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80

2019.03.15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한국 밴드 음악의 현재를 묻는다면 들려주고픈 앨범

‘Version’과 ‘YOU’VE NEVER HAD IT SO GOOD’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9-03-19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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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시대는 끝났는가. 얼핏 그렇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팀이 하나 둘씩 해체하거나 소멸되고 있다. 그 뒤를 잇는 팀들의 기세는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힙합,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의 기세를 뚫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혁오, 잔나비, 아도이 같은 신예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밴드가 멈춰 있는 건 아니다. 두 젊은 밴드의 신작을 소개한다. 한국 밴드 음악의 현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노선택과 소울소스 meets 김율희 ‘Version’

    노선택과 소울소스 [위키피디아]

    노선택과 소울소스 [위키피디아]

    밴드 씽씽을 기억하는가.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인기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하며 현지에서 화제가 됐고, 한국으로 ‘역수입’됐던 그 밴드 말이다. 경기민요 전수자 이희문을 중심으로 신승태, 추다혜 등 3명의 소리꾼에 밴드가 결합했던 그들은 경기민요를 바탕으로 한 가락에 레게, 펑크, 디스코를 접목해 큰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서 열리는 공연은 늘 매진이었으며 정규 앨범을 내달라는 성원도 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바람에 부응하지 않고 2018년 10월 해체를 선언했다. 이희문 혼자 씽씽 때 스타일로 KBS 시사프로그램 ‘도올아인 오방간다’ 등에 출연할 뿐이다. 

    만약 그들 음악에 흥미를 가졌었다면 이 앨범을 놓쳐서는 안 된다. 레게밴드 노선택과 소울소스가 남도 명창 김율희와 함께한 ‘Version’이다. 오래전부터 한국 밴드는 록과 국악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대부분이라 해도 좋을 만큼 실패했다. 오히려 국악과 서구 음악의 결합은 다른 쪽에서 재미있는 결과를 낳아왔다. 레게와 민요였다. 

    윈디시티를 이끄는 김반장과 소리꾼 장군의 아이앤아이 장단이 가능성을 제시했고 2016년 데뷔한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이미 2017년 김율희와 함께 판소리의 가창과 레게를 결합한 즉흥 연주 스타일의 곡을 선보였다. 씽씽은 가장 성공적으로 이 결합을 화학적으로 만든 주인공이었고. 

    노선택과 소울소스, 그리고 김율희는 ‘Version’을 통해 아예 작심하고 한국의 전통과 자메이카의 근현대를 하나로 섞는다. 2017년 크로스오버 국악 페스티벌 ‘여우락’을 통해 인연을 맺은 그들은 이 공연뿐 아니라 여러 페스티벌을 통해 한 무대에 섰다.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두 번째 앨범에 실린 ‘Red Tiger’에서 첫 융합실험을 선보였다. 그 실험이 서로의 기운을 잘 맞대는 것에 그쳤다면 약 1년 반에 걸쳐 제작된 ‘Version’은 일취월장, 괄목상대 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씽씽이 경기민요에 서구의 댄서블한 리듬을 결합했다면 노선택과 소울소스, 그리고 김율희는 그루브를 넘어 박력과 절도의 단계로 나아간다. 또한 사이키델릭한 신명을 선보인다. ‘심청가’ ‘흥보가’ 같은 판소리에 밥 말리의 레게리듬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아니, 어울림을 넘어 어떤 관습을 뛰어넘는다. 두 나라 민중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공통을 잇고, 차이를 보완한다. 말 그대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음악이다. 자메이카의 옛 국민은 이를 뭐라 불렀는지 알지 못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음악이 만들어내는 이런 상태에 ‘흥’이나 ‘접신’이라는 단어를 썼을 것이다. 

    창작곡인 ‘정들고 싶네’의 경우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어깨와 무릎을 동시에 까닥거리게 하더니, 이 곡의 테마를 덥 스타일로 변주한 ‘Veridikal Dub’은 동이 터오를 때까지 끝나지 않는 굿판을 귓가에 소환한다. 먼 옛날부터 샤먼이 담당했던 공동체의 의식을, 지금 한국의 젊은 소리꾼과 밴드가 재현하는 것이다. 매년 시도되는 의미 있는 크로스오버 작업이 있다. 진지하고 탐구적이다. 노선택과 소울소스, 김율희는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좀 더 즐길 수 있는 리듬과 소리라는 문법을.

    로큰롤라디오 ‘YOU’VE NEVER HAD IT SO GOOD’

    로큰롤라디오 [사진 제공 · CJ문화재단]

    로큰롤라디오 [사진 제공 · CJ문화재단]

    2014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압도적인 표를 받으며 ‘올해의 신인상’을 받은 로큰롤라디오는 루키답지 않게 비교적 오래 침묵을 지켰다. 아니, 신중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2013년 데뷔 앨범 이후 다음 작품이 나올 때까지 약 5년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지난해 8곡이 담긴 EP로 거칠게 몸을 풀고 최근 내놓은 두 번째 앨범 ‘YOU’VE NEVER HAD IT SO GOOD’은 때때로 잊곤 하는 당연한 사실을 환기케 한다. 밴드란, 특히 록 밴드란 애초에 젊은이들을 춤추게 하는 임무를 갖고 태어난 조직이라는. 그러니까 재즈 시대로부터 ‘백 투 더 퓨처’가 그린 1950년대, 그리고 초기의 비틀스까지 말이다. 그 후에도 사실 마찬가지여서 춤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록 밴드는 젊은 세대의 심장을 두드리고 근육을 자극했다.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움직임이었다. 

    로큰롤라디오는 원래 그런 팀이었다. 1집의 대표곡 ‘Shut Up And Dance’가 공연장에서 연주될 때, 다른 밴드들이 부러워할 만한 움직임이 객석으로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YOU’VE NEVER HAD IT SO GOOD’은 그 장점을 극대화한 앨범이다. 

    이민우(베이스), 최민규(드럼)가 만들어내는 리듬이 한층 안정된 가운데, 이 탄탄한 기초 위에 쌓아올리는 김진규의 기타는 말 그대로 탄성을 부른다. 또래 어느 기타리스트보다 세련된 리프와 사운드로 최근 어떤 한국 밴드에게서도 들어본 적 없는 압도적인 그루브를 뿜어내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오버하지 않는 김내현의 보컬이 오히려 과열된 흥분을 식히는 것처럼 들린다. ‘가치의 상대성’을 주제로 한 가사는 종종 사색적이지만, 쓸쓸한 사색의 순간조차 발바닥은 뜨거워진다. 

    로큰롤라디오의 상대적 단점은 앨범 수록곡의 편차가 심한 편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앨범은 그런 단점을 극복했다. 이를 위해 그리 오랜 시간, 스스로를 연마했나 보다. 그 결과 이 앨범은 마치 U2가 아일랜드 더블린이 아니라 1980년대 영국 맨체스터에서 활동했다면 만들었을 음악으로 가득차 있다. 벅찬 울림과 퇴폐적인 흥분이 교차되는. 희망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희망이 되겠다는 의지를 청춘다운 기백으로 빛나게 하는. 2019년이 끝날 때쯤 이 앨범의 위치는 어디쯤에 있을지 궁금하다. 만약 ‘YOU’VE NEVER HAD IT SO GOOD’이 연말 ‘그저 그런 앨범’으로 여겨진다면 2019년은 정말 엄청난 해로 남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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