때문에 친구들과는 전처럼 쉽게 만나지 못한다.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귀한 자리에 꼭 곁들이고 싶은 음식이 있다. 바로 대구 명물 ‘뭉티기’다. 아무것도 양념하지 않은 날것의 쇠고기. 검붉은 이 음식의 첫인상은 무척 낯설다. 하지만 부드러우면서 차진 살코기의 고소함에 한번 빠지면 두고두고 그리워질 맛이 분명하다. 뭉티기라는 말은 뭉텅이, 뭉치의 대구 사투리인데 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낸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요즘에는 먹기 좋도록 도톰하게 저며 접시에 정갈하게 펼쳐 담는 게 일반적인데, 예전에는 깍두기처럼 큼직하게 툭툭 썰어 접시에 수북히 담아 냈다. 하지만 여전히 깍둑썰기한 뭉티기를 파는 식당이 여럿 있다. 

    대구에서 맨 처음 뭉티기를 내놓은 집은 ‘너구리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육회에서 양념을 빼고 먹어보자는 단골의 아이디어로 생겨났는데, 처음에는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묵은지에 싸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맛이 어울리지 않아 이런저런 양념을 만들어보다 참기름, 고춧가루, 빻은 마늘, 집간장의 조합이 탄생했고 이것이 뭉티기의 짝꿍이 됐다. 양념장에는 다진 마늘보다 빻은 마늘을 넣어야 한다. 짓이겨 입자가 없고 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마늘 특유의 매운맛과 씹는 맛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춧가루도 씨가 있는 굵은 것을 쓴다. 뭉티기는 양념장에 콕 찍어 먹는다기보다 마음껏 굴려 무쳐 먹거나 잠시 담가 재워 먹는다는 표현이 맞다. 

    처음에는 뭉티기를 소의 뒷다리 안쪽 살로 만들었다는데 요즘에는 우둔살, 즉 엉덩살을 많이 쓴다. 지방이 거의 없고 결이 고운 우둔살은 소 한 마리에서 5~10kg이 나온다. 우둔살의 막을 벗기고 살집에 숨어 있는 힘줄을 일일이 발라낸 다음 먹기 좋게 저며 썬다. 뭉티기에 사용하는 고기는 도축 후 24시간 내의 것이 적합하다. 도축 직후에는 고기 근육이 부드럽고 탄력 있으며 수분을 머금고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후경직으로 근육이 수축하면서 딱딱하게 굳어 날것 그대로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고기 색도 싱싱할수록 검붉으며, 공기와 맞닿는 시간이 길어지면 점점 분홍에 가까워진다. 뭉티기와 양념된 육회의 고기 색이 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쉽게도 대구지역을 벗어나면 뭉티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게다가 토·일요일에는 도축을 하지 않아 평일에만 먹을 수 있다. 그립고 귀하고 자주 못 보는 것이 어릴 때 좋아지내던 친구나 매한가지다. 푸른 청춘 같은 오월이 지나기 전 우정(友情)을 논하며 우정(牛情) 좀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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