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한인들 ‘독립의 외침’ 담긴 英字신문 첫 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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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70년]애국지사 7명 배출한 강영각 일가
독립운동 자금 지원하며 신문 발간… 교포들에 태극기-3·1운동 등 알려
간직했던 신문 59부-사진 323점, 후손들이 독립기념관에 자료 기증

강영각 애국지사가 하와이에서 1941년 1월 23일자로 발간한 영자신문 아메리칸 코리안 지면. 애국가 1절과 2절이 한글로 쓰여 있다.
강영각 애국지사가 하와이에서 1941년 1월 23일자로 발간한 영자신문 아메리칸 코리안 지면. 애국가 1절과 2절이 한글로 쓰여 있다.
‘1년 구독에 1달러.’

한 달에 두 번 발행이 목표였지만 그마저도 못 지킬 때가 많았던 4개 면짜리 신문의 구독료다. 영어로 쓰였지만 지면을 채운 것은 나라 잃은 조선인들의 독립운동 소식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서거 기사나 태극기 아래 앉은 지청천 장군과 독립군의 사진 등이 지면에 담겼다. 일제강점기 하와이로 피한 동포들의 민족운동 창구 역할을 한 영자신문 아메리칸 코리안(American Korean) 얘기다.

강영각 애국지사(1896∼1946)가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발행했던 영자신문 아메리칸 코리안과 영코리안의 실제 발행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강영각 지사의 딸 수잔 강은 1921년부터 1941년까지 발행된 영자신문 59부와 소장 사진 323점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한인들이 영자신문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해외 한인 사회에서 발간된 영자신문 실물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함께 기증한 사진엔 서재필 박사, 양유찬 주미 대사 등 저명인사와 하와이 한인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신문에는 또 매년 3월 1일이면 빠지지 않고 3·1절 행사 기사가 지면을 차지했다. 1941년 1월 23일자 지면엔 한글로 가사가 쓰인 애국가 악보가 실리기도 했다.

강 지사(왼쪽)와 강 지사의 형 강영문 지사가 함께 찍은 사진. 양인집 씨 제공
강 지사(왼쪽)와 강 지사의 형 강영문 지사가 함께 찍은 사진. 양인집 씨 제공
이 자료들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배경엔 애국지사 못지않은 ‘애국자’가 있었다. 강영각 지사의 부인 메리 강은 서른에 남편을 여의고 자녀 셋을 키우면서도 남편이 남긴 자료를 소중히 간직했다. 신문이 훼손될까 봐 접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음식점 서빙이나 호텔 청소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한국말을 잊지 않았고, 멀리 한국에서 친척이 오면 자랑스럽게 신문을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메리 강이 2011년 눈을 감자 65년간 지켜온 이 자료들은 아들 필모어 강에게 전해졌다. 필모어 강이 최근 하와이 소재 대학에 자료를 기증하려는 걸 알게 된 친척 양인집 씨가 직접 필모어 강과 수잔 강을 설득해 결국 독립기념관 기증이 이뤄지게 됐다.

강영각 지사의 가문은 독립운동가를 7명이나 배출했다. 여섯 형제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힘쓴 이회영 가문 못지않다. 아버지 강명화 애국지사와 강영각 지사를 포함한 다섯 아들, 사위 양우조 지사가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안창호 선생이 주도한 흥사단은 차남 강영소 지사의 집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또 형제들은 미국 시카고에서 식당을 운영해 번 돈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댔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강명화 지사의 후손이 적고, 외국에 거주한 탓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기증을 통해 강명화 지사의 장남 강영대 지사 등 세 아들에게 5년 전에 수여 확정된 훈장도 주인을 찾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14일 강영각 지사의 딸 수잔 강에게 이들의 훈장을 전달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하와이 한인들#독립의 외침#영자신문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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