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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4 03:00: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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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 로봇, AI 피아니스트… ‘무모한 연구’만 후원합니다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 5주년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연구과제는 뽑지 않습니다. 열심히 해도 될지 안 될지 불투명한, 어려운 과제로만 도전해 주십시오.”

장재수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장(전무)이 최근 5년간 국내 주요 대학과 연구기관을 찾아다니며 입버릇처럼 말한 당부다.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사업이 13일로 5주년을 맞았다.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이화여대 석좌교수)은 “미래기술육성사업은 실패를 용인하는 사업”이라며 “연구 성공률이 20∼30%만 돼도 좋다는 게 시작할 때 정한 내부 목표치였고, 현재 그 정도 비율로 성공적인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국가 미래 과학기술 육성에 기여하기 위해 2013년 8월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와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세우고 민간기업 최초로 기초과학과 소재,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연구를 지원해 왔다.

삼성전자가 2022년까지 10년간 총 1조5000억 원을 ‘쏜다’는 소식에 수많은 학자들이 문을 두드렸지만 문턱을 넘기가 만만치는 않았다. 삼성이 기존 국내 연구개발(R&D) 풍토와는 다른 ‘하이 리스크 하이 임팩트(High Risk, High Impact)’ 철칙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 R&D 과제 성공률은 평균 9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선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만 선정되는 탓에 정작 창의적인 기술은 채택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삼성은 ‘연구자에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무모해 보여도 창의적인 접근 방식으로 도전하는 ‘퍼스트 펭귄(머뭇거리는 다른 펭귄들에 앞서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드는 도전자)’들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

최근까지 기초과학 분야 149건, 소재기술 분야 132건, ICT 분야 147건 등 총 428건의 연구과제가 총 5389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서울대 KAIST 포스텍 등 주요 대학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등과학원 등 공공연구기관에서 교수급 연구인력 1000여 명을 포함해 총 7300여 명이 참여 중이다. 연구팀 규모나 연구비 금액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과제를 선정할 때도 연구자 이름과 소속을 모두 가린 2장짜리 아이디어 위주의 연구 제안서로 1차 심사를 한다. 그만큼 참신하고 이전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연구를 존중하겠다는 취지다. 논문 게재 수나 연구 기록을 배제하고 평가하다 보니 자연스레 젊은 과학자들을 길러내는 효과도 생겼다. 현재까지 43세 이하 신진 연구자 비율이 65%에 이른다.

최근 5년간 선정된 과제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윤태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항암 표적치료연구’는 성공할 경우 암 환자의 경제적 부담과 치료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문정 포스텍 화학과 교수는 현재까지 학계에서 시도된 바 없는 선형 운동을 하는 전기장 구동 고분자 액추에이터(원동기)를 연구 중이다. 유년 시절 장애 어린이를 보고 팔과 다리가 되어줄 로봇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에서 출발한 연구다. 전자악기를 개발하는 회사에서 피아노 소리를 연구했던 경력이 있는 남주한 KAIST 교수는 피아니스트들의 빅데이터를 모아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피아노곡 작곡·연주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발표한 AI, 바이오, 5세대(5G), 전장 등 자체 4대 성장사업과 연계해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기술 지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 AI를 지정 테마 과제로 선정해 35개 연구를 지원해 왔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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