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지하 태풍 대피소가 도둑들 눈엔 출입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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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도시 가이드/제프 마노 지음·김주양 옮김/352쪽·1만5000원·열림원

영화 ‘도둑들’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영화 ‘도둑들’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보통 사람이 건물 도면을 본다면 먼저 ‘정문이 어디인가’가 궁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둑은 다른 방식으로 건물에 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데 힘을 쏟는다. 튼튼한 나뭇가지가 닿아 있는 다락 창문, 다른 집 지하실과 연결된 지하 태풍 대피소, 잘 빠질 듯한 방충망 같은 것을 찾는다.

도둑들의 눈에 보이는 건물은 어떤 모습일까? 미국의 건축 전문 블로거가 범죄와 건축의 관계를 분석했다.

이 분야 ‘선구자’는 1870년대 미국에서 수없이 은행을 턴 도둑 조지 레오니다스 레슬리(1878년 사망)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수법은 마치 여러 명이 작전을 짜 절도 행각을 벌이는 ‘떼도둑 영화’의 전범과 같다. 건축학도였던 레슬리는 잘나가는 건축가 행세를 하며 파티에서 만난 월가 기업가와 금융업자를 속여 은행의 설계도를 확인했다. 이어 실물 크기의 건물 모형을 만들고 초 단위로 동선을 짜 일당들과 절도 리허설을 한 뒤 도주로를 확보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저자는 오늘날도 어떤 도둑들은 화재 대피로의 위치와 개수만 보고 건물의 내부 구조를 거의 맞히거나, 구글 스트리트 뷰를 보고 침입 동선을 짠다고 말한다. 저자의 시야는 개별 건물에서 도시로 확장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가 1990년대 ‘은행 강도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얻은 원인 중 하나는 수많은 고속도로였다. 범죄자들은 고속도로 출입구 근방의 은행을 털고 경찰 헬기가 나타나기 전 순식간에 사라졌다. 1976년 프랑스 니스에서는 도둑들이 땅굴을 파고 배수관을 거쳐 은행을 털기도 했다. 저자의 말처럼 도둑들은 “2차원적 평면 및 사물 속에 존재하는 3차원적 배우”였던 셈이다.

재치 있지만 과장됐다 싶은 표현도 많다. “도둑은 건축물의 새로운 사용 방법을 찾아내는 ‘공간 설계의 적극적인 참여자’이고, 그들이 침입하려는 건물과 건축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라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범죄를 미화하거나 그 수법을 가르치는 건 아니다. 논픽션 버전으로 영화 ‘도둑들’이나 ‘오션스’ 시리즈를 보듯이 읽으면 적당하겠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도둑의 도시 가이드#제프 마노#도둑들#오션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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