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옆 사진관]이미지 홍보의 세계② - ‘홍보’ 사진의 탄생(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6일 14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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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제면 사진에 ‘신제품’이 ‘정보’로서 자리를 잡습니다. 이전엔 광고색이 짙어 꺼리던 사진들이었죠. 그래서 주로 경제 현상이나 트렌드, 경제 정책(주로 정부 활동) 사진들이 주로 경제면에 편집됐는데 이젠 아예 제품 자체가 사진으로 인기를 끕니다.

뭐, 딱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러려고 이런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 쪽으로 가는 거죠. 어느 누구도 가지 않았던 곳엔 당연히 길도 없죠.

당시에 김대중정부가 IMF 위기를 극복하는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IT를 잡았습니다. ‘IT’도 나중에 나온 용어이고 당시엔 ‘정보화’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IT업계도 자신감에 넘쳐있었습니다. 신통방통한 요물(?)들이 쏟아져 나왔죠. 신기하잖아요. 사진꺼리로도 딱이었습니다. 독자들과 소비자들도 이 신기한 물건과 서비스가 한국 경제를 다시 일으킬 것이라 확신했고 IT벤처 기업을 중심으로 문을 연 코스닥도 거품 논란이 있을 정도로 솟구치던 때였습니다.




1998년 10월 게재된 사진입니다. 지금 보면 초보적인 디지털 제품인데 당시엔 ‘문자를 보내는 삐삐’로 눈길을 끌었던 제품입니다. IT제품을 모델이 들고 있는 경제면 사진 포맷은 이때부터 조금씩 가뭄에 콩나듯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아직은 전문모델이 아닌 일반인(주로 직원들)이 들고 있는 포맷이었죠.

2000년 5월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방송음향조명기기 전시회
2000년 5월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방송음향조명기기 전시회


업체들이 전문 모델을 동원해 본격적으로 제품홍보 사진촬영 행사를 한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컨변센이나 엑스포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원래 어느 행사나 안내직원(usher, 주로 젊은 여성)이 있긴 했지만 ‘도우미’라는 이름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1993년 대전 엑스포 때부터입니다. 이 박람회를 위해 정부가 대대적으로 자원봉사자를 뽑았고 이분들에게 ‘도우미’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죠. 당시 엑스포만큼 눈길을 끈 것은 부스 곳곳에 자리잡은 도우미들이었습니다.

2002년 5월 베이징모터쇼
2002년 5월 베이징모터쇼

2005년 5월 대구 국제모터사이클쇼
2005년 5월 대구 국제모터사이클쇼


도우미들이 역동적으로 활동하던 공간은 자동차 발표회나 모터쇼였습니다. 아예 ‘레이싱걸’이라는 콩글리시도 생겼죠. 원래는 자동차경주대회의 안내 역할을 하던 도우미들을 뜻했던 것 같은데 신차를 소개하는 데도 등장했습니다.

2005년 5월 LG전자 디지털 신제품 발표회
2005년 5월 LG전자 디지털 신제품 발표회

IT 제품을 홍보하는 분들에게 모델이 제품을 소개하는 사진 포맷은 매력적이었습니다. 제품이 도드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또 자동차나 IT나 첨단소비재라는 맥락을 같이 하니 연상하기 쉬웠죠. 자동차보다 훨씬 작은 손에 드는 휴대용 제품이지만 오히려 들고 찍기 좋으니 인기였습니다. ‘신제품 발표회’에 ‘포토세션’을 따로 만들어서 사진기자들을 위한 시간을 냈습니다. 이전에는 담당기자들만 대상으로 하던 발표회를 사진기자들에게까지 개방을 한 거죠. 신제품은 기사 못지않게 사진홍보가 중요해졌습니다. 어떤 기업은 아예 신제품 발표회를 포토세션으로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포토세션이 중요해지니 모델들의 역할도 중요해졌습니다. 이 즈음부터 모델 인력회사(에이전시) 규모가 점점 커졌습니다.

2005년 6월 LG상사 내비게이션 신제품 발표회
2005년 6월 LG상사 내비게이션 신제품 발표회

이런 포맷의 사진은 지금도 계속 촬영중입니다. 백화점이나 마트는 아예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고 제품 홍보를 할 때마다 정기적으로 모델들을 모시고 사진촬영 행사를 하곤 합니다. 누군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하다보니 설정된 포맷. 홍보인 입장에선 제품을 ‘뉴스사진’으로 만들기 쉽고, 사진기자 입장에선 ‘편하게(?) 찍으니 좋고 편집자 입장에선 울긋불긋한 사진을 게재해 좋았죠. 독자나 소비자 입장에선 새로운 첨단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낯선 뭔가가 처음 등장해 일상의 것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숱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그냥 굴러가기 마련이죠. 경제 사진의 이 새로운 포맷도 초반엔 우왕좌왕하기도 했지만 일단 신문사진으로 인정받으니 가장 쉽고 안정적인 사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문제도 있습니다. 이 포맷이 15년 가량 반복되니 이제는 아예 포토세션을 위한 포토세션도 많이 있습니다. 신제품은 여전히 새로운 정보를 주긴 하지만 이 앵글은 너무 단순하고 지루합니다. 또 광고효과가 지나치게 강해서 기업들은 이를 활용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편, 신문이나 인터넷에 안 뜰 것 같으면 자체적으로 촬영해 인터넷이나 SNS에 돌립니다. 또 신문들은 이것을 광고를 유치하기 위한 레버리지로 이용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은 홍보하고 언론은 검증하는 불문율이 깨질까 우려됩니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기 마련이니 이 포맷이라도 시간이 지나 점점 악용되며 수명을 다해가는 건 아닐까요. 결자해지이니 애초에 포맷을 만든 사진기자들에게 숙제로 남았습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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